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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돈없어 도로까지 매각하는 지자체, 지방세 늘려줘야[오늘과 내일/김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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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33년이 흘렀으나, 제도가 미처 성숙되기도 전에 좌초될 위험에 놓이게 됐다. 자치 실현에는 물적 기반 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우리나라 지방재정은 오랫동안 취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체 세입에서 자체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재정자립도는 지난 10년간 계속 낮아져, 2023년 기준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30% 미만 수준에 있다. 그 결과 전체의 37%를 차지하는 90개의 지자체가 아직도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강원도는 안 쓰는 도로를 민간에 팔기로 한 웃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국세 결손-고령화 겹쳐 재정난 심각

최근 대규모 국세 수입 결손으로 지방교부세가 크게 줄고 지자체 재정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이전재원에 기댄 소극적 재정 운용조차 벽에 부딪히게 될 공산이 크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로 지방재정 여건이 향후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방 거주 노인세대가 늘어 복지 수요가 증가하고 세출이 급증하는 반면, 생산인구 유출과 지역경제 침체에 따라 지자체 자체 수입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방세연구원 추산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전국 기초지자체 세출은 약 339조 원 증가하지만 세입은 단지 99조 원 정도만 늘어나, 양자 간 괴리가 240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높은 세출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세입 확충 규모가 2032년이 되면 73조 원에 이르게 된다는 분석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허상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지자체 스스로 지방세 증세를 포함한 자체 재원 확충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긴박한 상황에 있는 것이다.

세수 확대가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과세 방법은 합리성과 효율성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지방세연구연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면, 친환경적인 지방세 개편은 모범적인 사례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지역의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거주 여건을 훼손하는 시설에 지방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방식은 지방재정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외부불경제 효과를 줄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권장할 만하다. 기존 지역자원시설세 틀에서 화력발전 석탄분이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세율을 점진적으로 인상해 가는 것이 한 방법이다. 다른 대안으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폐기물 매립시설이나 시멘트 생산시설, 그리고 천연가스 제조와 해저자원 개발, 태양열 발전 관련 시설 등을 위주로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 현재 경마나 경륜, 경정에 한정된 레저세를 카지노나 스포츠토토 복권에 부과하여 사행 행위를 줄이고 그 재원을 건전한 여가 조성에 활용하는 것도 교정과세의 좋은 예를 제공한다. 기초지자체에 한시적으로 배분되고 있는 지방소비세 일부를 늘려 기초지방소비세로 확대 개편하는 것 역시 기초지자체의 안정적 세입 증대를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세외수입 부문에서는 지자체가 공공 체육문화시설을 유료화하거나 이용료를 현실화함으로써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산세 비과세 규모가 6조1500억 원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유재산에 대한 비과세 비중을 줄이는 방법을 비롯해, 지방세 주요 세목인 재산세 감면의 축소가 요구된다.

법 개정 없이 조례만으로 증세 허용을

장기적으로는 국세 소득세의 10%에 해당하는 지방소득세를 지자체 개별 여건에 따라 15∼20%로 확대하는 지방세 증세를 지방 의회와 주민이 자율적으로 합의해 결정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상 조세법률주의 조항으로 인해 지방세도 국회 법률 개정에 의하지 않고는 지자체 자체적으로 조례를 통해 새로운 세목을 도입하거나 세율 또는 과세 대상을 변경할 수 없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지자체의 개별적인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는 지방세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가 과세 요건을 스스로 정해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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