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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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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여당 셰인바움 당선… 헌정사 200년 만에 첫 여성 대통령 [심층기획-2024 슈퍼선거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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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선 (하)

선관위 집계 결과 58.3∼60.7% 득표

2위 야당연합 후보와 20%P 이상 격차

남성 중심 문화 속 정계 유리천장 깨

“권위적 정부 되지 않을 것” 당선 소감

‘행정·입법·사법’ 3부 수장도 여풍 거세

韓과 달리 일반 가정집에 투표소 설치

인명부 확인·개표 등 자원봉사자들 몫

이례적으로 많은 선출직들 뽑아 눈길

“더 안전한 나라 만들어야” 열기 뜨거워

멕시코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18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후 처음이다. 남성 중심 문화(마치스모·Machismo)가 강한 멕시코에서 첫 여성 대표가 등장하며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세계일보

대선 승리 후 주먹 불끈 대선에서 승리하며 멕시코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타이틀을 얻게 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가 3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의 조칼로 광장에서 주먹을 불끈 쥔 손을 들어 올리며 지지자 환호에 답하고 있다. 멕시코시티=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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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 타데이 자발라 멕시코 선거관리위원장은 2일(현지시간) 표본집계 결과를 토대로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당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당선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멕시코선거관리위원회(INE)는 전국 투표 결과를 종합한 결과 셰인바움이 득표율 58.3∼60.7%를 기록해 26.6∼28.6%를 얻은 우파 중심 야당연합 소치틀 갈베스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고 밝혔다. 표본집계 결과는 오후 6시 투표가 끝난 후 각 지역의 투표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집계한 투표 결과를 INE가 종합해 발표한다.

당선이 확정된 후 셰인바움은 지지자들이 모인 멕시코시티 소칼로광장을 찾아 당선 소감을 전했다. 셰인바움은 “우린 민주주의자들이고 신념에 따라 결코 권위적이거나 억압적인 정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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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깬 셰인바움… 3부 수장 여성

멕시코 최초 여성 대통령 타이틀을 얻게 된 셰인바움은 멕시코 최고 명문대학인 멕시코국립자치대(UNAM·우남)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한 과학자 출신이자 지난해까지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냈다. 우남에서 에너지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첫 여성이자 멕시코시티 시장으로 근무한 첫 여성이기도 하다.

셰인바움의 승리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지지율이 60%대를 기록했다. 셰인바움은 현 정부 정책 대부분을 계승하고 온건한 이민 정책, 에너지 발전, 공기업 강화 등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계획을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으로 지지자들의 인기를 얻었다.

셰인바움의 당선을 예측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선거 결과에 환호했다. 이날 오후 10시쯤 멕시코시티 대통령궁 앞 소칼로광장에 설치된 무대 위에선 악기·노래공연이 이어졌고 시민들은 음악에 맞춰 환호하는 등 축제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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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나당 지지자들은 당의 고유색인 자주색 옷을 입은 채 ‘셰인바움’을 외치며 기뻐했다. 결과가 확정되기 전이었지만 광장에는 셰인바움의 당선을 예측한 듯 그와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인형, 티셔츠, 열쇠고리 등 기념품을 파는 상인도 많았다.

가족과 함께 소칼로광장을 찾은 라케 무니나(34)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은 매우 의미 있다”며 “셰인바움 공약들이 멕시코 성장과 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주색 모자를 쓰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외치던 베아트리스 두란(62)은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한다”며 “셰인바움이 당선돼 매우 행복하고, 그가 가져올 번영과 성장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셰인바움 당선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남성주의 사회인 멕시코에서 유리천장을 깼다는 것이다. 소칼로광장에서 만난 한 남성은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큰 것처럼 (국가도) 이제는 여성이 지배할 때가 왔다”고 말하며 여성 대통령의 탄생에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953년까지 멕시코에서 투표조차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멕시코 정치에서 이룬 엄청난 발전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멕시코의 행정, 입법, 사법 수장을 모두 여성이 차지하게 돼 멕시코 내 ‘여성 리더십’은 더 두각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멕시코에선 노르마 루시아 피냐 에르난데스가 첫 여성 대법원장으로 선출됐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여성인 아나 릴리아 리베라 리베라 의원이 상원의장에, 마르셀라 게라 카스티요 의원이 하원의장에 올랐다. 내무부, 외교부, 교육부, 경제부, 안보부 등 정부 주요 부처 각료 또한 상당수가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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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멕시코시티의 한 투표소에서 2일(현지시간) 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엄지 손가락에 투표 인증 표시를 받고 있다. 멕시코시티=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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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 선정부터 개표까지…시민이 주도하는 선거

“누가 내 리더(지도자)가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건 저의 의무입니다.”

