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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에너지 자립은 물론 수출 가능성도…'산유국의 꿈'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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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석유·가스 매장 규모·의미

성공률 20%·생산까지 최대 10년 걸려

시추공 1개 1000억… 투자금 예측불가

매장량과 실제 채굴 가능량 다를수도

韓 전체 원유 수입량 연간 10억배럴

개발 땐 에너지 자립·가격 안정 효과

동해 심해 유전 후보지는

포항 인근 8광구·6-1광구 일대

日과 외교적 분쟁 가능성 낮아

3일 포항 앞바다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수 있다는 발표에 한국이 향후 어떤 과정을 거쳐 실제 원유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석유 등의 매장이 사실로 확인되면 한국의 에너지 안보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현실화 가능성은 실제 시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일보

3일 경북 포항 영일만 바다가 잔잔한 물결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날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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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추로 확인하면 2035년쯤 생산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포항 영일만 앞바다 석유 매장 가능성에 대한 심층 분석이 시작된 건 지난해 2월쯤이다. 정부는 당시 1960년대부터 축적해온 조사 자료들을 기술평가 전문기업에 의뢰했다. 미국의 액트지오(Act-Geo)사는 탐사자원량을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로 추정한 결과를 냈다. 탐사자원량이란 물리탐사 자료 해석을 통해 산출된 유망 구조의 추정 매장량으로 아직 시추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양이다. 이후 정부는 국내외 전문가에 별도 자문을 거쳤고, 이날 탐사 계획을 수립해 발표했다.

실제 석유·가스 확인까지는 시추 탐사를 진행해야 한다. 지하자원을 탐사하기 위해 땅속에 구멍을 파는 작업이다. 현재는 지질조사와 물리탐사 단계까지만 진행한 상태다.

정부는 연말 1차 탐사 시추에 착수해 3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내년 상반기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1차 시추에서 개발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더라도 최소 5차에 걸쳐 부존 가능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심해저에 1개의 시추 구멍을 뚫는 데는 약 1000억원이 소요된다. 심해에 깊은 구멍을 뚫는 시추는 전문 장비와 기술력이 필요해 미국·유럽 등 글로벌 전문기업에 맡겨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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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발견돼도 끝이 아니다. 석유가 발견되면 평가정 시추를 통해 매장량을 파악한다. 실제 채굴 가능한 양도 시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매장량과 채굴 가능량이 다를 수 있다.

이후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해상 유전 시추 설비와 유지로 이어지는 배관, 육상 탱크 등 기반시설을 갖추면 석유·가스를 생산해 국내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첫 탐사부터 생산까지는 약 7∼10년이 걸린다. 정부는 2035년 석유·가스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확보 기대…성공 확률은 20%

한국은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동해에서 원유를 끌어올려 쓸 수 있다면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기대할 수 있다. 생산량에 따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석유·가스의 에너지 자립은 물론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한해 전체 원유 수입량이 약 10억배럴”이라며 “최대 140억배럴을 가정한다면 14년치 원유를 확보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원유 처리로는 세계 5위의 석유 강국인데 원유를 전량 외국에 수입을 의존하고 있다”며 “석유·가스전이 개발되면 도입 안정성이 개선돼 에너지 안보도 확연히 개선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안정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수송비가 줄고 수익이 난다면 정부가 유류세 등 세금 줄일 여지가 커져 휘발유 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유국으로 누릴 수 있는 유·무형적 이득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통상 중동 산유국들은 비산유국을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시키지 않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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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 공식 발표가 3일 나오면서 향후 시추 일정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이번 석유·가스 매장 추정 지대 중 하나로 알려진 동해 대륙붕 6-1광구에서 2019년 탐사작업을 한 두성호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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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발표만으로 당장 국내에서 석유·가스를 생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시추해도 석유·가스가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브리핑에서 “성공 확률은 20%라고 한다. 5개 시추 구멍을 뚫으면 하나 나온다는 의미”라며 “동해 가스전의 경우 11번 뚫어 생산에 성공했다. 시추 전까지는 석유·가스가 있다거나 없다고 할 수 없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석유가 발견돼도 경제성을 따져봐야 한다. 개발·시설비 등을 투자하고, 시추하고 수송해 판매하면 이득이 날 것이라는 판단이 있어야 상업 가동을 결정할 수 있다. 동해 가스전의 경우 투자액은 약 1조2000억원이었고, 매출은 2조6000억원으로, 순이익 1조4000억원이었다. 개발 초기 기대에는 못 미쳤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채굴비와 양이 관건”이라며 “석유 매장을 확인하고, 7∼10년 뒤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이 나야 진정한 산유국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영일만서 38∼100㎞… 韓 EEZ 내 위치

