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7 (목)

이슈 오늘의 사건·사고

“내 손 거친 발명품, 화재현장 맹활약 ‘뿌듯’” [나는 소방관이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 박정진 광주 남부소방서 소방위

출동시 불편한 점 무엇이든 발명

골목 진입 소방사다리차 대표적

소화전 쉽게 여는 ‘키’ 특허상도

“미국 전문훈련장서 교육 받고파”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5개월 전쯤인 2021년 11월 광주 광산구 도천동 한 물류 창고에 불이 났다.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가 가득했다. 불이 나자 사다리차와 굴절차가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눈앞에 물류 창고가 보였지만 이들 차량은 채 3m가 되지 않는 너비의 도로에 막혀 더 이상 진입을 하지 못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소방펌프 사다리차가 도로를 뚫고 들어갔다. 15m 길이의 소방펌프 사다리차의 맹활약으로 화재는 진압됐다.

“광주는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길이 많아요.”

이날 소방펌프 사다리차를 운용한 소방관은 현재 광주 남부소방서에 근무하는 박정진 소방위다. 박 소방위는 2019년 광주에 최초 도입된 소방펌프 사다리차의 규격서를 작성한 장본인이다. 규격서는 소방차에 필요한 마력과 높이, 보조엔진, 탑승인원 등의 옵션을 넣는 설계서를 말한다.

2006년 5월 공채로 입직한 박 소방위는 그동안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광주에 가장 적합한 소방펌프 사다리차를 설계했다. 소방펌프 사다리차는 도로 폭이 2.5m 이상이면 진입이 가능하다. 종전 사다리차는 도로 폭이 6m 이상이어야 운용이 가능했다.

소방펌프 사다리차의 또 다른 장점은 유사시 소방관의 탈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원룸 5층 높이까지 사다리를 펼칠 수 있는 소방펌프 사다리차는 인명구조와 소방관 탈출로가 마련돼 있다. 박 소방위는 광주소방학교에서 후배들에게 소방펌프 사다리차 활용법은 물론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세계일보

박정진 소방위가 광주 광산구 월곡119센터에서 자신이 설계한 소방펌프 사다리차의 이용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 소방위는 무엇이든 불편함을 느끼면 발명하는 ‘발명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발명품이 간편한 소화전키다. ‘소화전에 보호틀이 있어도 쉽게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도로에 설치된 소화전에는 소화전을 보호하는 보호틀이 설치돼 있다. 이 때문에 긴급상황에서 소화전키를 이용해 소화전 밸브를 여는 데 애를 먹었다. 그는 보호틀이 있어도 소화전키를 신속하고 편리하게 열 수 있는 소화전키를 개발했다. 2015년 광주시민 발명대회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았다. 그는 특허등록을 한 후 광주시에 양도했다.

박 소방위는 산불진화 등짐 펌프 소화용수 공급장치도 발명했다. 산불이 나면 진화요원들은 등짐펌프에 물을 가득 채워서 산을 올라야 한다. 그는 산불진화요원, 소방관들이 직무 특성이라고 지나쳤을 등짐펌프에 ‘빈통으로 올라가면 안 될까’라는 물음표를 던졌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산 아래 소방차의 고압호스를 산불난 곳까지 연결한 후 호스 측면에 구멍을 내 등짐펌프 빈통에 물을 가득 채워 산불을 진화하는 방식을 구상했다. 진화요원들은 빈통을 지고 올라가서 소화용수를 채우면 된다. 박 소방위는 이 같은 아이디어로 2014년 광주 광산구 지식발명대회에서 광산구청장상을 수상했다. 박 소방위가 발명한 소화용수 공급장치의 효과는 현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박 소방위는 2018년 (충북) 충주세계소방관대회에서 통역을 담당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의 꿈은 미국 텍사스주 운용 소방 관련 자격취득 전문훈련기관 ‘TEEX’(Texas A&M Engineering Extension Service)에서 소방 관련 직무연수를 받는 것이다. 박 소방위는 “TEEX에서 3∼4주간 산업화재와 유류화재진압 훈련을 집중적으로 배운 후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교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광주=글·사진 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