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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누가 날 죽여?”라던 이란 영웅 제거...미국의 ‘결기’에 그들은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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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F 매켄지 前 미 중부사령관

“내가 술레이마니 총사령관 제거 작전”

곧 출간되는 저서에서 작전 과정 공개

지난 2020년 1월 이란의 최정예 부대인 쿠즈(Quds)군 총사령관 카심 술레이마니를 제거하는 작전을 수행한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이었던 케네스 F 매켄지 예비역 대장은 “당시 수 개월에 걸쳐 중동 지역 미군에 대한 공격 강도를 높여갔던 이란 지도부는 술레이마니를 제거하자 다시 계산했고 결국 물러섰다. 이 작전은 이후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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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 모습을 드러낸 케네스 F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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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8일 출간되는 저서 ‘멜팅 포인트(Melting Pointㆍ녹는점)’에서 “이란의 행동은 예측 불가능해 보이지만, 미국이 강력하게 나설 때 이란은 물러나고 미국이 물러날 때 이란은 진격한다”며 “술레이마니 제거가 이 법칙을 증언하며, 이게 미국의 중동 정책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미 월간지 애틀랜틱 몬슬리 웹사이트에 소개된 ‘멜팅 포인트’의 술레이마니 제거 관련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점점 대담해진 술레이마니 ”누가 나를 죽여?”

술레이마니는 30년 넘게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얼굴이었다. 두려움을 몰랐고, 20대에 사단장 지위에 올랐다. 1997, 1998년쯤 IRGC에서도 최정예인 쿠즈군 사령관이 됐다. 쿠즈군은 해외의 비(非)재래식 작전을 총지휘했다. 술레이마니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아랍어에 정통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직통(直通) 라인이 있었고, 하메네이의 아들처럼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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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미국에 의해 제거된 카심 술레이마니 이란 쿠즈군 총사령관


2014년쯤 이란에선 영웅이 됐다. 그만큼 자아도 높아졌다. 이란 군부ㆍ정보기관의 다른 지도자들과 논의 없이 중동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누구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19년에 누군가 묻자 “그들이 날 어떻게 하겠어? 날 죽일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술레이마니가 중동 판도에 몰고 온 이 역동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직접 손을 대려고 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중부사령관 취임 후 처음 한 일

그래서 2019년 3월 내가 중부사령부 사령관이 되자마자, 내가 처음 한 일은 대통령이 요구할 때에 우리가 그를 제거할 플랜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답은 신통치 않았다.

사령부 산하 합동특수작전부대(JSOTF) 지휘관에게 해법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중앙정보국(CIA)와 중동의 파트너 국가들도 모두 술레이마니 제거에 관심이 있었다.

JSOTF이 제시한 여러 방안 중에서 현실성이 떨어지고 정치적 비용이 너무 큰 것들을 빼고 나니, 백악관의 ‘제거’ 명령에 행동할 몇 가지 방안을 추릴 수 있었다.

술레이마니가 조종하는 이라크의 준(準)군사조직인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그해 12월까지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 기지를 19차례 박격포와 로켓으로 공격했다.

2019년 12월 27일 한 미군 기지에 약 30발의 로켓이 떨어졌고, 미군 4명과 이라크 경찰 2명이 다쳤다. 미 민간인 군(軍)계약자 1명이 살해됐다. 미군을 괴롭히는 수준에 머물던 이란의 공격이 ‘대량 살상’ 단계로 넘어간 것이었다. 이제 대응해야 할 때였다.

◇국방장관에게 타깃 리스트 선정해 보고

12월 28일 아침 일찍 플로리다주 탬파의 사령관 관저에서 참모들과 그동안 개발한 방안들을 검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 지시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통해 오겠지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길 원하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됐다.

우리는 일단 우리가 계속 작전을 해왔던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란 타깃을 먼저 추천했다. 타깃은 이란 남부의 방공(防空)시스템과 석유시설, 홍해의 이란혁명수비대 정보수집선(船) ‘사비즈(Saviz)’ 등 시설 타깃 4개와, 인물 타깃 3명이었다. 인물 타깃엔 이 모든 것의 배후인 술레이마니가 포함됐다. 28일 오후, 일단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 기지들을 타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공격은 다음날인 일요일 12월 29일이었다. 우리의 공격 결과 평가서를 갖고, 에스퍼 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마라라고(트럼프 소유 골프 리조트)로 가서 보고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밀리는 대통령이 그 정도 공격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대통령이 술레이마니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28일 저녁에 우리가 그를 살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보고서에 마지막 수정을 가했다. 술레이마니 제거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의 제거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명기했다.

술레이마니는 분명히 ‘정당한 타깃’이었고, 그의 제거는 수년간 미국이 보여주지 못했던 강력한 의지를 과시하는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란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매우 우려했다. 술레이마니 제거는 이란을 다시 억제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이란은 우리를 괴롭힐 많은 대안을 갖고 있었다.

