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외압 국면 최소 40차례 연락
윤석열-이종섭 직접통화 후 긴밀연락
범정부적으로 사건 관리했을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5일 인천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인천상륙작전 재연을 지켜보며 이종섭(왼쪽) 당시 국방부 장관, 이종호 당시 해군참모총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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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진 기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실·정부·여당 고위관계자들과 수십 차례 연락(통화·문자)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이 전 장관과 직접 통화한 8월 2일 이후 이런 통화가 몰렸다. 이른바 'VIP(윤 대통령) 격노' 후 사태 수습을 위해 정부 고위 관계자 등이 긴박하게 움직였던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9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죄 재판과 관련해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된 통신사실조회회신 결과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대통령실·정부 고위관계자들, 여당 의원들과 최소 40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해당 기간엔 ①이 전 장관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인정한 수사기록 경찰 이첩 보류 지시(7월 31일) ②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이 이첩한 수사기록 회수(8월 2일) ③국방부 조사본부가 수사기록 넘겨받아 채 상병 사망사건 재검토 착수(8월 9일)가 이뤄졌다.
특히, 이 전 장관이 받은 40회의 연락 중 30회가 지난해 8월 2일 오후 3시 이후에 몰렸다. 윤 대통령이 같은 날 낮 12시~오후 1시 이 전 장관에게 세 차례에 걸쳐 18여 분간 직접 통화를 한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이 움직인 뒤 정부 고위 관계자 등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박 대령은 이날 오전 이 전 장관의 지시를 어기고 수사기록을 경찰에 이첩했다가 낮 12시45분쯤 보직에서 해임됐고, 국방부 검찰단은 같은 날 저녁 경찰에서 수사기록을 회수했다.
가장 많은 연락을 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이었다. 지난해 8월 4~7일 이 전 장관과 일곱 차례 통화와 한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김 처장은 군 복무 시절 이 전 장관과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사태 해결을 위해 이 전 장관에게 조언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외에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지난해 8월 2일 2회)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지난해 8월 8일 1회)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지난해 8월 4일 1회) △방문규 당시 국무조정실장(지난해 8월 3일 4회) △임기훈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지난해 7월 31일~8월 4일 3회) 등도 확인됐다. 임 비서관은 특히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 수사 보고를 받고 '격노'한 의혹이 제기된 7월 31일 오후 3시경 이 전 장관과 11분 넘게 통화했다. 임 국방비서관은 같은 날 오후 5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윤 대통령의 격노설을 전한 인물로 의심받았지만, 지난해 군검찰 조사 당시 "격노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정부 고위 관료들도 부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8월 2일부터 8월 6일까지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통화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4일부터 8월 7일 사이 다섯 차례 통화와 세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상민 장관은 행안부 소속 경찰청에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 사건에서는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자료를 다시 돌려받는 문제 때문에 소동이 빚어졌다.
여당 의원들도 이 전 장관과 접촉한 흔적이 발견됐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지난해 7월 28일 오전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문자를 주고 받고 한 차례 통화했다. 해병대 수사단 조사가 진행 중이던 시기다. 강대식 의원은 지난해 8월 1일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문자를, 성일종 의원은 지난해 8월 7일 이 전 장관과 3분여간 두 차례 통화했다.
통화 경위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법률대리인 김재훈 변호사는 "대화 내역은 자세히 모르지만 당시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작년 8월 1~12일) 지원과 관련해서 (한 총리 등과)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만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전 장관 측 해명대로 업무 범위가 광범위한 국방부 장관의 모든 통화가 '채 상병 사건'에만 국한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당시 윤 대통령의 반응이나 대통령실·국방부의 분위기로 미뤄볼 때 이 중 상당수 통화는 해당 사건 수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 전 장관 등을 상대로 통화한 이유나 통화 내용 등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방침이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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