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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단독] 전력망법, 국회에 발목잡혀 … 반도체 '송전 고속도로'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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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반도체 전력대란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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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일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22조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메가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수요량이 대형 원전 14대 이상 발전량에 맞먹을 정도로 막대할 전망이다. 클러스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 대부분은 지방에서 송전망을 통해 끌어와야 하는데, 그동안 전력망 구축은 주민 반대와 부처 간 이견으로 길게는 10년 넘게 미뤄지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망 구축을 앞당길 법안은 국회에서 자동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간이 보조금"이라며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위한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속도전을 주문하고 나섰지만 핵심인 전력 확보에서부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 업계 등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공돼 100% 가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2053년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량은 14.7GW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시기에 맞춰 전력 수급량을 점점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력 수요량 14.7GW를 조달하기 위해 정부는 우선 한국전력 산하 발전 3사(동서, 남부, 서부발전)가 2036년까지 500㎿ 분량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6기를 지어 3GW를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2037년부터는 송전망을 통해 태양광과 풍력발전 단지가 몰린 호남·서해안과 화력발전소·원전이 위치한 동해안으로부터 전기를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용인 산단을 돌릴 전력 중 10GW 이상은 동·서해안에 편중된 발전소로부터 끌어오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지금의 송전망 설비로는 이만큼의 전기를 실어 나르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추가로 송전망을 구축하는 게 시급하지만 송전망 건설은 예상보다 수년간 미뤄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산단 건설 진척 상황에 맞춰 전력을 공급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북당진~신탕정 345㎸ 송전망 건설사업은 애초 2012년 6월 준공이 목표였지만 주민 반발과 각종 송사에 휘말려 150개월이 지연돼 올해 12월에야 준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신송산까지 이어지는 345㎸ 송전망 건설사업은 2021년 6월 준공이 목표였지만 90개월 넘게 지연될 것으로 예상돼 2028년 12월에나 준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남해 해상풍력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을 변압하는 345㎸ 신장성 변전소 건설은 77개월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추진했다. 전력망 건설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고, 송전망이 지나는 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보상책이 포함됐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전력망 확충위원회를 만들어 한전 대신 정부가 직접 나서서 주민과의 갈등을 중재하고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각 부처가 제각각 하던 인허가 절차를 빠르게 처리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높이는 구상이다.

그러나 법안은 발의 8개월이 지나도록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 계류 중으로, 29일 종료되는 이번 회기 국회 통과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지역 주민의 반대와 지자체 인허가 지연, 부처 간 불협화음 문제가 있는 만큼 전력망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선 특별법의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평가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실제 동해안의 많은 화력발전소가 송전 문제로 가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전력 수요가 더 많이 늘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송전망 건설과 관련해 지자체 인허가와 보상, 지원 방안을 법제화하는 특별법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송변전설비 구축을 책임져 왔던 한전이 유례없는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어 정부가 나서서 송전망 건설을 조율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전은 연결 기준 총부채가 200조원에 달하는 데다 물가 자극 우려에 전기료 동결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수조 원이 드는 송배전망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전력난을 해소할 근본적인 해법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일정한 주파수의 고품질 전기가 대규모로 필요한 반도체 산단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원전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설치 제약이 비교적 적은 소형모듈원전(SMR)을 전력 수요지 인근에 설치해 송전망의 부하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정동욱 인하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간헐성 때문에 첨단산단에 전력을 공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원전은 일정한 출력을 유지할 수 있어 유용하고, 특히 SMR은 수요지 인근에 발전소를 짓고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개념으로 대규모 송전망 건설이 필요 없어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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