밀리 의장을 통해 에스퍼 장관에 보낸 타깃 리스트에서도 나는 술레이마니 제거를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제거가 초래할 위험성을 명기했다.

◇트럼프의 불만족

29일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밀리 의장의 예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만족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술레이마니가 이라크에 올 때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관저에 있던 내게 밀리 의장이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했다. 나는 1,2초 가만히 있다가 명령을 다시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확히 들은 것이 분명했다. 밀리는 또 대통령이 예멘에 있는 쿠즈군 사령관과 사비즈 정보수집선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통화를 마칠 무렵, 나는 평생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터득한 습관대로, 지시받은 명령을 밀리 의장에게 복창(復唱)했다.

그리고 29일 저녁 7시 참모들을 소집했다. 모두 나의 지시사항 전달에 놀랐다. 우리의 명령 수행으로, 중동의 우방국들도 불길에 싸일 수 있었다.

◇술레이마니 제거 방정식은 ‘과학’과 ‘예술’ 영역

술레이마니와 같은 타깃은 파인딩(finding)-픽싱(fixing)-피니싱(finishing)의 3단계를 거친다. 그의 위치를 파악하는 파인딩은 ‘과학’이다. 그러나 타깃의 이동과 습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최적의 시간과 장소, 기회의 창(窓)을 확인하는 픽싱은 ‘예술’이다. 또 민간인에 대한 부수적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타깃을 제거하는 피니싱도 ‘예술’ 영역이다.

물론 그해 봄부터 우리는 술레이마니에 대한 파인딩과 픽싱 작업을 했다. 우리는 술레이마니가 언제 바그다드에 오는지, 또 올 때는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통하고 착륙 후에는 신속하게 공항을 빠져나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공항 주변 접근로는 차량 통행이 뜸했다. ‘제거 방정식’에서 픽싱 부분은 술레이마니가 바그다드 도심으로 이동할수록 복잡해진다.

술레이마니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MQ-9 ‘리퍼(Reaper)’ 공격 드론의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MQ-9이 무한정 공항 위에 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의 도착 시간을 대략 알아야 했다. 우리는 구름 없는 야간 공격이 좋지만, 그건 술레이마니 일정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공격 시점 앞두고, 바그다드에 안 내린 술레이마니

우리 정보로는, 그가 12월31일 화요일 테헤란을 출발해 바그다드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술레이마니를 먼저 제거하고, 수분 뒤에는 예멘에 있는 쿠즈군 사령관도 제거하기로 했다. 그래야 예멘 타깃도 대피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비즈 정보수집선은 일단 놔두기로 했다.

이미 29일 우리의 공격으로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카타이브 헤즈볼라 지휘관 여러 명이 죽었다.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강력한 시위가 일어났다.

모두들 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 일어난 미 영사관 피습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벵가지를 방문했던 미국 대사를 포함해 미국인 4명이 살해됐다. 나는 바그다드의 미 대사관을 지키는 해병대 병력을 강화하고, AH-64 아파치 헬기를 여러 대 공중에 띄워 무력을 과시했다.

술레이마니를 제거하기로 한 12월31일 아침 일찍 사령부 본부에 출근했다. 2개의 거대한 모니터가 벽에 걸렸다. 하나는 MQ-9 드론들이 여러 각도에서 찍어 전송하는 흑백 동영상을 번갈아 띄웠고, 다른 모니터는 그 시간 이라크와 이란을 지나는 수백 대의 항공기들을 보여줬다.

오전 9시45분(미 동부시간), 드디어 술레이마니가 탄 비행기가 테헤란을 이륙했다. 바그다드까지의 비행 시간은 2시간. 그러나 이 비행기가 전세기인지, 일반 여객기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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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레이마니 암살에 동원된 MQ-9 "리퍼" 공격 드론이 발사하는 헬파이어 미사일/미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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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맞을’ 준비는 끝났고, MQ-9 드론은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바그다드에 접근하는데도, 술레이마니의 비행기는 고도 3만 피트에서 하강하지 않았다. 국방부에서 누군가 “이 개OO(this f_ _ker) 그냥 격추시킬 수 없느냐”고 물었다.

중부사령부 산하 카타르의 미 공군 사령관에게 전화했다. “항공기 격추 명령을 내리면 집행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카타르의 미 공군이 신속하게 2대의 전투기를 이 비행기 뒤로 보냈다.

이 비행기는 출발이 많이 지연된 민간 여객기로, 50명 이상의 민간인이 함께 타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목적지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였다.

아무리 술레이마니라고 해도, 민간인 50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우리 전투기는 돌아왔고, 예멘에서 또 다른 쿠즈군 사령관을 제거할 예정이었던 전투기들도 일단 철수했다.

