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8 (일)

세부엔 바다만 있는 게 아니다…‘다른 세부’ 여행하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세부 사파리 앤드 어드벤처 파크’에 있는 ‘아프리카 백사자’ 두마리. 볼을 비비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장인 김아무개(51)씨는 스쿠버다이빙이 취미다. 빡빡한 직장생활에도 바다에만 가면 해방감을 만끽하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다이빙 경력 10년인 그가 잊지 못하는 ‘바다 여행지’가 있다. 필리핀 7641개 섬 중의 하나인 세부다. 세부는 필리핀에서 두번째로 큰 섬이다. 세부 동쪽에 있는 부속섬인 막탄섬을 비롯해 모알보알, 오슬롭 등이 그의 바다 놀이터였다. 1년에 최소 한번 이상 세부를 찾았다. 그는 “한국에서 접근성이 좋고, 비용이 적게 드는데다가 다양한 해양생물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부를 찾는 한국인 해양레저 인구가 적지 않다. 필리핀관광부 자료를 보면, 올해 1~4월 여행을 목적으로 필리핀을 찾은 외국 입국자 수의 27%가 한국인이었다. 그중 다수가 해양레저를 포함한 바다 여행을 즐기려는 이로 추정된다. 바닷속 여행지로 더없이 맞춤한 곳이 세부지만, 덤으로 할 만한 관광도 있다. 세부 땅에 촘촘히 박힌 역사와 최근 개보수해 서유럽 건축물 버금가게 세련된 전망대 등을 둘러보는 여행이다.



한겨레

맹그로브 숲이 있는 ‘라푸라푸 기념공원’.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젤란의 탐험이 끝난 곳





한겨레

웅장한 크기의 라푸라푸 추장 동상.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페인에 귀화해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과 가장 밀접한 여행지는 어디일까. 정답은 세부다. 마젤란이 그의 세계 일주 꿈을 접게 된 곳이 바로 세부 막탄섬 라푸라푸시이기 때문이다. 본래 일은 시작보단 ‘마침표’가 중요한 법이다. 라푸라푸시의 본래 이름은 막탄시다. 1960년대 초 이 지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추장 라푸라푸(1491~1542)의 이름으로 도시의 이름이 바뀌었다. 마젤란은 필리핀 세부섬에 함대를 이끌고 와 손쉽게 상륙하며 가톨릭을 전파했지만 무슬림이 많았던 막탄섬은 달랐다. 막탄섬의 추장 라푸라푸는 마젤란의 군대를 격파했고 적장인 마젤란까지 죽였다. ‘라푸라푸 기념공원’에 가면 당시 치열했던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곳은 마젤란이 사형당한 곳으로, 현재는 성인 남자 2배 크기의 라푸라푸 추장 동상과 마젤란 기념비가 공존한다. 죽인 자와 죽임을 당한 자를 기리는 상징이 한 공간에 있다. 지금을 사는 이들이 역사 속 인물들의 화해를 도모하는 것인가.



한겨레

막탄섬에서 최후를 맞이한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기념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라푸라푸 기념공원’에 따가운 햇볕이 쏟아졌다. 그늘이 그립진 않았다. 땅에 입맞춤이라도 할 태세로 구름 떼가 지상에 내려앉아 있었다. 시선을 돌리면 건장한 라푸라푸 추장 동상에 압도당한다. 수세기 전 이 땅을 호령한 영웅의 목소리가 새소리에 섞여 들리는 듯했다. 영웅의 눈길은 너른 공원의 한쪽을 향하고 있었다. 맹그로브 숲이었다. 세부 자연의 수호신이다. 대형 정화조 역할을 한다.



이날 안내자로 나선 한국인 임리아(50)씨가 이 공원의 쓰임새를 말했다. “가톨릭 국가답게 여기 사람들은 자녀가 많아요. 최소 5명이죠. 벌이가 적어도 화목하답니다. 주말이면 방갈로 잡고 먹고 마시고 놀아요. 그래서인지, 흥겨운 각종 마을 축제가 많고 여기 공원 광장에서 주로 열리죠.” 그도 스쿠버다이빙 마니아다. 신혼여행으로 온 세부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세부 바다에 반해 눌러앉았다. 그는 세부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안다. 드라마 ‘쩐의 전쟁’(SBS)과 영화 ‘툼 레이더’ 촬영 장소가 이곳이라고도 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젤란의 생을 필두로 한 역사 여행지가 여기만은 아니다. 세부 도심에 가면 ‘마젤란 십자가’가 있다. 그리 크지 않은 팔각형 건물 안에 있는데, 벽에 뚫린 창문도 8개이고 천장 벽화도 8면이다. 마젤란과 숫자 ‘8’이 관련 있을까. 어디서도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세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사연은 귀가 솔깃할 정도로 흥미롭다.



