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83년 미래 성장성을 내다보고 반도체장비 제조업체를 창업해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기록도 세웠다. 1990년대 말 벤처기업 10여 개를 세우거나 출자해 '벤처업계 대부'로 불렸다. 2001년에는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며 혈연관계가 없는 후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나 화제를 모았다. 2남3녀가 있었지만 자녀 중 누구도 미래산업과 관련을 맺지 않았다. 그는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루에도 12번씩 마음이 변했다"며 솔직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거액을 기부하면서 왜 번민이 없었겠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했다고 한다.
애써 번 돈을 사회에 내놓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국내에서도 기업인들의 기부가 이어지고 있지만 부호들의 기부가 전통으로 자리 잡은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아직 미흡하다. 그래도 정 전 회장의 과학기술을 위한 아름다운 기부는 이수영 광원산업회장(767억원), 한의학자 류근철 박사(578억원), 김재철 동원 명예회장(500억원) 등의 KAIST에 대한 '기부 릴레이'를 촉발했다. 정 전 회장이 남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기업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 한국에도 기부 문화가 뿌리내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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