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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생이 왜 지금?…英국왕의 서울 한복판 생일파티 가보니 [시크릿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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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3일 오후 서울 영국대사관.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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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 주한영국대사관의 육중한 철문이 지난 23일 오후 활짝 열렸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의 생일 잔치에 초대된 VIP들을 위해서입니다. 국왕 생일 파티는 주한영국대사관이 매년 5월 말 치르는 주요 행사입니다. 초대를 못 받으셨다고요? 괜찮습니다. 기사와 함께 행사장의 이모저모를 편안히 즐겨보시죠. 시판되지 않는 영국 에일 맥주부터 대사관 측이 공들여 대접한 뷔페, 다채로운 축하공연까지 가득했던 찰스 3세 생일 파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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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의 젊은 시절.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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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상식 한 토막. 찰스 3세의 원래 생일은 언제일까요? 5월 23일 아니냐고요? 땡. 아닙니다. 찰스 3세는 1948년 11월 14일 영국 런던 버킹검궁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왜 5월에 생일 잔치를 하냐고요? 왕실의 전통 때문입니다.

영국인들이 중요시하는 게 몇 가지 있죠. 오후에 차와 다과를 즐기며 하루 일과의 숨고르기를 하는 애프터눈 티,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고, 친지를 초대해 가든 파티를 여는 것 등등. 영국 왕실 역사기록을 관리하는 재단, 로열 컬렉션 트러스트를 찾아보니, 애프터눈 티와 가든 파티 모두 빅토리아 여왕(1819~1901) 때의 기록이 최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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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의 상징, 근위병. 지난 23일 오후 대사관저 앞을 지키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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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의 1868년 6월 22일 일기를 살짝 엿볼까요. 여왕은 이날 처음으로 자기가 아끼던 정원에서 손님을 초대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적었다고 해요. "이날 오후는 훌륭했고, 과히 덥지도 않았어. (중략) 캐모마일과 잔디를 섞어 심은 정원에서 가든 파티를 열고,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티 텐트(tea tent)도 설치했지." 이때부터 여왕은 가든 파티를 자주 열었다고 합니다. 생일 역시 가든 파티로 하는 게 조금씩 전통으로 굳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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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가 중요한 디저트는 서늘한 실내에 따로 차려졌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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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가 지난해 6월 17일 '군기 분열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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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든 파티는 하늘이 도와야 열 수 있습니다. 날씨가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찰스 3세의 생일이 있는 11월은 영국의 날씨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찰스 3세뿐 아니라 많은 영국 왕족이 겨울에 태어났는데, 고심을 하다 왕실은 이런 결정을 내려요. "생일을 두 개로 만들자"는 거죠. 가든 파티를 하기에 좋은 늦봄 또는 초여름에 공식 파티를 하는 겁니다.

찰스 3세의 생일 잔치는 그래서 5월 말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겨울에 태어난 왕족 뿐 아니라, 많은 영국 군주가 생일 잔치를 두 번 해요. 2022년 작고한 엘리자베스 2세는 4월 21일에 태어났는데 공식 생일 잔치는 6월 둘째주 토요일에 했습니다. 군대가 공식 깃발을 들고 국왕 앞에서 행진하는 군기분열식(Trooping the Colours) 행사와 함께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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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대사관에 모인 손님들. 가운데 핑크색 스카프 차림의 김영기 영국대사 부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한승수 전 국무총리, 박진 전 외교부장관 등이 보인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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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 정동 주한영국대사관으로 돌아올까요? 서울 주한영국대사관에도 멋들어진 정원이 있습니다. 덕수궁과 서울특별시청 바로 옆의 도심 한복판임에도 작은 수영장과 테니스장도 있지요. 23일엔 모두 손님을 위해 개방됐습니다. 잘 차려입은 손님 중엔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부터 뉴질랜드 던 버넷 대사도 보였습니다. 한국 정부 대표로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과 한승수 전 국무총리, 국회 대표로는 나경원 국민의힘과 박진 전 외교부장관 등이 콜린 크룩스 대사 부부와 함께 연단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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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대사관은 성소수자 권익 보호 등 다양성의 가치 역시 중시한다. 찰스 3세 생일 잔치에도 관련 포토존이 꾸려졌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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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사에 초대되는 기쁨은 영문학자이자 작가였던 피천득(1910~2007) 선생님도 유명 에세이집『인연』에 적었습니다. 제목 자체가 '가든 파티'로, 피 선생은 "나는 그날을 위하여 오래간만에 양복바지를 다려 입었고 이발까지 하였었다"며 "잘 가꾼 잔디가 영국풍 정원을 자랑하는 화창한 초여름 오후였다"고 적었습니다. 당시 피 선생을 초대한 건 1957년 부임한 휴버트 존 에번스 대사였습니다. 약 67년 후인 지난 23일, 크룩스 대사와 한국인 부인 김영기 여사도 손님을 화사한 미소로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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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하면 떠오르는, 피시 앤 칩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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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크룩스 대사는 한국어뿐 아니라 조선어도 유창한 거, 아셨나요? 북한에서도 대사로 근무했던 이력이 있거든요. 아래 링크를 보시면 당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크룩스 대사의 한국어 환영사,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금강산도 식후경. 음식 구경을 해볼까요? 국제사회에서 영국은 "맛있는 음식이 하나도 없다"는 놀림을 많이 받죠. 하지만 영국에도 맛있는 음식은 많아요. 꽤 알려진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도 물론 있지만, 셰퍼즈 파이(shepherd's pies, 양치기들의 파이라는 뜻으로, 감자와 다진고기, 토마토소스로 만든 요리)와 같은 음식이 그렇죠.

애프터눈티 전통 덕에 발달한 각종 디저트는 또 어떻고요. 이번 생일 잔치엔 각종 과일과 함께 상큼한 과일 젤리와 레몬 파운드케이크가 나왔습니다. 영상과 사진으로 만나보시죠. 한켠엔 시중엔 판매되지 않는, 이날만을 위해 만들어진 에일 맥주와, 각종 영국 위스키 등이 차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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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다진고기, 토마토 소스가 어우러진 셰퍼즈 파이.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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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파운드케이크.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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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파티는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수백명의 다국적 손님들은 찰스 3세의 건강을 기원하고 한국과 영국의 양국관계가 더욱 발전하길 바라며 축배를 들었죠. 앞으로도 주한영국대사관의 중요 행사로 이어질 국왕 생일 잔치. 올해 가든 파티에서 최연소 손님, 임사랑(5) 양의 인사로 마무리합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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