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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담보가치 부풀리기’ 왜 반복되나…은행에 휘둘리는 감정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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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NH농협·KB국민은행 등에서 ‘담보가치 부풀리기’로 과다 대출하는 배임 사고가 잇따라 적발됐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자체 감사를 주문하고 있지만 전문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할 담보가치 평가가 여전히 은행의 ‘입김’에 휘둘리는 제도적 환경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

시중은행 ATM.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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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행은 지난 3월 부동산 가격을 실제보다 12억6000만원 부풀린 매매 계약서를 토대로 담보 대출을 실행한 직원의 배임 혐의를 적발했다. 이후 비슷한 유형의 금융사고 공시가 잇따라 올해 상반기에만 국민·농협은행에서 총 5건, 합계 55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드러났다. 반복되는 사고에 금융감독원은 다음달까지 모든 은행에 상업용 부동산·토지 등 담보 가치를 부풀려 과다 대출한 사례를 조사해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

은행권 관계자들은 ‘담보가치 부풀리기’의 사고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은행 직원들이 담보가치를 자체 산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담보 평가를 외부 감정평가법인에 맡긴 경우라면 은행 직원과 법인의 공모를 의심해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둘 중 어느 쪽이든 감정평가의 공정성·독립성을 보장하지 않는 제도의 허점이 금융사고가 반복되는 토양이 됐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들은 담보대출 10건 중 약 7건의 감정평가를 자체적으로 산정하고 있다. 이성원 한국부동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금융기관 자체산정 비중은 약 68%에 달했다. 2010년부터 감정평가수수료가 은행 부담이 된 데다, 현행법상 은행이 감정평가를 외부 법인에 의뢰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자체산정 관련해 일률적으로 강제되는 법·규정도 없다. 내부통제 의무는 있지만 구체적 지침은 없어 은행별로 제각각이다. A 은행 관계자는 “여신 합계액 5억원 이하 혹은 담보의 시가 추정 금액 10억원 이하일 때 자체산정을 한다는 등 내부 기준이 있지만, 근거 법은 없어 은행마다 모두 상황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 은행 관계자는 “담보 가격에 따라 의뢰 여부를 정하는 내부 기준은 없고, 건별로 적정성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대출 실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은행 직원들이 담보물 가치 산정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수행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미국 등 해외에서는 금융회사의 담보가치 자체산정을 법으로 금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외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한 담보대출의 신뢰성도 물음표가 찍힌다. C 은행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은 외부감정평가법인을 매번 무작위로 선정하기 때문에 은행 직원과 법인의 공모가 일어나기 힘들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감정평가사들의 반응은 달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평가사는 “실제로는 은행이 여러 감정평가법인에게 탁상감정을 받아 본 후 가격을 비교해 은행 입맛에 맞는 결과를 택하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무작위 선정을 한다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선정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은 감정평가법인 선정에 있어 공정성 및 독립성 확보할 수 있는 내부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또다른 감정평가사 D씨는 “여전히 은행은 갑, 감정평가사는 을인 상황에서 감정평가의 공정성이 위협받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외부 감정평가 의뢰를 감정평가의 원칙적 방법으로 규정하고, 감정평가에 대한 통일된 기준과 지침을 마련해 은행 입김에서 벗어난 전문적이고 정확한 담보가치 산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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