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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네살 때 엄마 손 놓쳐 평생 고아로…보호출산제는 아동 권리를 빼앗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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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
오는 7월 19일,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가 시행된다. 출생신고가 누락되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출생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경우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란 명분으로 보호출산제가 도입됐다. 위기 임산부의 병원 밖 출산과 영아 유기 방지를 위해 보호출산 신청 산모의 정보를 비식별화해 신원을 밝히지 않고 출산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태어난 아동은 국가가 보호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보호출산제법은 아동 유기의 합법적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무엇보다 친생부모의 정보 등 아동의 알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사실이 문제로 지적됐다.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국회의원 강성희·강은미·용혜인·진선미, 보호(익명)출산제 폐지 연대,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아동권리연대, 아동인권포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주최한 토론회가 22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토론문 중 일부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두번째 글은 어릴 때 기아가 돼 평생 가족을 찾지 못한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의 토론문을 일부 수정한 글이다. 편집자

1. 더 이상 '고아(기아) 호적'의 피해 아동은 없어야 합니다.

저는 1977년 4살 무렵 5월 여름에 시장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직후 춘천 오순절 입양위탁소에 보내졌고,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가족을 찾지 못하고, 온갖 상처와 트라우마를 껴안은 채 '고아(기아)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피해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길을 잃은 아동에게 원가족으로 복귀를 시켜줘야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입양위탁소에 수용되었고 6개월 만에 입양, 시설장과 춘천시장, 춘천지방법원에 의해 '고아호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1978~1980년 사이 영국과 미국으로 2번의 해외입양을 보내려고 했습 니다.

해외입양이 좌절되자 원주의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되어 수용되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끌려온 시설은 말이 고아원이지 강제 수용소나 다름없었습니다. 시설에 입소되자마자 방을 배정받아 생활했고, 매일 아침 6시면 기상하여 체조하고, 예배보고, 청소하고, 식사 등을 이어가는 등 그야말로 모든 일상이 철저히 군대식 제식 훈련소와 같았습니다.

1970-80년대 집단수용시설 중심의 실상은 폐쇄적이었습니다. 반복되는 폭력과 학대에 아동의 인권이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버티며 살아내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아동 인권이 전무하던 197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멀쩡하게 부모가 있는데도 누구의 동의도 권리도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경쟁적으로 만들어지는 부모 없는 '고아(기아) 호적'의 관행이었습니다. 당시 시설수용소에는 이렇게 '고아호적'으로 수용된 아동들이 100명 정도였고, 관할 지역에만 5개의 시설이 있었으니 그 수는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조차 없습니다.

'고아(기아)호적'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년 이후(보호 종료)로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그야말로 '편견과 차별'의 모든 소나기를 맞아가며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반인권적 제도입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으므로 힘들고, 교육, 금융, 취업 등 사회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홀로 감당하며 책임져야 하는 유령 같은 삶의 비인간적 제도입니다.

2. 보호(익명)출산제는 아동의 권리가 전혀 고려되지도, 보장되지 않은 채 통과된 심각한 반인권적 법안이며 제도입니다.

출생통보제와 보호(익명)출산제가 이제 오는 7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작년 6월에 출생통보제가 통과되고, 3개월 만인 10월에 이 법안이 일사천리 통과되는 과정이 참으로 이상하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참담하고 고통스러웠으며, 악몽을 꾸는 듯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1970년대 당시 저를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입양아동, 시설수용 아동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통과되는 과정이 참으로 문명이 개명하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유례없는 일이었습니다.

늦게라도 아동의 공적 출생통보제가 시행되어 아동의 생명을 지켜내고 권리를 위해 공론화되었다는 건 다행이고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시행하려는 보호(익명)출산제는 사실상 과거의 관행대로 회귀하는 법안입니다. 아동이 1. 자기 부모를 알고(정체성), 2. 원가정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양육받을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통과됐습니다. 따라서 보호출산제는 폐지하고, 아동의 권리를 위해 더 많은 숙의와 충분하고 세심한 입법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보호(익명)출산제는 고아(기아)호적 피해 아동을 양산하며 부모와 아동을 강제 분리하는 폭력적인 법안입니다.

첫째 보호출산제는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알지 못하고, 둘째 아동이 원가정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양육받을 권리를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 함을 전제하는 강제적이고 치명적이며 아동에게 폭력적인 법안입니다.

고아(기아)호적은 부모를 알 수 없고, 버려진 아이(유기)로 기록되기 때문에 아동이 자신의 부모와 다시 결합할 수도, 원가족으로 복귀하도록 면접할 권리와 상담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동에게 생존과 존엄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훼손되는 그야말로 재앙적 신분제도입니다. 아동의 출생 이후 살아갈 유년의 뿌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생애 기간임을 고려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고아(기아)호적 아동의 피해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법안입니다.

지금도 제가 지원하며 돕고 있는 '자립 청년(보육원 퇴소자)'들은 '고아'라는 낙인과 차별과 혐오가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신분조차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전국적으로'고아호적'으로 살아가는 누적 시설 퇴소인들은 1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부분 무연고자로 불립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3104 명(2020년 보건복지부 통계 기준)이 '자립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을 퇴소해 사회에 나 와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당하고 부정당한 채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동의 출생등록과 양육은 보호받아야 하는 보편적 권리이자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공적 책무입니다.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알고, 원가정에서 친생부모와 애착을 형성하며 양육받을 권리는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분리해서도 안 되고 안되고 친생부모와 생이별을 강요해서도 절대 안 됩니다. '분리불안'은 아동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폭력, 학대, 상처로 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고,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청년들이 있고, 이 비율이 일반 성인보다 2~3배 높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출생 아동이 자신의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살아가며, 권리로서 지켜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는 모든 지원과 자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권리를 모든 아동이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아동이 태어나는 즉시 출생등록 될 권리를 자유권과 사회권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독자적 기본권으로 판시한 지난해 헌법재판 소의 결정문이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생애에 미치는 그 나라의 문화적, 시민적, 경제적 권리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34년이 넘었고,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 헤이그협약도 모두 비준했습니다. 이제라도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회는 그에 걸맞은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공적 책무도 설계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4. 아동의 출생등록과 양육받을 권리는 아동 인권의 출발점입니다.

지금 저출생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가 모든 에너지와 관심을 집중하고 논의해서 입법해야 할 것은 '보호(익명)출산제'가 아니라 아동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보장할 '출생과 양육의 권리 보장'에 대한 것입니다.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는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는 첫 단계이자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전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아동이 사람으로서 인격을 자유로이 발현하고 부모와 가족 등의 보호 아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제라도 우리 국가와 사회가 아동의 출생과 양육 정책에 있어서 '보호'라는 소극적 조치와 아동시설 수용 중심의 체계가 아니라 원가정에서 친생부모에 게 양육받을 권리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회적 기본권리와 공적 의무로서 뒷받침하고 보장해야 합니다.

그 첫 순간이 모든 아동이 보편적으로 출생을 축복받으며 원가정에서 친생부모에 의해 애착과 정체성을 형성하며 양육받을 권리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존중받는 아동 인권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6월이며 새로운 22대 국회가 개원됩니다. 부디 아동의 권리 보장에 관심 있게 귀 기울여 제도와 법안을 설계하고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프레시안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조민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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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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