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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배임죄 폐지론 불쑥 꺼낸 금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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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삼라만상 다 처벌 대상

배임죄, 유지보다 폐지가 낫다”

대통령실 “공식 조율과정 없었다”

동아일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이 상법에 기업 이사의 소액주주 보호 의무를 명문화하고 이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배임죄는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상법 개정으로 배임죄 처벌이 확대될 수 있단 재계의 우려가 커지자 배임죄 폐지까지 함께 묶어서 패키지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 원장은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삼라만상을 다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배임죄는 현행 유지보다는 폐지가 낫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법 영역에서는 소액주주 보호가 미흡하고 형사법 영역에서는 이사회 의사결정에 과도한 형사 처벌을 해 양쪽 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두 개 모두를 개혁 대상으로 생각하고 패키지로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은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데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미 ‘총주주’ 등을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재계에서 배임죄 처벌 등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이 원장이 나서서 폐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원장은 “현실적으로 배임죄 폐지까지는 어렵다면 구성 요건에 사적 목적 추구 등을 명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며 “상법에 경영 판단 원칙을 명확히 하고 특별배임죄만 폐지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원장과 대통령실 간에 공식적인 조율 과정은 없었지만 금감원장이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며“ 정책 방향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금감원으로부터 별도로 협조 요청을 받은 것이 없고, 아직 검토해 본 바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무부는 금감원이 정식으로 검토 등을 요청해 올 경우 관련 사항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주주 이익보호-배임죄 폐지’ 패키지 제안… 재계 달래기

[배임죄 폐지론 꺼낸 금감원장]
“경영진, 주주 이익도 보호할 의무”… 정부, 상법 개정 추진에 재계 반발
檢출신 李 “배임죄 기소 많이 해봐”… 정부 안팎 “조율도 않고 혼선 불러”


동아일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형사법 영역에서 배임죄 등으로 이사회 의사결정이 과도하게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며 배임죄는 현행 유지보다는 폐지가 낫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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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를 패키지로 추진하자고 나선 건 최근 상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재계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경영 판단을 할 경우 이사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하되 처벌은 가볍게 해주는 ‘채찍과 당근’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원장은 배임죄를 폐지하고 다툼이 있다면 민사 소송을 통해 금전적 보상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소관 부처의 수장이 아닌 금감원장이 배임죄 폐지까지 들고 나오면서 정책 혼선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업인 기소했던 이복현, “배임죄 폐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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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14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배임죄는 주요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제도로 회사법적 영역에서의 건강한 토론을 저해하고 있다”며 배임죄 폐지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원장은 “경영진의 판단이 형사 법정이 아닌 이사회에서 균형감을 갖고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며 “만약 다툼이 있다면 민사 법정에서 금전적 보상 등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하되 이를 어겼을 때는 민사로 해결하게 하자는 의미다.

정부가 최근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재계에선 실제로 그 같은 방향으로 상법이 개정되면 소송을 넘어 임원들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현행법에 규정된 배임죄는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과 상법상 특별배임이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50억 원 이상 범죄에 대해서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는 등 가중처벌도 이루어진다.

이 원장은 검사 시절 여러 기업인을 배임죄로 기소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과거와 입장이 달라졌냐는 질문에는 “생각이 바뀐 건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전현직 검사를 통틀어 기업의 불법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배임죄 의율을 가장 많이 해 본 내가 말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정부 공식 입장은 정해진 건 없어”

다만 이 원장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정해진 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 역시 “기업 밸류업과 관련해 각계 의견을 수렴 중이나 구체적인 방향은 전혀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정부 입장은 논의를 거쳐 하반기(7∼12월) 중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12일에 이어 이날도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가 균형 있게 고려됨으로써 서로 윈윈 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취지”라며 “지배주주의 긍정적인 역할을 폄하하거나 불리한 부담을 주자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으로 정상적인 기업 경영활동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실제로 경영 판단 원칙이 적용되는 범위와 대상은 한정적일 것”이라며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배임죄 폐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다른 대안들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구성 요건에 ‘사적 이익 추구’ 등 구체적 사안을 추가해 배임죄 대상을 한정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폐지하거나 배임죄 폐지 없이 경영 판단 원칙 의무를 다양하게 하거나 예측 가능하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임죄는 그간 법조문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엇갈린 판단이 나온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재 한국은 배임죄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사실상 ‘0원’”이라며 “형사법상 배임죄를 완화하려면 배임에 대한 민사 처리가 미국 수준으로 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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