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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독박교실도 ‘6번의 전학’도 모두 국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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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위기학생 치료하는 김은정·윤지명씨 인터뷰

경향신문

캐나다 캘거리의 한 초등학교에서 행동지원사로 근무하는 김은정씨. 행동지원사는 정서적·감정적 위기학생의 교육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위기상황이 벌어질 때 교실에서 분리해 학생이 안정을 되찾도록 돕는 일을 한다(사진왼쪽). / 김은정씨 제공, 캐나다에서 뇌신경 음악치료사로 일하는 윤지명씨. 윤씨는 10여 년 전부터 일반학교와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을 치료해왔다. /윤지명씨 제공


[주간경향] 위기학생의 교육이라는 과제는 한국의 학교에만 부여된 일이 아니다. 선진국 대부분의 학교 현장도 쉽지만은 않은 이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한국의 교권이 약화하거나 학생인권이 신장해서 혹은 교사에게 엄격한 아동학대의 잣대를 들이대는 아동보호법으로 한국의 학교가 유독 어려움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우리 교실의 어려움은 위기학생에 대응할 역량과 제도가 부족한 데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학교만의 과제로 방치한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 무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학교는 한국의 학교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위기학생에 대응할 전문인력이 있고, 학생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면 매뉴얼에 따라 이들이 중재에 나선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학생이 안정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지만, 다른 사람의 안전이 침해될 우려가 있을 때는 학생의 행동을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제지하는 법을 배운 전문가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생의 행동에 대응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행동전략가, 심리학자, 경찰관, 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이뤄 주기적으로 학생을 방문한다. 교사 혼자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일은 없고, 위기학생의 학습권도 지속해서 보장된다.

캐나다에서 위기학생들을 중재하거나 치료하는 일을 해온 교포 2명을 전화로 각각 인터뷰했다. 김은정씨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위기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행동지원가(BSW)로 6년째 일하고 있다. 윤지명씨는 뇌신경 음악치료사로 통합학교와 특수학교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현재도 학교의 학생 치료 과정에 협업하고 있다. 두 사람과 각각 나눈 대화를 하나의 인터뷰로 엮었다.

-최근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이 교감에게 욕을 하고 여러 차례 뺨을 때리는 영상이 언론을 통해 급격히 확산했다. 이 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윤지명(이하 윤) “캐나다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동은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는 절대적 약자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어른들에 의해 조리돌림, 마녀사냥을 당했다. 선생님들도 프로토콜(규정)이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몰라 벌어진 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선생님들도 가엽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잘못으로 보인다.”

김은정 행동지원사 “캐나다 학교에서는 팀으로 대응한다. 교사, 행동지원사, 교장·교감 이외에 학교 밖의 심리학자, 행동전략가, 사회복지사 등 5~6명이 팀이 된다. 교사 혼자 책임지지 않는다.”


김은정(이하 김) “영상을 보고 교감 선생님도 대응법을 훈련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 상태에 놓여 있을 때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신체적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신체 접촉을 피할 수 있는 안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시스템이 없는 듯 보였다. 캐나다도 외부에서 볼 때는 시스템이 완비된 듯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한국은 이 정도 지원도 안 이뤄지는 것 같다. 한 아이가 6번이나 전학을 다니는 건 국가책임으로 봐야 한다.”

-한국사회에는 무엇이 부족한 것으로 보였나.

“캐나다는 위기학생도 보호하고 학교 구성원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몇 중의 안전장치가 있다. 첫째 안전장치는 교직원들이 교육을 통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을 쌓는다는 점이다. 학교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재교육이 이뤄지고 역량이 유지된다. 둘째는 상황별 대응 방안이 담긴 프로토콜이다. 이는 학생을 보호할 뿐 아니라 교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셋째로 위기상황을 중재하는 전담 인력인 게이트키퍼나 행동지원사가 존재한다. 넷째로 교장과 교감이 책임을 지고 일선 교사를 보호한다.”

-한국에선 주로 담임 교사 홀로 대응하다 보니 ‘독박 교실’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캐나다 학교에서는 교장의 권한이 강하다. 그만큼 책임도 강하다. 조치를 하고 책임을 진다. 교사는 수업을 진행하고, 게이트키퍼나 행동지원사가 위기상황에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다. 역할이 나눠져 있다.”

“캐나다 학교에서는 팀으로 대응한다. 교사, 행동지원사, 교장·교감 이외에 학교 밖의 심리학자, 행동전략가, 사회복지사 등 5~6명이 팀이 된다. 교사 혼자 책임지지 않는다.”

윤지명 음악치료사 “캐나다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동은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는 절대적 약자다. 어찌 보면 선생님들도 가엽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잘못으로 보인다.”


-일을 하면서 폭력 행동을 경험한 적 있나.

“치료일을 하는 초반엔 맞은 경험도 있다. 장애로 인한 행동인만큼 폭력 행동이 아닌 ‘어려운 행동’으로 불러야 한다. 그런 행동은 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치료의 대상이다. 이와는 별개로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에 치료 협업차 참석한 일이 있다. 갑자기 학생 한 명이 어려운 행동을 보였다. 게이트키퍼가 아이가 다치지 않게끔 교실에서 분리했고, 수업은 계속 진행됐다. 분리된 아이도 벽을 보고 서 있거나 벌을 받지는 않는다. 특수교사에게 데려가 행동치료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행동지원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

“평상시에는 위기학생의 공부를 돕는다.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면 학생을 데리고 나온다. 학생이 욕설하며 버티는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교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다른 교실로 이동하는 식으로 분리한다. 분리 후에는 평정심을 찾도록 대화하거나 놀아주고, 안정을 찾으면 다시 교사가 있는 교실로 돌아간다. 행동지원사는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일자리다. 과거에는 주로 중고등학교에만 드물게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 초등학교에서도 행동지원사가 배치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중재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위기학생마다 개별적인 지원 계획이 있다. 학생들이 보이는 행동의 단계별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담은 계획이다. 예컨대 사람을 때리고 창문을 부수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표출할 때는 학생의 안전을 위해 훈련 받은 전문가가 신체적으로 제지하고, 지정된 안전한 장소에서 학생이 평정심을 되찾을 때까지 보호하겠다는 계획을 작성한다. 이 계획에 학생과 보호자, 행동지원사와 교장·교감 등이 모두 서명을 한다. 학생도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조치가 이뤄질지 알고 있다. 부모 동의가 없다면 계획은 실행할 수 없다. 캐나다도 부모의 동의가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행동지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요건이 필요한가.

“위기학생의 수업을 도와야 하기에 2년제 이상의 학위가 필요하다. 또 위기학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치료적 위기 중재(TCI)’라는 자격증을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한다. 교직원의 교육 비용은 지역교육청에서 지원한다. 주로 감정을 가라앉히는 대화술을 배우지만, 다른 사람에게 위해가 되거나 학생 본인의 안전을 해치는 경우 신체적 제지가 허용된다. 신체적 제지는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 외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아동학대 요건의 완화를 위한 아동복지법 개정 등이 논의된다.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학생들의 권리를 약화시킬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건 확실한 권한이 있는 프로토콜과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보호 장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교육이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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