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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사설] 어떤 이유든 의사가 환자 떠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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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 이어 서울대 병원 등 집단 휴진 예고





정부는 “엄정 대응”…환자단체는 “절망적 소식”





정치권 중재 주목, 파국 피할 돌파구 모색해야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휴진을 결의하면서 환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의협은 의대 증원의 원점 재검토 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오는 18일 집단휴진을 하고 총궐기대회를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발표로 촉발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이미 4개월을 넘겼지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한 정부도 잘못이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환자를 외면한 채 거리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의사들도 정당화될 수 없다. 환자의 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극한투쟁은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실리도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의 무기한 휴진 움직임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오는 17일부터,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오는 27일부터 각각 무기한으로 진료를 하지 않겠다고 예고했다. 서울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중증·희귀질환 환자의 진료는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일반 외래 진료에는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다른 의대 교수들도 내부 설문조사와 총회 등을 통해 의견을 모으는 중이어서 무기한 휴진을 결의하는 대학병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휴진을 의료법에서 금지한 진료 거부로 보고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굳건히 유지하면서 불법행위에는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마치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의료계와 정부가 강 대 강으로 부딪치는 모습이다. 가장 속이 타들어 가는 건 환자들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는 공동 성명서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적응했던 환자들에게 의료진의 연이은 집단휴진 결의는 절망적인 소식”이라고 호소했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집단휴진 계획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대로 정부의 정책 추진이 일방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그게 의사들이 환자의 곁을 떠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의사의 사명아닌가. 의사들이 환자의 신뢰를 저버리면 결국 환자의 불신을 자초하게 된다. 설령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의사들이 환자들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할 권리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분만병의원협회와 아동병원협회가 의협의 집단휴진에 참여하지 않고 정상 진료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스럽다. 최용재 아동병원협회장은 “정부가 잘못한 건 맞다”면서도 “아이들 상황 때문에 휴진을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는 비판하더라도 환자 진료에는 최선을 다하는 게 의사로서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이제라도 의료계와 정부는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의료계가 이대로 집단휴진을 강행한다면 민심과 더욱 멀어질 뿐이다. 정부도 끝까지 대화의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정치권의 중재 노력도 주목된다. 인요한 국민의힘 의료개혁특별위원장은 어제 임현택 의협 회장을 만나 의정 갈등의 중재 역할을 맡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 회장도 “이해의 폭을 넓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쌓인 의료계와 정부의 불신이 단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의료계와 정부가 진정으로 한국 의료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건설적 대화를 통해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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