정부가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됐을 것으로 예상한 동해 심해 가스전은 경북 포항 영일만에서 38∼100㎞ 떨어진 넓은 범위의 해역에 걸쳐 있다. 모두 한국의 독자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되면서 인접국인 일본과 외교적인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곳이다.

정부가 3일 발표한 ‘동해 탐사 현황’ 지도를 보면 심해 가스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동해에 한국 측 EEZ 안에 있는 8광구와 6-1광구 일대다. 앞서 2004∼2021년 상업생산을 했던 동해 가스전보다 북쪽 해역이다. 동해 가스전은 울산 남동쪽 58㎞ 해상에 있다.

석유와 가스가 매장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심해 가스전은 1㎞보다 더 깊은 바다에 자리 잡고 있다. 앞서 발견된 동해 가스전은 대륙붕 위에 위치하면서 비교적 얕은 바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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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첫 국정브리핑을 이어받아 브리핑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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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인근 8광구와 6-1광구 일대는 지질 구조상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퇴적층 지형인 신생대 제3기층으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과거부터 포항 영일만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기도 했다.

2017년 포항에서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굴착을 하던 중 천연가스가 발견돼 발화하기도 했다. ‘불의 정원’으로 조성된 이 천연가스 불길은 포항 지역의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마냥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불은 금방 꺼질 것이란 초기 예측과 달리 7년이 지난 현재까지 타오르고 있다. 불의 정원 지하에는 메탄으로 이뤄진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경제성은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전에도 포항에서는 1975년 남구 상대동 주택가 땅속에서 1드럼(200ℓ) 분량의 석유가 발견됐고, 1988년에도 북구 흥해읍 성곡리 주택 마당에서 천연가스가 나와 한동안 취사용으로 쓴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이 일대 지층이 신생대 제3기층치고는 퇴적층이 얇고 화강암 위주라 석유가 존재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한 석유가 매장돼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발표한 1㎞의 심해유전은 채산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오늘날 해상 시추에서 수심이 300m만 돼도 심해유전으로 분류되며, 산유국들이 심해 시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는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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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전 경북 포항시 영일만 앞바다에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2017년 3월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철길숲 불의 정원 조성 과정에서 지하수 개발을 위해 지하 200m까지 관정을 파던 중 천연가스가 분출하면서 굴착기에 불이 붙어 7년째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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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지질탐사 컨설팅업체 ‘액트지오’가 심층분석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 세계 15위 수준인 가채(可採) 석유 매장량을 추정한 액트지오(Act-Geo)는 미국의 지질탐사 전문 컨설팅 기업이다.

3일 관련 업계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는 글로벌 오일메이저 엑손모빌에서 탐사 전문가로 일한 이가 만들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후 브라질 국영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와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 등에서 탐사 전문가로 일했다. 이때 남미의 새로운 원유 부국으로 떠오른 가이아나 지역의 유전 개발 사업 등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액트지오 인터넷 홈페이지는 현재 그가 회사 자문 역할을 수행 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부는 액트지오의 매장량 추정치가 나온 뒤 다른 여러 해외 자원개발 기업, 연구기관들과 접촉해 교차 검증했다는 입장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후 한 방송 뉴스에 출연해 액트지오에 대해 “가이아나의 시추를 하게 된 엑손모빌 회사에서 지질그룹장을 하셨던 분이 나와서 만든 회사”라며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팀들은 전 세계에서 지질탐사와 관련돼서 가장 뛰어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안 장관은 “국내외 전문가들한테 (액트지오 석유·가스 매장 추정량) 평가 결과를 검증시켰을 때 객관적이라고,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것에 다들 이구동성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경·김범수·나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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