마젤란은 라푸라푸 사람들과 달리, 이 지역 사람들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3m 높이의 십자가를 세웠다. 신앙이 깊어진 사람들은 십자가 모서리를 긁어 나온 가루를 끓여 먹었다. 신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 믿었다. 신자들의 열망이 커질수록 십자가는 부서지고 닳아져 갔다. 십자가는 결국 십자가 모양 나무 구조물에 봉인됐다. 인간이 무도한 것일까. 신이 치졸한 것일까.



한겨레

‘산토 니뇨 성’ 앞에 디즈니랜드 캐릭터 풍선을 파는 상인들.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 옆 ‘산토 니뇨 성당’에 가면 나약한 인간의 고통을 목도하게 된다. 이 성당에는 1521년 마젤란이 가져온 아기 예수상이 있다. 전쟁에도, 몇 번의 화재에도 훼손되지 않은 아기 예수상은 지금 세부 사람들의 큰 위안이다. 이날 아기 예수상이 들어있는 커다란 유리 상자 앞엔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로 긴 줄이 섰다. 그 줄 길이만큼 고통의 크기도 자랐다. 90도로 고개를 꺾은 이의 흐느낌에서 깊은 번뇌가 전해졌다. 성당에는 필리핀의 모든 아픔이 봉제공장 먼지처럼 쌓여갔다.



한편, 성당 밖을 나오면 딴 세상이다. 디즈니랜드 캐릭터 풍선을 파는 장사꾼 여럿이 호객을 하고 있었다. 풍선에 그려진 스파이더맨, 미니언즈 얼굴은 순백색 성당 건물을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연출했다. 철제 초꽂이 제단엔 너도나도 붉은색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들의 희망이 타올랐다.



한겨레

성당 밖에 있는 철제 초꽂이 제단. 신자들이 소망을 담아 초에 불을 붙인다.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900m 높이 전망대에 부는 바람





한겨레

세부의 가게에선 처마 밑에 일회용품을 주렁주렁 달아놓고 판다.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부 도심에서 부사이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변덕쟁이 같다. 곡예 줄을 타는 것처럼 아찔하다가 완만해지기를 반복한다. 차가 몰려 정체되기라도 하면 여행객의 시선은 ‘자동’으로 탑승한 차 밖 길가 상점으로 향한다. 쇼핑이야말로 여행의 별미다. 동행한 임씨가 퀴즈를 냈다. “저 가게들 처마에 작은 봉지가 달려 있는데, 저게 뭘까요?” 알록달록한 봉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붙어있었다. 여행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샴푸도 있고, 국물도 있고, 다른 먹을 것도 있죠. 다 일회용 포장 제품입니다.” ‘오늘 하루만 살고 말자’는 건가. 계절풍과 태풍의 영향을 받는 필리핀은 열대성 기후다. 거기에 답이 있었다. “기후 때문입니다. 더우니까, 쉽게 상할 수 있죠. 냉장고를 구비한 집이 적은 편이니까요.” 그가 차창 밖을 가리키며 질문을 또 던졌다. 굵은 수도 파이프 한개에 기역자 모양의 얇은 파이프 수십개가 꽂혀있었다. “얇은 파이프 수만큼 집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수도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거죠.” 지역민의 삶을 이해하는 데서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한겨레

세부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톱스 힐 전망대’. 기하학적인 건축물 앞에서 여행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톱스 힐 전망대’. 최근 개보수한 이 전망대는 세부에서 이른바 ‘뜨는’ 여행지다. 해발 700m 높이의 부사이산 정상에 있다 보니, 세부 도심을 비롯해 맑은 날엔 막탄섬도 보인다. 대낮 폭염이 발붙일 겨를 없이 시원한 바람이 분다. 전망대 한쪽을 싸고 있는 건축물이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다. 얼핏 보면 외계 우주선 같다. 촌스럽지도, 유치하지도 않은 세련된 모양새다. 카페나 식당들이 입점해있다. 환한 대낮 전망대 여행도 볼거리가 많지만, 일몰 시각까지 머물면 더 신비로운 풍광을 만난다. 하늘의 별이 지상에 내려온 것처럼 세부 도심의 불빛이 반짝인다.



