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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주말은 책과 함께]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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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박홍규, 박지원 지음/사이드웨이

친구는 정치인 A의 광팬이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우연히 A를 본 친구는 달려가 악수를 청했고, 그는 흔쾌히 악수에 응했다. 친구는 '당분간 손을 씻지 않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약 3개월 뒤 승승장구하던 정치인 A는 성폭력 가해자란 사실이 밝혀져 나락으로 추락했고, 친구는 '손을 자르고 싶다'고 했다.

필자의 눈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을 열렬히 사모하는 팬들의 존재가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주기는커녕, 심지어는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함에도 스타를 신처럼 떠받드는 팬. 그들은 대체 누구이며, 왜 자신이나 가족 혹은 이해관계로 얽힌 이가 아닌 남, 어쩌면 살면서 옷깃조차 스치지 않을 정도로 '머나먼 그대'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팬이 스타를 사랑한다. → 그는 불완전한 인간이어서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음주운전, 학교폭력, 갑질, 5대 강력범죄 등)를 일으킨다. → 팬들은 방패막이를 자처하며 스타를 맹목적으로 보호하고 감싼다. → 스타를 욕하던 사람들은 팬들까지 싸잡아 비난한다. → 팬들은 스타 대신 단두대에 올라 벌을 받는다.' 살면서 이런 이상한 일을 자주 목격한 탓에 스타를 맹렬히 지지하는 팬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에서 그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법학자 박홍규와 출판인 겸 작가 박지원의 대담을 엮은 책으로, 대화의 줄기는 크게 '독서', '고독', '사회', '인간'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나뉜다.

인터뷰이 박홍규는 집단을 사랑하는 사회에서 '개인'과 '독서'의 힘을 예찬한 사람이다. 세상이 자신에게 붙인 '영원한 이단자',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어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는 책에서 우리 교육의 문제를 통렬히 비판한다. '교과서주의'라는 망령이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까지도 지배하고 있다고 박홍규는 지적한다. 교과서주의란 호기심과 의문, 회의, 즉 무엇인가에 대해 퀘스천 마크를 붙이는 것,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자세 자체를 무시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시험 출제위원이 쓴 교과서 한 권을 달달 외우는 것, 다른 견해를 쓴 텍스트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식의 감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런 감성이 참으로 큰 문제인 이유는 무언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상상력 자체를 죽여버리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박홍규는 한국 교육체계 전반에 '교과서 미신'이 너무도 강해 사춘기 학생들이 얼마든지 품을 수 있는 발랄한 호기심이 계속 억눌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교과서주의에서 벗어나 무엇에 대해서도 숭배하거나 추종하지 말고, 어떤 우상이든 철저하게 분석하고 부수어버리는 관점과 자세를 견지하라고 조언한다. 462쪽.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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