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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강형욱 회사는 훈련소계 삼성"… 갑질에 우는 훈련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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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반려견 훈련사 4명 인터뷰]
교육비 명목으로 월 50만 원 내기도
욕설·폭행 등 난무하고 성추행당해
도제식 교육·좁은 업계 구조적 문제
공론화 등 업계 스스로 목소리 내야
한국일보

지난달 24일 경기 남양주의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가 운영하는 반려견업체 보듬컴퍼니.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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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욱씨 회사는 훈련소계 삼성이에요.
저희는 최저임금이라도 주니까 가고 싶었거든요.
4년 차 반려견 훈련사 B(34)씨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불거진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에 대한 반려견 훈련사들의 평가는 세간의 시선과 사뭇 달랐다. 훈련사들은 폐쇄회로(CC)TV 감시, 부당 급여, 폭언 등 강 대표를 둘러싼 갑질 의혹은 반려견 훈련업계에선 흔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현직 반려견 훈련사 4명을 통해 업계에 만연한 갑질 행태를 들어봤다.

하루 14시간 일하는데 50만 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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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훈련소 내 훈련사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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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양육 인구가 늘면서 반려견 훈련사도 유망 직종으로 떠올랐다. 애완동물학과 등 관련 전공이 있는 대학만 전국 50여 곳. 반려견 훈련사 자격시험(한국애견연맹 훈련사 1·2·3등) 응시자도 2018년 403명에서 지난해 1,265명으로 3배 넘게 뛰었다.

매년 배출되는 1,000여 명의 훈련사는 열정페이(저임금 노동)를 강요받는다. 대부분 시간당 9,860원의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 올해 훈련사 생활을 그만둔 A(39)씨는 첫 훈련소에 입사한 2020년, 하루 14시간씩 일하면서 급여를 받기는커녕 교육비 명목으로 매달 50만 원을 냈다. A씨는 "당시엔 훈련사 자격증을 따기 전이어서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

교육보다는 견사 청소 등이 주된 업무였다. 소장은 교육비를 따박따박 받으면서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A씨는 사실상 독학으로 자격증을 따고 훈련소를 옮겼다. 두 번째 훈련소는 처음 3개월 치 수습 기간에 월 50만 원만 줬다. 또다시 옮긴 세 번째 훈련소 월급은 70만 원이었다. 그는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14시간씩 4년을 일했지만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다. 생계가 어려워진 A씨는 꿈을 접었다.

4년 차 훈련사 B(34)씨가 하루 12시간씩 주 6일 노동의 대가는 월 120만 원. 훈련하는 강아지 마릿수에 따라 추가로 인센티브를 받지만 최저임금엔 미치지 못한다. B씨는 "연차가 쌓여도 기본급은 그대로"라며 "나가서 제 사업을 하고 싶어도 모이는 돈이 없다"고 했다.

"네가 못해서 욕먹는 거야"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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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훈련소에 맡겨진 강아지들이 뜬장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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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의 폭언과 폭행도 일상이다. 훈련사들에 따르면 훈련소 규칙을 어기고 담배를 피웠다고 엎드려뻗쳐를 시킨 다음 빠따로 때렸다", "강아지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머리를 쥐어박고 개XX 같은 쌍욕을 했다" 등 인신공격성 모욕과 폭행이 수시로 벌어졌다. 어린 훈련사들은 자주 혼나다 보니 나중엔 '내가 욕먹을 짓을 했구나' 세뇌된다고 했다. 10년 차 훈련사 C씨마저 "너희가 너무 훈련을 못해서 그렇다는 말을 매일 들으니까 납득하게 되더라"라고 했다.

열악한 처우에 이탈하는 훈련사가 늘어나고, 남은 이들에게 일이 몰리는 악순환도 반복된다. 훈련사 한두 명이 수십 마리의 개를 맡을 때도 있다. B씨는 "직원 3명이 그만둬 소장이랑 둘이서 110마리의 개를 돌본 적이 있다"고 했다. 훈련하는 반려견들의 환경도 나쁠 수밖에 없다. A씨가 일하던 훈련소에선 개 38마리 중 6마리가 죽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수많은 개를 돌보기 위해 좁은 철조망을 다닥다닥 이어 붙인 개 장인 '뜬장'을 쓰기도 했다. 그는 "강아지가 좋아서 도전한 일이었는데 죽은 강아지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훈련사들은 위계에 의한 성범죄에도 노출되고 있다. 20대 여성 D씨는 4년 전 처음 들어간 훈련소에서 입사 3일 만에 성추행을 당했다. D씨를 자신의 방으로 부른 소장은 "특정 신체 부위를 안마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소장은 19세 여성 견습생도 성추행했다. D씨는 그 길로 훈련소를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소장은 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 등의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D씨는 "반려견이 너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젠 '훈련소' 단어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했다.

2023년엔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에 출연해 유명해진 이찬종 이삭애견훈련소장이 후배 훈련사를 강제 추행하고 성희롱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고용주가 지속가능 일터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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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 보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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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반려견 훈련업계에 횡행하는 갑질이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훈련사 양성 과정이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데다 업계가 좁은 탓에 부당 노동에 대한 신고를 할 경우 업계 퇴출을 각오해야 한다. 훈련사로 자리를 잡으려면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해야 한다. 비전공자들은 훈련소 외에 마땅히 실습할 곳이 없다.

공인 훈련사 자격증을 따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다. 1956년 정부 인가를 받은 한국애견연맹에서 지정한 훈련소는 전국 27곳, 지정받지 않은 훈련소를 다 합쳐도 200곳 안팎이다. 노동착취 등으로 신고하려면 "여기 나가면 내 입김이 없을 줄 아냐", "소문내서 재취업 못 하게 하겠다" 등의 협박이 들어온다.

업계 내부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직장갑질119 김도하 노무사는 "정부의 감독만으론 수많은 영세사업장의 문제를 잡아낼 수 없다"며 "고용주가 '노동착취'와 '교육'을 구분하는 게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했다. 일례로 현재 미용업계는 고용주가 교육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훈련업계와 같지만, 계약서로 근무 외 교육시간을 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김 노무사는 "꾸준한 공론화와 사회적 인식 변화로 일궈낸 결과"라고 했다.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김설 위원장은 "지금의 착취적 도제식 교육 체제에선 근로자는 충분한 교육을 못 받고 그만두고 고용주는 항상 사람을 구해야 하는 악순환"이라며 "고용주도 지속가능한 일터를 조성해야 사업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짚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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