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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압(구정)·서(초)·방(배)'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방배동은 압구정, 서초에 밀리지 않는 강남권 요지 중 하나였다. 강북의 전통적 부촌인 성북동, 한남동과 같이 고급 단독주택이 많아 여러 기업가를 비롯해 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방배동은 압구정, 서초 등 강남권 다른 지역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재건축이 진행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반포, 개포 등과 달리 소규모 아파트와 단독주택 위주인 약점이 드러났던 것이다.
고소득층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동네 이름값도 점점 퇴색해 갔다. 최근 방배동 일대가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내면서 옛 명성을 되찾을지 주목받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만 3개 단지 분양이 예정돼 있고, 다른 단지들도 새 아파트로 가는 단계를 착실하게 밟아나가고 있다. 정비사업이 마무리되면 방배동 일대는 1만가구가 넘는 '미니 신도시'로 거듭난다.
방배동의 최대 특징은 단독주택·다가구주택·다세대주택(빌라) 등을 중심으로 재건축이 진행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단독주택 정비사업은 '재개발'을 떠올리지만 도로 등 기반시설이 양호한 곳은 재건축을 진행할 수 있다. 언뜻 보면 노후 주택가를 대상으로 해 재개발과 비슷하지만 단독주택 재건축은 주택만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반 아파트 재건축 사업과 달리 노후도 등 일정 요건을 만족하면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아도 돼 사업 속도를 빨리 내는 것이 가능하다. 단독주택 재건축은 서울시가 2011년 10월 이후 새로 지정한 사업지가 없어 희소성이 높아진 상태다.
특히 방배동은 재건축 사업의 최대 걸림돌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한 곳이 상당수라 관심이 높다. 2017년 12월 31일 이전까지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면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었는데, 5·6·13·14구역이 신청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거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재건축 조합원은 지위 양도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1가구 1주택 10년 보유, 5년 거주 △조합 설립 이후 3년간 사업시행인가 미신청 △사업시행인가 이후 3년간 미착공 등 일부 조건에 해당되면 지위 양도가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방배 13·14구역은 모두 사업시행인가 이후 3년간 착공을 못 하고 있어 거래가 일시적으로 풀린 상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재건축 투자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초과이익환수제와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인데, 방배동에는 이를 회피할 수 있는 곳이 많아 수요자들 관심이 은근히 높다"고 설명했다.
현재 재건축을 진행 중인 단독주택 구역 가운데 '대장주'는 단연 5구역이다. 방배동에선 가장 큰 규모인 3064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고, 현대건설이 고급 브랜드인 '디에이치'를 적용할 예정이다.
5구역은 규모 외에 입지도 우수하다. 이수역(4·7호선)과 내방역(7호선)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방배역(2호선)도 걸어서 접근하기에 무리가 없다. 방배초등학교, 이수초등학교, 이수중학교 등 학교도 주변에 상당히 많다. 강남 테헤란로까지 직선으로 연결하는 서초대로를 끼고 있어 도로 교통도 좋다. 이르면 올해 1251가구가 일반분양으로 나와 청약 대기자들의 관심도 높다.
1097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짓기로 한 6구역은 삼성물산이 시공사다. '래미안원페를라'라는 이름으로 재건축된다. 역시 내방역과 이수역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서문여중·서문여고가 가깝다. 방배동 재건축 구역 중 속도가 가장 빠른 곳으로, 하반기 분양시장(465가구)에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5구역이 다소 경사진 점과 달리 6구역은 거의 평지에 가까워 매력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원래 5구역의 일부였던 14구역은 조합원 사이 의견 차이로 5구역에서 분리돼 따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487가구로 지어질 예정인데 최근 철거를 마치고 내년 착공하는 것이 목표다. 롯데건설이 시공사로, 고급 브랜드인 르엘을 적용한다. 5구역에서 떨어져나왔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입지가 상당히 좋다. 방배역과 걸어서 5~6분 거리로 이수동산, 방배근린공원 등 녹지공간이 많다. 방배동 재건축 중에선 작은 규모지만 '알짜'로 꼽힌다.
'방배포레스트자이'로 재건축되는 방배13구역은 지난달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현재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당역(2·4호선)과 방배역 사이에 위치해 있고, 동덕여고 등이 가깝다. 재건축 후 2217가구로 탈바꿈한다.
