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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책의 향기]20년 전 빵 배우러 프랑스로 떠난 신학대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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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첫 ‘한국인 빵집 사장’ 저자

노력 끝 프랑스 각종 대회 입상

우여곡절 20여 년 여정 풀어내

◇나는 파리의 한국인 제빵사입니다/서용상, 양승희 지음/240쪽·1만9500원·남해의봄날

동아일보

한 사람의 인생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 정한 대로 살아지는 것일까. 모든 걸 내 뜻대로 하겠다며 잔뜩 힘을 줬다가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어느 날은 힘을 빼고 흐름에 맡겼더니 뜻밖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삶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가운데 그저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인 서용상, 양승희 부부가 2007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에 빵집을 내고 지난해 한국에 지점을 내기까지의 여정도 그러했다. 부부는 2002년 돌연 프랑스로 떠났는데, 목회자가 되려고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남편이 갑자기 제과제빵을 배우겠다고 한 게 이유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 땅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 정착했을까. 20여 년의 여정을 부부는 번갈아 가며 글로 써 내려간다. 부부는 어학연수로 만난 프랑스어 선생님이 제과제빵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을 소개해줘 연수 기회를 얻은 걸 계기로 2007년 파리에 가게를 연다.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말에 갖게 된 안식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매장을 여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등 우여곡절이 펼쳐진다. 때로 두렵지만 과감하게 나아가고, 때론 불안해하며 그저 흐름에 맡기는 삶의 과정 속에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책이 나오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편집자가 부부에게 책을 제안한 것은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 빵집을 열고 난 뒤였다. 그러나 수년이 지나도 원고에 진척은 없었다. 편집자는 “두 번째로 파리 출장을 갔다가 고된 노동으로 어깨 근육이 파열돼 붕대를 감고 새벽 출근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오랜 시간 침묵했다”고 회고한다. 이후 2013년 파리 전통 바게트 대회 입상, 2019년 자체 브랜드 빵집인 ‘밀레앙’ 오픈, 2023년 일드 프랑스 플랑 대회 그랑프리 수상까지. 13년 동안 부부의 삶은 더 풍성하게 무르익었고, 그제야 써나가기 시작한 원고는 드디어 책으로 완성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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