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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헬스 프리즘] 권한과 권력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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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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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과학에서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 욕구와 성장 욕구를 나누어 설명한다. 먹고 자는 등의 생리적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는 모든 동물에게 필요한 것으로서 가장 기본이 된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애정과 소속 욕구다. 가족이나 동료와 친분 관계를 유지하면서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껴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각종 신입 직원 환영회나 동문 모임이 그래서 그리 많은 것이리라.

또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아 존중과 성취감, 존중받는 느낌을 포함하는 존중 욕구도 필요하다. 이들 욕구들은 인간이 잘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기본 욕구라 부른다. 이보다 더 위에는 자아실현이나 영적 성장 같은 성장 욕구가 존재하는데, 이것들은 추가적인 개인적 노력과 의지에 따라 다양하다.

그래서 가정 내에서는 서로 사랑과 애정, 소속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며, 회사나 조직의 장들은 구성원 소속감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로 존중받는 느낌을 주는 직장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지도자의 책임이다. 소속감과 존중은 ‘좋은’ 직장 조건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지도자들은 항상 본인 하는 일의 대의명분을 이야기한다. 구성원들의 어려움을 없애고 행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 공언하는 것은 거의 모든 지도자들의 레토릭이다. 높은 자리로 출세해서 월급 더 받고 대장 노릇하고 싶어서 지도자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도자의 대의명분과 실제 속내가 다른 경우는 자주 있는 것 같다. 개인적 기질과 추구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사실 모두 다 다르니 말이다.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본인보다 조직과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 성직자나 교사도 있지만, 이런 명분은 겉에만 포장돼 있고, 본인의 욕심에 기인한 욕구가 더 많은 것 같아 보이는 지도자들도 자주 본다.

이들의 주된 내적 이유는 봉사와 헌신이 아니다. 돈과 권력일 수도 있다. 이들은 권력을 손에 넣고 주변 사람들을 호령하면서 마치 본인이 존중받는 것처럼 느낀다. 그 기쁨에 취해 자신이 얻은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권한이란 일정 기간 그 자리에서 필요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허용된 인사, 재정에 대한 결정권을 말한다. 예상하듯이 이 권한에는 한계가 있다.

권력은 이와 좀 다르다. 권력은 인사와 재정에 대한 권한에서 조금 더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인간적 상하관계까지 미치는 영향력이라 말할 수 있다. 선출직 지도자나 학장, 임명직 사장이 가지는 힘을 권한이라고 한다면, 영주나 독재자 수준의 존재가 가지는 것을 권력이라 말할 수 있다. 지도 교수가 학생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개인적 영역의 심부름까지 시킨다면 이는 본인의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권한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조직과 구성원이 내가 그 자리에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승인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걸 선임 또는 선출이라고 한다. 반면에 권력은 쟁취하는 경우가 더 많다. 권력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규정이나 원칙을 살짝 벗어나는 권리와 힘까지 허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잠시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영향권에 있거나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규합해 권력으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민주적 선거로 얻은 권한으로 시작했지만 비슷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동질하여 독재 집단으로 바꾸어버린 아돌프 히틀러가 그런 과정을 거쳤다.

작은 조직에서도 이렇게 권력 쟁취에 성공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많은 경우 이런 분들은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의 인심을 잃고 외로워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오래 전 전제정치와 오너 중심 봉건사회를 경험하고 나서 생겨난 현대사회에서는 기간이 정해진 권한을 한두 사람의 권력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권력이 눈을 가리면 나름 규칙이 있는 작은 것들을 슬쩍 내 맘대로 취하는 것을 즐기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마치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갈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결국 이것도 메타인지의 힘이다. 애초에 머리가 나빠서 그렇거나 욕심과 완장 무게에 휘둘려서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리라.

아주 작은 집단에서도 지도자 권한은 내가 속한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권한이 ‘나’를 위한 권력으로 변질된다면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존중을 포함한 기본 욕구를 침해할 것이다.
한국일보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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