방배동 단독주택가에선 이들 구역 외에도 2개 구역이 재건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서리풀공원을 배후에 둔 7구역은 서초구청이 사업시행인가를 위해 공람을 진행하고 있다. 아파트 316가구를 새로 짓는데, 입지가 매우 뛰어나다. 내방역이 걸어서 2분 거리이고, 강남역(2호선·신분당선)까지 직선으로 연결하는 서리풀터널이 지척이기 때문이다. 재건축 계획 규모가 1688가구에 달하는 15구역도 지난해 말 조합이 설립됐다.
방배동에서는 단독주택 재건축 외에도 지어진 지 30년을 넘긴 아파트 재건축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방배삼익'(1981년 입주), '방배삼호 1·2·3차'(1975~1976년 입주)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아파트로 유명한 방배 삼익아파트는 '아크로리츠카운티'라는 이름으로 하반기 일반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707가구로 탈바꿈하는데, 이 중에서 166가구를 일반분양한다.
삼익아파트 주변은 방배역 역세권이고, 주변에 상문고 등이 가까워 전통적으로 부촌으로 분류됐다. 이곳 주변에 있는 신동아아파트(1982년 입주), 방배 임광3차(1988년 입주) 등도 재건축 과정을 진행 중이다. 신동아아파트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사로, '오티에르 방배'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843가구 규모로, 현재 착공을 앞두고 있다. 방배 임광3차는 최근 392가구의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정비계획을 통과시켰다. 서래마을에서 가까운 방배 삼호와 신삼호아파트도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방배동엔 이미 재건축을 마친 새 아파트가 몇 개 들어서 있다. 속도가 가장 빨랐던 방배3구역은 353가구의 '방배 아트자이'로 탈바꿈해 2018년 10월 입주를 마쳤다. 방배 경남아파트를 재건축한 '방배 그랑자이'(758가구)가 2021년 입주해 이 일대에서는 가장 신축 단지다. 방배그랑자이 전용면적 84㎡는 거래가 많지는 않지만 시세가 30억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현재 방배동 재건축 가운데 가장 거래가 활발한 13구역과 14구역 전용 84㎡ 배정 매물은 시세가 16억~17억원 안팎이다. 5구역과 6구역은 매물이 별로 없는 만큼 이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요즘 공사비 쇼크 때문에 추가분담금을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4억~5억원 안팎으로 추정하면 총 매매가격이 20억원 초반대라고 볼 수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방배그랑자이와 단순 비교만 해도 방배동 일대, 특히 13·14구역은 투자성이 꽤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강남권 진입을 노린다면 고려할 만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6개 단독주택 구역과 방배3동, 방배본동 일대 아파트가 모두 재건축을 마무리할 경우 방배동 일대엔 1만가구에 육박하는 아파트가 새로 들어선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방배동에 제대로 들어선다면 다른 강남 지역 못지않은 파급력을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방배동은 그동안 집값 상승을 주도할 아파트 단지가 없어 상대적으로 가격 측면에서 낮게 평가받았다.
그동안 방배동의 최대 단점은 다른 강남권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교통망이었다. 방배동과 강남 중심부 사이를 서리풀공원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내방역에서 1.4㎞ 떨어진 서초역(2호선)으로 가려면 북쪽의 고속터미널역(3·7·9호선)이나 남쪽의 방배역으로 우회해야 해 25분이나 걸렸다.
하지만 2019년 4월 옛 국군정보사령부 용지를 지하로 관통하는 서리풀터널이 뚫리면서 강남역을 비롯한 강남 중심부로의 이동이 훨씬 쉬워졌다. 박 겸임교수는 "서리풀터널 개통으로 교통 여건이 개선되면서 방배동이 명실상부한 '강남 생활권'으로 편입됐다"고 분석했다.
방배동 주변으로는 개발 호재도 꽤 많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정보사 용지 개발 프로젝트다. 지난해 말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하면서 인허가 작업이 올해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 땅에는 주거시설을 짓지 않는 대신 바이오·금융 등 첨단산업 분야 기업과 스타트업이 입주할 수 있는 오피스타운이 들어설 계획이다.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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