오전10시48분(미 동부시간) 나는 부하들에게 “대통령 지시는 유효하며, 우리는 기회를 봐서 발사한다”고 명령했다. 이후 36시간 내에 술레이마니가 다마스쿠스에서 바그다드로 간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우리에겐 기회가 더 있었다.

◇대학풋볼경기장 화장실에서 보안 전화기로 보고

다음날인 2020년 1월1일, 나는 탬파에서 열린 대학풋볼경기 ‘아웃백 볼(Outback Bowl)’에서 시합구(球)를 전달하는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경기장의 스위트룸(suite) 화장실에서 에스퍼 장관, 밀리 합참의장과 보안 전화기로 통화해야 했다. “우리 정보에 따르면, 술레이마니는 빠르면 내일 바그다드로 날아갈 것”이라고 얘기해 줬다.

1월 2일 중부사령부 본부는 오후 들어서 긴장감이 더해졌다. 술레이마니가 탈 비행기는 다마스쿠스에서 계속 한 시간씩 이륙이 미뤄지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연거푸 들이켰고, 모두 지휘관인 나만 보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가 됐다고 확신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우리의 통제 밖에 있었다. 바로 바로 적응해야 했다.

드디어 술레이마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탄 여객기가 오후 3시30분(미 동부시간) 다마스쿠스를 이륙했다. 밀리 의장에게 보고했지만, 국방ㆍ국무장관들도 국방부의 보안회의실에서 모니터로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술레이마니의 여객기가 곧 우리의 추적 시스템에 떴고, 모니터에서 동쪽으로 조금씩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계속 여객기의 고도를 지켜봤다. 다행히 바그다드 상공에 들어서면서 하강해, 현지 시간으로 자정 전(미 동부시간 오후 4시35분)에 착륙했다.

구름이 많아서, MQ-9 드론은 낮게 떠야 했다. 비행기 앞쪽 도어에 계단이 부착되는 것을 봤다. 합동특수작전부대(JSOTF) 사령관이 전화했다. “이제부터는 매우 신속하게 작전이 전개되니, 명령을 중지할 생각이라면 지금 내리셔야 합니다.” “기회가 오는 대로, 발사하시오.”

◇발사 권한은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실무팀에 일찍 위임

오후 4시 42분, 술레이마니가 탄 차량과 수행 차량이 공항 주변 도로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JSOTF 사령관에게 공격 권한을 위임했고, 그는 그 권한을 무기 발사팀에 위임했다. 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가장 낮은 수준으로 이 권한을 위임해야,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신속하게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차량의 속도가 빨라졌고, 어느 순간 갑자기 화면 전체에 거대한 흰색 섬광이 번쩍거렸다. 술레이마니가 탄 자동차의 파편이 공중으로 튀었다. 1,2초 뒤 수행 차량도 불탔다. 어떠한 환호도 없이, 우리는 침묵 속에 이를 지켜봤다. 1분 뒤에 8개의 폭탄이 더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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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격드론이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에 전소 파괴된 술레이마니 소장의 탑승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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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성공한 듯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 관심은 예멘의 쿠즈군 사령관이 있다고 판단한 가옥에 대한 공격으로 옮겨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는 예멘 타깃을 놓쳤다. 그러나 이 두 건의 공격이 13분 간격으로 이뤄진 것은 놀랄 만한 성과였다. 이어 술레이마니 제거가 확인됐다.

◇”무(無)대응은 대응보다도 위험성이 더 컸다”

술레이마니 제거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것이었다. 대통령 참모들은 이란이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실 이것은 중부사령부나 정보기관에서는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었다. 술레이마니 제거 공격이 부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후폭풍에 대해 많은 이가 낙관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결국 나는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 술레이마니를 제거하지 않았으면, 더 많은 미군과 연합군, 이라크인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무대응의 위험성은 대응에 따른 위험성보다 컸다.

이란은 미국의 무력 과시 능력을 의심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이전 부시ㆍ오바마 행정부에서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이란은 미국의 적나라한 힘을 목격했다.

그리고 다시 계산해야 했다. 이후 이란은 중동의 네트워크에 “미군에 대한 대규모 공격은 피하라”고 작전 지침을 변경했다.

술레이마니 제거는 미국ㆍ이란 관계에서 분수령이 된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미국의 정책에서 결여됐던 일종의 결의를 이란에게 보여줬다. 미국은 지난달 이란이 대규모 미사일ㆍ드론 공격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이 결의를 다시 보여줬다.

미국이 중동에 남을 생각이라면, 계속 같은 결의를 보여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확전(擴戰)의 위험성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위험성은 관리가 가능하다.

오랫동안 미국의 중동 정책을 망가뜨린 것은 이런 위험에 대한 수용 거부였다. 술레이마니 암살의 교훈은 분명하다. 이란은 미국의 힘을 두려워하고, 미국의 약점을 파고든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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