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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김건희 여사의 공덕?…고승의 사리가 사리구 없이 반환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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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회암사 혹은 화장사의 부도탑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14세기 고려말의 라마탑형 사리구. 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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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문화유산을 반환하는 데 물꼬를 튼 것인가, 원칙을 깨고 숟가락만 얹은 것인가.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80여년간 보관된 14세기 고려 말 지공선사(?~1363), 나옹선사(1320~1376)의 사리와 사리구 유물이 논란이다. 그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있다. 그가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보스턴 미술관에 사리·사리구 반환협상 재개를 요청했고 지난 4월18일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과 미술관의 합의로 사리가 국내로 돌아왔다. 사리를 원래 봉안한 곳으로 추정되는 경기 양주 회암사에서 5월19일 열린 사리 이운 기념 행사에는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참석해 169일만에 공개활동을 재개했다.



문화재계에서는 김 여사가 사리 반환과정에서 한 역할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고승의 유해인 사리와 일체를 이루는 관 성격의 사리구를 떼어놓고 사리만 돌려받은 건 사리·사리구 일괄 반환 입장을 고수해온 문화재청 원칙을 깬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10년간 정체 상태에 빠진 협상의 물꼬를 터서 환수를 이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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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 혹은 화장사의 부도탑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14세기 고려말의 라마탑형 사리구. 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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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불교공예 걸작…21세기 들어서야 연구 본격화





이 사리갖춤(사리와 사리구)은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수난사를 상징한다. 경기 양주 회암사 혹은 북한 개성 화장사의 옛 부도탑에 봉안됐다가 1930년대에 유출돼 미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1990년대까지도 국내에 사진과 간단한 내력 정도만 알려져 있던 이 사리갖춤 유산은 2000년대 초에 고려말기 걸작 불교미술품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200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미술관 기획전에 출품됐을 당시 최응천 현 국가유산청장이 국내 전문가로는 처음으로 실견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도 2003년 현지조사를 거쳐 2004년 간행한 도록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에 사리갖춤을 주요 컬렉션으로 소개했다.



사리구의 정식 명칭은 ‘은제도금라마탑형 사리구’다. 14세기 고려 말기에는 원나라의 영향으로 라마불교가 성행했는데, 사리구 또한 라마불교 불탑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특히 이 작품은 라마탑 모양 사리구 가운데 당대 불교공예의 정수를 담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사리구 내부에는 ‘은제도금팔각당형 사리구’라는 작은 사리병 5기가 안치돼 있다.



사리구에는 석가모니불 5과, 가섭불 2과, 정광불 5과, 지공선사 5과, 나옹선사 5과의 사리가 담겼다는 명문이 새겨졌다. 지금은 석가모니불 1과, 지공선사 1과, 나옹선사 2과만 현존한다. 인도 출신 지공선사와 제자 나옹선사는 당대 나라와 왕의 스승으로 추앙받던 고승들로, 사리구는 나옹 사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논란거리 중 하나가 사리기를 원래 소장했던 곳이다. 지공이 창건하고 나옹이 중창한 회암사 설과 지공 유골 일부가 안치됐다는 화장사 설이 엇갈린다. 회암사에 지공·나옹의 부도탑이, 화장사엔 지공 부도탑이 있으나, 확실한 소장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보스턴 미술관 쪽은 회암사로 추정하지만 화장사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는다. 미술사학계 태두 황수영 박사나 진홍섭 전 이대 교수는 1970~80년대 논고 등에서 사리구와 경내 부도탑 모양새가 닮은 화장사 쪽에 비중을 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협상 물꼬 김 여사가 텄지만…20여년 학계·시민단체 노력이 바탕





민간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가 2004~2013년 사리갖춤 유물 환수 협상을 벌였다. 보스턴 쪽은 이 과정에서 성물 사리들의 반환은 가능하지만, 사리구는 일본 고미술상 야마나카 상회로부터 정식구매한 공예품으로 불법 반출 증거가 없어 반환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화장사 봉안 가능성 때문에 북한 조선불교도연맹도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해진다. 협상 당시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본명 김영준)은 조선불교도연맹의 위임장을 받기도 했다.



2009년 문화재청이 사리와 사리구를 엮은 일괄 갖춤 반환 원칙을 밝히면서 협상은 정체됐고, 2013년 1월 보스턴 미술관 쪽은 논의를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여사가 지난해 4월 미국 순방 때 요청하면서 반환협상이 재개됐다. 지난 2월 최응천 청장과 조계종 문화부장 혜공스님이 보스턴 미술관 쪽과 기증 형식의 사리 반환에 합의했다. 조계종 교단은 앞서 두 고승의 사리만이라도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을 정부 당국에 피력해왔고 최 청장이 사리 우선 반환으로 입장을 조정하면서 후속 협상이 진척됐다는 게 국가유산청 쪽의 설명이다.



회암사는 한국사에서 여성권력자의 대명사로 회자되는 16세기 조선 명종 모친 문정왕후(1501~1561)의 치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의 대대적 후원 아래 조선 굴지의 사찰로 성장했으나 그의 사후 유생들의 훼손과 방화로 폐허가 됐다. 권력과 종교의 무상한 관계를 보여주는 유적지에 사리 반환 논의를 끌어낸 김 여사의 행보가 또다른 역사를 더하게 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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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보스턴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국가국가유산청과 조계종단, 미술관의 사리반환협상 모습. 국가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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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구 반환은 장기임대 등으로 협상 지속





문화재계 일각에서는 사리 반환이 김 여사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국면전환용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보스턴 미술관은 진작에 사리 단독 반환 입장을 내비쳐왔는데 김 여사가 마치 새로 한 것처럼 숟가락을 얹었다는 주장이다. 문화재청의 사리∙사리구 분리 환수 불가 입장이 그래서 번복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나름 근거가 있다. 실제로 보스턴 미술관은 2009년 이래로 사리만 반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단, 전제 조건은 문화재청이 이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 결국 사리 반환이 합의된 것은 국가유산청이 과거 문화재청 시절의 강경 입장을 바꾼 데 따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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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반환협상을 벌인 뒤 양국 관계자들이 사리와 사리구를 살펴보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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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사리구 반환 입장을 포기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지난 2월 보스턴 미술관 쪽이 사리 반환 조건으로 사리구 양도 요구를 포기하라고 하자, 최 청장과 조계종 관계자는 거부했다는 것이다. 국가유산청 한 관계자는 “기존의 사리·사리구 분리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면 정체 상태가 지속됐을 것”이라며 “김 여사 요청 이후 사리 반환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냈고, 협상 과정에서 사리구 반환이란 대의도 분명하게 각인시키면서 국내 반입 여지를 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교류 전시와 보존처리 등을 위해 사리구 임시 대여를 조속히 추진하기로 합의한 부분이 주목된다. 이르면 올해 안에 국내 불교유산과 교환 전시 조건으로 대여전시를 하고 사리구 세부의 과학적 보존처리 작업도 처음 벌이는 등 여러 측면의 신뢰 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전망이다.



문화재학계의 한 전문가는 “현실적으로 사리구를 보스턴 미술관 쪽이 불법적 방식으로 들였다는 어떤 증거도 없는 상황이라면, 임대 전시를 지속적으로 열면서 2011년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처럼 영구임대 형식으로 국내에 존치하는 복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도 내부적으로 여러 활용안 등을 검토하며 사리구의 임대 전시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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