멕시코시티 코요아칸구에 사는 카를로스(49)는 이날 오전 10시 투표를 위해 현관을 나섰다. 투표장까진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로 옆 블록에 있는 이웃집이 투표장이기 때문이다.

동사무소나 학교 등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주로 투표소를 차리는 한국 선거와 달리 멕시코는 일반 가정집에 투표소를 설치한다. 일반 시민의 자원을 받아 그날 하루 가정집을 투표소로 꾸민다. 카를로스가 방문한 투표소는 가정집 앞마당이었고,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커다란 검은 천을 햇빛 가림막으로 설치해 뒀다.

멕시코 신분증을 보면 제일 상단에 ‘INE 투표를 위한 신분증’이라고 적힌 글자를 써 있다. 멕시코에선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을 INE가 발급한다. 신분증에는 이름, 주소,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과 함께 투표권자 고유번호와 같이 ‘투표’를 위한 정보도 게재돼 있다. 선거가 멕시코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각 투표소도 일반 시민들이 자원해 관리한다. 선거인명부를 확인하는 일부터 개표 후 결과를 정리해 INE에 보내는 일까지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자원봉사자는 선거 때마다 성의 알파벳에 따라 달라진다. 선거 기간이 되면 INE는 선거가 열리는 해에 해당하는 알파벳 성을 가진 투표소 지역 주민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 자원봉사를 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올해의 경우 성이 ‘P’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 대상자다.

1시간쯤 줄을 서자 카를로스의 선거인명부 검사 차례가 다가왔다. 카를로스는 가장 먼저 양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자원봉사자에게 보여줬다. 자원봉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자리 봉사자에게 본인확인을 받으면 된다고 안내했다. 멕시코에선 중복 투표를 막기 위해 투표가 끝난 사람들의 엄지손가락에 특수잉크를 칠한다. 지문이 있는 쪽에 갈색 특수잉크를 바르는데, 잉크는 3∼4일 지나야 지워진다. 엄지에 묻은 잉크는 투표 이후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표처럼 ‘할인쿠폰’이 된다. 인근 카페나 식당에 가서 잉크가 묻은 엄지를 보여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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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멕시코 집권 여당 국가재생운동 지지자 라케무니나(왼쪽)가 멕시코 멕시코시티 대통령궁 앞 소칼로 광장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의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깃발을 흔들고 있다. 멕시코시티=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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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마친 시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표본집계 결과다. 멕시코에선 국내 출구조사 결과와 비슷한 표본집계 결과가 있다. 각 투표소 자원봉사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투표를 마친 후 투표함에 모인 투표지를 개표해 결과를 기록한다. 투표소당 투표 참여 인원을 최대 750명으로 제한했기에 10명이 되지 않는 봉사자들만으로도 신속한 개표가 가능하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봉투에 동봉된 후 박스에 담겨 INE로 보내진다. INE는 각 투표소에서 온 투표 결과를 종합해 늦은 저녁쯤에 당선자를 발표한다.

선거 자원봉사자 하비에르 비에드라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많은 선출직은 뽑은 건 처음이기에 이번 투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투표 인원이 750명에 그치는 작은 투표소이지만 선거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다. 시민들은 땡볕 아래서 자신의 차례를 묵묵히 기다렸고, 자원봉사자들도 선거 방식을 헷갈려 하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투표 방법을 안내했다.

이번 선거에서 첫 투표를 한 다니엘라 페레스구티에레스(18)는 “첫 번째 투표라 과정이 혼란스러웠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잘 설명해 줘서 투표를 금방 했다”고 설명했다. 멕시코에선 만 18세부터 투표가 가능하다. 페레스구티에레스는 “멕시코는 치안이 불안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기에 후보들의 치안 공약들에 초점을 맞춰 표를 던졌다”고 강조했다. 함께 투표를 마친 산티아고(22) 또한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안전 공약에 맞춰 후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멕시코시티=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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