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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유엔, 中 '강제북송 재개' 전 경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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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재개 한 달 전 유엔 차원에서 문제 제기

서한 발송 60일 만에 공개…中, 답변 안 해

인권단체 "韓中日 정상회의 의제 올려야"

중국이 지난달 탈북민에 대한 대규모 강제 북송을 재개하기 전 유엔 차원에서 '일종의 경고장'을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엔의 인권 전문가 등이 북송 상황을 계속 주시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우리 정부가 이를 대중(對中) 압박에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다가오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해결 노력'을 공동성명에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3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살몬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시오반 멀럴리 여성·아동 인신매매 특별보고관, 마마 파티마 싱가테 여성 폭력·아동 성학대 특별보고관, 오보카타 토모야 현대적 노예제도에 관한 특별보고관, 도로시 에스트라다 탱크 여성 차별에 관한 워킹그룹 보고관 등은 지난 3월 22일 중국 정부를 상대로 재중 탈북민의 인권침해 상황과 강제 북송을 우려하는 서한(allegation letter)을 발송했다. 직역하면 '혐의를 제기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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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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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특별보고관들은 재중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를 지적하면서, 특히 여성·여아에 대한 인권침해에 주목했다. 탈북 여성들에 대해 성 착취·강제 결혼·강제노동 등을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가 자행되고 있으며, 중국인 남성의 아이를 밴 여성들이 북송 이후 고위험 낙태를 강요당한다는 점을 짚었다. 나아가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 여성들이 심각한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비인도적 대우를 통해 '내장이 파열되는' 수준의 고문(severe torture which it is alleged has led on some occasions to rupture of their internal organs)까지 당한다는 정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안이 탈북민을 감시하는 방식도 문제 삼았다. 중국 정부는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목적을 가진 불법체류자(비법월경자)로 간주한다. 생존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탈북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탈북민이 중국에 머물기 위해서는 '임시거주 허가'가 필요한데, 특별보고관들은 공안이 이를 명분으로 탈북 여성들의 (중국인) 남편으로부터 매일 아침 아내의 사진을 받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치 정보가 계속 보고된다는 것은 언제든지 체포돼 북한에 넘겨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별보고관들은 유엔 인권이사회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제반 정보를 요구하며, 특히 중국 정부가 '강제송환 금지 원칙'이라는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 문서는 규정에 따라 지난 22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서한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60일)을 보장하는 차원이지만, 중국 정부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서한에는 이 같은 내용이 북한 당국에 함께 발송됐다고 명시돼 있다.

"정부, 유엔 관심 지렛대 삼아 中 압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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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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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탈북민 약 500명을 대거 북송했으며, 지난달 26일에는 지린성 바이산(백산) 구류소 등에 수용돼 있던 탈북민 200명을 추가 송환했다. 올해 3월 말 유엔으로부터 '탈북민에 대한 인권침해를 방기하고 강제 북송을 지속해온 책임'을 묻는 서한을 받고도, 불과 한 달 만에 이를 무시한 채 강제 북송을 재개했다.

정부 입장은 지난해와 사뭇 다르다. 당시 통일부는 '엄중히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별도의 유감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13일 방중 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재중 탈북민이 강제로 북송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긴 했지만, 중국 측은 회담 결과에서 이 내용을 뺐다.

정부가 말을 아끼는 배경에는 지난해부터 의장국으로서 공을 들여온 한·중·일 정상회의가 있다. 오는 26~27일 개최를 목표로 최종 조율 중이다. 정부는 고위급 교류 재개 등 중국을 우호적인 자세로 유인하거나 달래야 하는 과제들을 안고 있다. 한국이 외교적 악재가 될 만큼 '높은 수위'로 항의하진 못할 거란 중국의 계산이 깔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인권단체들은 유엔이 강제 북송 상황을 주시해온 점을 지렛대로 삼아, 오히려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강제 북송 의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이번에 공개된 서한은 유엔 차원에서 북송 문제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중국 정부가 답변을 내지 않은 것도 유엔의 문제 제기에 반박할 명분이 없는 난처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상회의에서 경제·사회 이슈만 다룬다는 오해가 있는데, 북한 인권 사안도 꾸준히 의제로 다뤄졌다"며 "이번 기회에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 북송 문제를 명확히 제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제 북송 피해 가족들과 북한인권단체들은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발송했다. 다가오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강제 북송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물론, 2018~2019년 열린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희망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연이어 명시된 것처럼 우리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서한에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김철옥씨의 가족 김규리씨·김혁씨, 2013년 이후 북한에 구금 중인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씨, 북한인권시민연합(NKHR), 국군포로가족회, 물망초 등 11개 개인·단체가 서명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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