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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의장·법사위 다 가지면, 입법폭주 막을 수단은 거부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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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 배분 놓고 샅바 싸움, 왜?

조선일보

여야 원내대표들 ‘동상이몽’ - 5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국민의힘 추경호(맨 왼쪽) 원내대표와 배준영 원내수석, 더불어민주당 박찬대(맨 오른쪽) 원내대표와 박성준 원내수석이 원 구성 협상을 했다. 이날도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은 결렬됐다. /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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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소집된 22대 국회 첫 본회의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하는 등 파행으로 진행된 것은 국회 상임위원장 18자리 배분 문제를 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을 맡겠다며 평행선을 달린 것이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와 달리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고 있어 ‘상임위 위의 상임위’로 불리고, 운영위는 대통령실을 담당한다. 특히 법사위는 모든 법안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받아야 본회의에 올라갈 수 있어 이 길목만 지키면 사실상 모든 법안 처리를 제어할 수 있다. 171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할 경우 거야(巨野)의 입법 폭주를 제어할 수단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밖에 없다. 이 때문에 22대 국회에서도 범야의 쟁점 법안 강행 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되풀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한 국회법 규정은 따로 없다. 다만 제1당이 국회의장을, 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게 관례였다. 21대 국회 전반기엔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았지만, 후반기엔 이런 관례에 따라 여야가 타협해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가져왔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22대 국회 들어 다시 법사위원장을 고집하는 건 21대 후반기에 민주당이 추진한 상당수 쟁점 법안 처리가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에서 막혔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해 법안 처리 속도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때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법사위를 우회 돌파하기 위해 국회법에 규정된 본회의 직회부, 패스트트랙(신속 안건 처리) 등을 활용했다. 본회의 직회부는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 심사를 60일 이내 마치지 않을 경우 상임위원 5분의 3 찬성으로 본회의에 바로 회부하는 제도다. 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된 뒤 30일이 지나면 본회의 부의 여부를 표결에 부친다. 21대 때도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전세사기특별법, 양곡관리법, 민주유공자법 등을 직회부 안건으로 의결해 단독 처리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게 되면 본회의 직회부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법사위에서 표결 처리를 밀어붙일 수 있다.

법사위원장을 맡게 되면 패스트트랙을 활용할 필요성도 줄어든다. 국회법에 따라 상임위원 5분의 3 찬성으로 법안을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면 상임위는 180일, 법사위는 90일 이내 심사를 마쳐야 한다. 이렇게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은 60일 이내 본회의에 상정된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 최장 330일이 걸리는 셈이다. 민주당은 21대 때 각종 특검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밀어붙였다. 작년 4월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작년 10월엔 ‘해병대원 특검법’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 굳이 패스트트랙에 올리지 않고 법사위 전체회의를 소집해 표결 처리할 수 있다.

192석을 차지한 범야권은 소수당을 보호하는 각종 국회법 조항도 무력화할 수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여야 간에 이견이 있는 법안은 6명(원내 제1당 3명, 그 외 정당 3명)으로 구성된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최대 90일간 숙의해야 한다. 하지만 원내 1당인 민주당은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 정당의 협조를 얻어 안건조정위 구성을 ‘야당 4명 대(對) 여당 2명’으로 바꿀 수 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모든 법안을 재발의할 방침이다. 그런 만큼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와 이런 법안을 포함한 쟁점 법안 처리를 신속히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을 염두에 두고 법사위원장을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법사위는 법무부와 검찰, 법원, 공수처 등을 담당하고 대통령 등 정부 인사에 대한 탄핵과 각종 특검도 주관한다. 민주당이 법사위를 주도하며 이 기관들에 자료를 요구하거나 수시로 국회로 불러 질문하는 식으로 이 대표 방탄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과 함께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원장도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 전례로 보나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무차별 정치 공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운영위원장은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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