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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인생의 ‘북극성’을 찾고 있나요? 강진 ‘어나더랜드’에서 함께 고민해 보아요”[그 마을엔 청년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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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에 맞서는 청년들의 이야기-3회

강진 청년마을 ‘어나더랜드’ 전지윤 대표

모진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20대 초반 내내 자신만의 ‘북극성’을 잃어버린 채 수많은 날들을 헤맨 청년이 있었다. 전남 땅끝 강진에서 청년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전지윤 대표. 부산에서 나고 자라는 내내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선망했고 바라던 데로 입학도 했지만, 학부 생활은 시작부터 방황의 연속이었다. 어디에서도 지지 않고 잘해 내보이겠다는 일념으로 전공 공부부터 동아리 활동, 대외 활동 등 어느 것 빠지지 않고 열심을 다했지만 그럴수록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겉보기엔 누구보다 외향적이고 활발하게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듯했지만 알 수 없는 마음이 늘 따라다녔다. 낯선 풍경밖에 없는 서울은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았고 처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생활도 생소하고 서툴기만 했다.

“학업에서도 인생에서도 내 인생의 좌표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정말 주체적으로 10대를 보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토록 바라던 서울로, 대학으로 왔는데 오히려 방향을 잃은 것만 같았어요. 쉼 없이 선택하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어려웠던 때이기도 했어요. 그 시기에 나만의 ‘북극성’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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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청년마을 ‘어나더랜드’ 대표 전지윤 씨. 강진=신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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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에 해외 시장 조사를 하다가 소위 어떤 시장에서든 큰손으로 유명한 중국 상인들의 취향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던 순간은 전 씨의 이후 진로를 확연하게 바꾸어 놓았다. 미술품은 그중 하나였는데 태어나서 예체능 쪽은 전혀 연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그는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 분야는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남을 수 있겠구나.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책임이 주어지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전 씨는 청담동 아트센터에서 도슨트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스펙 쌓기의 연장선으로 시작한 도슨트 활동은 전 씨에게 오히려 경쟁에서 벗어나 새롭게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자유로웠고, 때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 비교적 적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삶의 속도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 공부를 해야겠다!’ 미술사 전공 석사과정을 18학번으로 시작했다. 학사 때와는 달리 석사 과정은 즐거웠다.

2020년 2월 졸업 무렵 코로나19가 번졌고, 작가가 가진 트라우마와 작품에 관해 연구하던 전 씨는 자연스럽게 인문학과 예술 작품을 매개로 한 사람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여러 제약에 갇혀버리게 된 환경. 그 안에서 예술이 그가 경험했듯 사람들에게 숨을 틔우는 한구석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치유 워크숍이라는 아이템으로 ‘넥스트 로컬’이라는 서울시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전남 강진을 처음 방문했고 2021년에는 강진에서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예술치유 지도사 전문가 양성 과정과 예술 주간을 기획, 운영했다. 그렇게 지역에서 기반을 쌓기 시작하여 2022년에는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 사업에 선정되었고 지금의 ‘어나더랜드’를 만들게 되었다. 조금은 늦지만 자신의 북극성을 찾아 차근차근 그 빛을 따라 부산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강진으로 떠났다. 그 과정에서 정부, 지자체와 협력하며 스스로 커리어를 개척해 온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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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윤 대표가 예술과 역사를 매개로 한 아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어나더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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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북극성을 찾고 있는 청년들이 강진에서 지역살이를 하며 스스로 삶의 기준을 정하고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다시금 매핑(mapping) 해보는 작업을 돕습니다. 어나더랜드의 운영진은 모두 인증 자격을 갖춘 코치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과 좌표를 찾아가는 과정을 진심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중간중간에는 강진 고유의 문화, 역사 자원들을 새롭게 풀어낸 지역 경험 콘텐츠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진은 청자의 고장이고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북쪽 ‘개성상인’만큼 유명하고 기세가 대단했던 ‘병영상인’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2022년 강진 청년마을 어나더랜드(구 병영창작상단)가 조성된 이후 5,000여 명이 다양한 기회로 방문했고, 100여 명의 청년 창작자들이 강진에서 체류하며 지역을 새롭게 만나고 더불어 교류했다. 참가자들은 따로 또 함께 자신만의 작업을 직접 기획하고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지역과 어우러지는 동안 흐릿하게나마 자신들만의 북극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중 강진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친구들이나, 좀 더 이곳에 머물며 삶의 다음 단계를 고민해 보고 싶었던 친구들은 강진에 남아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진짜 프로젝트들에도 도전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강진 읍내에 있는 ‘남상객잔’이라는 숙소에 머물렀는데, 동시 거주 인원이 8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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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랜드의 주민 초청 행사에 참가한 전남 강진 중학생들. 어나더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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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이 끝나고 강진에서 살아보기에 진심이 된 친구들이 좀 더 이곳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들려온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공유주거 조성사업 공모사업 소식에 강진군과 함께 도전했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의 응원까지 힘입어 선정되었던 사업이 작년 한 해 내내 부지런히 추진되었다. 그리고 올해 봄, 마침내 전라병영성 바로 앞에 ‘성하객잔’이 문을 열었다. 은하수 꼬리가 지나가는 전라병영성 앞에 위치해서 ‘별 아래 객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공유 주거 공간은 연고와 상관없이 이 마을과 사랑에 빠져 좀 더 긴 호흡으로 이곳에 머물러보고자 하는 청년들이 마을과 함께 수많은 접점을 경험하고 찾아나갈 터전이기도 하다.

2022년 강진과 강원 영월, 경북 영덕 등 3곳에서 시작해 강원 홍천, 충북 보은, 경북 경주, 경남 의령과 함양 등 8곳으로 확대된 공유주거 시범사업 가운데 실제 건물이 준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준공식에 참석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공유주거 공간이 단순한 청년 주거 공간을 넘어 창업 등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주민과의 상생과 교류의 장이자 젊은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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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준공된 전남 강진군 청년 공유주거공간 ‘성하객잔’. 오른쪽에 병영성곽이 보인다. 강진=신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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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랜드에 대한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3년차가 되는 올해로 끝나게 돼 전 대표는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일부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거나 타깃을 바꾸어 제안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전 대표는 “어나더랜드는 지지 기반의 연결감으로 청년기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곳입니다. 독립된 성인기로 이행하는 시기인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어나더랜드를 꼭 찾아주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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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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