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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파시즘 경험했던 독일…시민교육 통해 가치 판단력 키워”[2024 경향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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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단의 시대, 민주주의 힘은 어디서 오나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

경향신문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일 베를린 하인리히 뵐 재단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베를린 | 김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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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당과 연결된 정치재단, 독립기구로 민주주의 문제 다루고 공론장 마련
재단의 중요 활동 ‘시민교육’…“정치적 선택지 이해·판단 도와”
극우정당 ‘AfD’ 급부상에 “기존 정당·민주주의 신뢰 잃어…시민 설득 고민해야”

독일에는 정당과 연계된 정치재단이 있다.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딴 사회민주당(SPD)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을 비롯해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기독교민주연합·CDU), 한스 자이델 재단(기독교사회연합·CSU),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좌파당) 등 7개다. 독일 사회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경험의 반성을 토대로 민주주의 구현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시민 정치교육은 정치재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정치재단은 정당과 연결돼 있지만 독립된 기구로서 다양한 민주주의 문제를 다룬다. 공론장을 제공하는 등 시민이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재단 활동에 필요한 자금 상당 부분은 정부가 지원한다. 튼튼한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가 투자하는 셈이다. 독일 연방정부가 지난해 극우 성향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뺀 6개 정당 정치재단에 지원한 금액은 6억유로(약 9000억원)에 달한다.

녹색당과 연계된 하인리히 뵐 재단은 1996년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성별 평등, LGBTIQ(성소수자), 환경문제 등이 주력 분야다. 1998년 연방정부에 참여한 녹색당은 2021년 9월 총선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14.8%·118석)로 3위를 차지했다.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과 함께 ‘신호등’ 연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일 독일 베를린에서 임메 숄츠 하인리히 뵐 재단 이사장(60)을 만났다. 숄츠 이사장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포퓰리즘과 정치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진단했다. 포퓰리스트들이 주장하는 그릇된 현실 인식이 공론장을 허물고 시민 간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시민 정치교육을 꼽았다.

다음은 숄츠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독일 정당은 왜 정치재단을 설립하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 정당들은 민주정치 교육을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파시스트 독재 경험을 거치면서 서독에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정당의 재단은 그들이 대표하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 녹색당이나 연방정부 정책에 재단의 아이디어나 비전이 반영되는지.

“하인리히 뵐 재단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민주주의와 인권, 성별 평등, LGBTIQ 권리 및 생태학이다. 네 가지 분야를 주된 영역으로 독일뿐 아니라 35개 해외 사무소에서 활동한다. 녹색당 정책을 보면 재단이 다루는 가치가 잘 반영되어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녹색당으로부터 독립된 지위에서 재단이 여러 활동을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당 일부가 아닌 상태로 정책을 지원하면서도 독립적으로 비평하고 제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 기금의 상당 부분을 정부로부터 받는데 시민의 반대는 없나.

“재단은 상시 운영과 국제활동 지원을 위해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는다. 연방경제협력개발부에서는 개발도상국 사무소를, 외무부에서는 유럽·북미 지역 사무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받는다. 연구부는 학생 장학금 자금을 지원한다. 모든 정치재단은 정부에서 지원받는 대신 명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재단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부처별 정기 감사를 받는다. 자금의 용처가 잘못된 경우 자금을 뱉어내야 한다.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절차를 갖췄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재단이 자금을 받으려면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을 한다는 기본 조건을 갖춰야 한다.”

- ‘민주주의를 위한’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활동을 구분한다면.

“외국인 혐오, 반페미니즘, 권위주의 등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요소이다. 반대로 포용, 평등, 혐오발언 금지, 관용, 평화, 그리고 인권이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환경보호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의와 통합, 포용을 포함하는 민주주의 활동으로 국제사회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 민주 시민을 위한 재단의 교육을 설명해달라.

“재단의 시민 교육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예컨대 사회에는 종종 기업에 대한 불신이 있다. 기업의 주장이 사실인지 등을 두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다른 중요한 활동은 사회문제와 정치적 해결책에 대한 정보 제공과 토론을 진행하는 일이다. 재단이 긍정적 시각뿐 아니라 비판적 시각을 함께 다룰 수 있는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 시민 교육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시민들의) 판단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구성 요소다.”

- 민주 시민 교육의 지향점은.

“재단의 교육 프로그램은 시민이 다양한 정치적 선택지를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의견 형성을 토대로 한다. 정치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지지할 정당을 선택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이 바탕이 된다. 시민 교육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적 가치 강화를 목표로 한다.”

- 독일 연립정부 16개 부처 중 기후경제, 외교, 농업, 환경, 가족 등 5개 부처 장관은 녹색당 정치인들로 구성돼 있다. 한때 제도권 저항의 상징이던 녹색당이 독일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1990년대 녹색당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녹색당의 첫번째 정부 참여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였다. 독일의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적록(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민주주의와 다당제 체제 국가에 살고 있으며 연립정부에서 항상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단일 정당으로 구성된 정부는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한 진보적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개혁을 추진하는 타협이 필요한 셈이다.”

- 녹색당이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에선 1920년대부터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기가 중요한 주제였다. 1970년대에는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원자력의 위험성이 드러나고, 탄소배출 제한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다. 이런 배경에서 사람이 에너지 전환 이슈에 공감했다. 희망을 주는 과학적 통찰이란 점에서 말이다. 독일 사회는 이를 토대로 더 나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반 빌리 브란트 총리 시절 환경 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산업과 광업으로 황폐해졌던 라인강은 정비 작업을 거쳐서야 복구됐다. 녹색당은 한발 더 나아간다. 망가진 환경을 복구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경제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녹색당이 사회민주당과 차별되는 지점이자 지지받는 이유 중 하나다.”

- 독일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사람인가, 정치·경제 시스템인가, 혹은 법인가.

“한 가지를 꼽긴 어렵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독일의 정치 시스템은 파시즘 독재 경험에서 비롯됐다.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법, 사회경제 구조, 교육받은 시민들 모두 필요하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립된 언론도 매우 중요하다. 독립된 연방 헌법재판소와 주 헌법재판소도 있어야 한다. 정리하면 행정·입법·사법부의 3권 분립과 더불어 언론이라는 제4의 권력이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민주주의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타협을 필요로 한다. (이를 방해하는) 포퓰리즘과 양극화는 부정적이라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 독일에서는 반난민·반이민 등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최근 지지세를 넓히고 있다. 독일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AfD의 부상을 두고는 여러 설명이 있다. 우선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기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이런 이유로 AfD로 돌아선다.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이슈를 다룰 때 사실에 기반한 분석과 해법을 외면한다는 점은 AfD 부상을 설명하는 또 다른 해석이다. 예컨대 AfD는 일부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가 실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한다. 독일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이민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분석을 토대로 한 그릇된 해결책이다. 이런 접근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타협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다른 정당이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태에선 AfD의 주장이 지지를 받게 된다. 이런 점이 진짜 위기다. (기존의) 모든 정당은 자신들이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진정한 해법을 제시하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베를린 | 김희진·이창준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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