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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일)

조현병 환자 흉기에 시한부 된 남편...아내는 법정에서 “엄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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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조현병 심신미약” 주장

아내 “사과 한 마디 없이 감형 억울”

조선일보

광주지방법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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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제발 엄벌에 처해주세요.”

12일 광주지법 11형사부(재판장 고상영)는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A(59)씨에 대한 첫 공판에서 피해자 아내 조모(67)씨에게 이례적으로 발언권을 줬다. 조씨는 자신의 남편에게 흉기를 휘두른 가해자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 하고 방청석에서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조씨는 재판부를 향해 “암환자인 남편이 심한 외상까지 입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며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공격 당해 사경을 헤매는 남편의 억울함을 살펴달라”고 호소했다. 조씨는 “가해자 측으로부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며 “치료비도 보상도 필요 없으니 제발 엄벌을 내려달라”고 했다.

A씨는 지난달 6일 전남 영광군의 한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조씨의 남편, 김모(62)씨를 흉기로 20여 차례 찌르고 마구 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조현병 치료 이력이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재판에 앞서 피의자 신문에서 “김씨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A씨는 김씨가 부모를 괴롭힌다는 망상에 빠져 공격했다”며 공소 사실을 밝혔다.

조씨는 “남편이 앞으로 한 달밖에 살지 못 한다”고 했다. 김씨는 약 2년 전부터 간암 항암치료를 받아 오던 암환자였다. 치료에 차도가 있었던 덕분에 의사로부터 “나아지고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A씨의 흉기에 찔린 뒤 모두 허사가 됐다. 간과 폐에 심한 외상을 입어 항암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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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전남 영광에서 조현병 피해자가 휘두른 흉기에 상처를 입은 김모씨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피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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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피해자 아내의 법정 발언은 재판에 앞서 조씨의 ‘엄벌 탄원서’를 받았던 재판부가 방청석에서 조씨가 흐느끼는 모습을 알아보면서 이뤄졌다. 재판부는 발언을 마치고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조씨에게 “피해자 측 발언을 감안해 판결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씨는 법정을 떠나기 직전 작은 종이를 꺼내 가해자의 이름 석자를 써 내려갔다. 조씨는 “법정에 와서야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해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며 “가해자가 사과 한 마디 없이 조현병을 주장해 감형 받으려는 태도는 피해자 입장에서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A씨는 재판부에 편집조현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선처를 바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조현병을 감형 사유로 보지 말아달라는 피해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조현병 환자들의 ‘심신미약 인정’은 법률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공 교수는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범죄 발생률이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보다 높다고는 할 수 없다”며 “조현병은 정신질환이기 때문에 처벌 강화보다는 중증화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꾸준한 관리와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조현병을 불가피한 심신미약 상태로 봐야 하는 예시로 ‘음주’를 꼽았다. 그는 “음주도 피의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사유 중 하나지만 범죄 원인으로부터 스스로 예방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위이기 때문에 심신미약으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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