세부의 뜨는 신상 ‘여행 맛집’은 또 있다. 세부 도심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카르멘 언덕에 ‘세부 사파리 앤드 어드벤처 파크’(이하 파크)가 있다. 야생동물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집라인, ‘스카이 바이크’ 등 다양한 액티비티 체험 여행을 할 수 있다. 액티비티 체험 이용자는 16살 이상, 몸무게 최소 40㎏ 이상 80㎏ 이하로 제한한다. 지난달 29일 이곳을 찾았다. 거대한 규모였다. 첫발을 내디딘 곳은 생경한 모양의 꽃이 핀 화원이었다. 열대 지역 식물들이 자태를 제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화원을 지나 본격적인 사파리 여행에 나섰다. 사파리 전용차에 오르자, 안내원이 야생동물 생태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5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얼룩말이 보였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관점을 확장하는 일, 여행





한겨레

너른 공간에서 불을 뜯어 먹고 있는 기린. ‘세부 사파리 앤드 어드벤처 파크’는 동물들 거주 공간이 꽤 넓은 편이다.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 관찰 여행이나 동물원 투어에 나서기 전에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최근 동물복지 개념을 동물원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가 동물 관찰로 얻을 수 있는 관점은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 존중이다. 이는 우리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 기린은 다닐 만한 공간이 충분히 넉넉한가’ ‘저 사자는 배고픔과 추위에 떨지 않을까’ ‘나무에 떨어진 곰은 상처가 쉽게 치유될까’ 이런 물음에서 동물원 투어를 시작해야 여행의 질이 높아진다.



‘동물의 5대 자유’란 게 있다. 196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정립된 개념으로 △목마름, 배고픔, 영양실조로부터 자유 △불편함으로부터 자유 △고통이나 부상, 질병으로부터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가리킨다. 동물보호운동 활동가인 로브 레이들로는 이를 동물원 동물에게도 적용해 △영양가 있는 음식과 신선한 물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적절한 보살핌과 치료 △넓은 공간과 호기심 자극할 수 있는 환경 △쾌적한 온도에서 쉴 만한 장소 △동물이 숨을 수 있는 공간과 동물 존중 태도를 갖춘 사육사 등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했다. 동물원 동물도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며 생존해야 한다. 동물 복지가 곧 사람 복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구경 간 동물원에 서식하는 동물이 비참한 몰골이면 여행의 재미는 반감된다.



복잡해진 속내를 숨기고 다시 차량 밖을 향하자 사자가 눈에 들어왔다. 20m 이상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서 도도하게 앉아있는 사자가 여행자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가 주 서식지인 ‘아프리카 백사자’다. 수명은 25년.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사자 두 마리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채 볼을 서로 비비고 있는 광경에 여행객들 넋이 나갔다. 여행객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두 마리는 숲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구경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느릿느릿 움직이며 풀을 뜯어 먹는 기린도 발견했다.



한겨레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로 꼽히는 ‘빅토리아 왕관 비둘기’.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류관으로 이동하자, 천상의 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인이 빚은 듯한 화려한 머리 장식, 또렷한 눈동자, 짙은 세부 바다색 몸뚱어리 등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멸종위기에 처한 ‘빅토리아 왕관 비둘기’였다. 몸길이는 73~75㎝. 19세기 영국을 통치한 빅토리아 여왕에서 이름을 땄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로 불린다. 열대 우림 사바나 지역 등이 주 서식지인 앵무새 등도 보였다. 이곳에 있다는 벵갈 호랑이는 보지 못했다. 어딘가 숲속에 숨어 있으리라. 치타, 리마, 사슴, 주홍 따오기 등 수십마리가 사는 파크 여행은 해가 한낮 더위를 토해내자 마침표를 찍었다. 주말과 공휴일 입장권은 성인 기준 1200페소(약 2만8000원), 평일 1000페소(약 2만3000원)다. 특이한 점은 아동 할인의 기준이 나이가 아닌 키라는 점이다. 2피트(60㎝) 이하는 무료, 2~3피트 아동은 50% 할인된다. 전용차 이용에 따라 추가 요금이 있다.



세부에는 바다만 있지 않다. 조금 더 살피면 ‘다른 세부’가 보인다. 여행은 날마다 관점을 확장하는 일이다.



세부/박미향 기자 mh@hani.co.kr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세요 [한겨레 후원]
▶▶무료 구독하면 선물이 한가득!▶▶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