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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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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폭행 피해자 "잠깐 반짝했다 꺼지면 또 상처…2차가해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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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열린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정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과 지난 2004년부터 현재까지 피해자와 피해자가족 지원을 맡았던 이미경 이사, 윤경진 여성주의상담팀 팀 매니저, 당시 피해자 최초 상담을 맡았던 김옥수 전 울산생명의전화 가정·성폭력상담소장이 참석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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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13일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2차 피해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날 서울 마포구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피해자 자매의 서면을 공개했다. 이곳 상담소는 2004년부터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피해자는 서면에서 먼저 “20년 전 이후로 영화나 TV에 (사건이) 나왔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잠깐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실 줄은 몰랐다”며 “저희를 잊지 않고 많은 시민들이 자기 일 같이 화내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하겠다”며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났다”고 했다. 이어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다. 너무 감사하다”며 “잊지 않고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또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에게 2차 가해를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며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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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2004년에서 2024년으로 :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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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상담소 소장은 이날 “피해자와 협의·소통 없이, 마치 소통한 것처럼 콘텐트가 만들어지고 올라가면서 피해자가 괴로워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이 피해자에 대한 비난으로 갈 것인지, 피해자와 연대하는 장이 마련되는 과정으로 가는 것인지 긴장하면서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가 자신에 대해 언급한 글의 삭제를 원하고 있다”며 “가해자 신상 영상을 올린 유튜버에게 보낸 (밀양 사건) 판결문도 지워달라고 이미 요구한 바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유튜버는 피해자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가해자 신상과 피해자와의 통화 내역 등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 중 일부는 사건과 연관 없는 이들의 정보가 알려지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해당 판결문은 유튜버가 지난해 11월 올린 고민상담 공지를 보고 피해자가 상담차 연락할 때 본인 인증을 위해 유튜버에게 보낸 것이다. 유튜버는 지난 8일 가해자 신상 공개 여부를 피해자와 논의했다며 통화 내역과 판결문 일부를 공개했다.

김 소장은 “동의 없이 피해자 정보를 일방적으로 퍼뜨리고 피해자가 동의할 수 없는 내용과 방식으로 재현하는 문제는 2004년 방송사와 경찰의 문제에서, 올해 유튜버의 문제로 바뀌며 반복되고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에서 평온할 권리’는 ‘국민의 알권리’에 우선하는 생존권”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미경 상담소 이사는 “현재 피해자는 주거환경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심리적·육체적 건강도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정식 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및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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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밀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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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이날 성폭력 피해자 보호 시설에 대한 지원도 촉구했다.

김 소장은 “전국에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이 있으나 자립을 위한 지지제도나 예산은 미흡하기만 하다.”며 “열림터는 자신의 삶을 단단히 열어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관계적 자원을 엮고자 후원금을 통해 일상회복 그물망을 짜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나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단단한 지원이 더 연구되고 논의되기를 바란다”며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이 늘어나고 피해자 일상 회복이 단단해져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힘 있게 울릴 때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역시 정의로운 방법과 과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상담소는 이날 오후부터 피해자 생계비 지원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삶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려는 피해자가 자신의 삶에 뭐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안정감이 확보됐으면 좋겠다”며 “모금액은 전부 생계비 지원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기부는 상담소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지난 2004년 1월 경남 밀양 지역 고등학생들이 울산에 있는 여중생을 밀양으로 불러내 1년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이들은 피해자 여동생을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기도 했다. 사건에 연루된 고등학생 44명 중 10명은 기소됐으며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합의로 공소권 상실 처리를 받은 학생은 14명이었다.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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