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줄이고 체질 개선 박차
긴박했던 유동성 리스크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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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 3월 8일 회장에 오른 후 그는 그룹 내에 긴장을 불어넣는 한편 위기 극복을 위한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위기 속 등판
정 회장이 취임한 시점은 신세계그룹의 위기감이 상당히 고조된 시기였다. 이마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4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사상 첫 적자를 냈다. 연결 매출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나 쿠팡에 밀렸다. 특히 신세계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했다. 일반적으로 오너 경영인의 인사가 정기 임원인사와 함께 이뤄지는 것과 달리, 정 회장의 인사는 3월 중 단행됐다는 점도 그룹의 위기감을 뒷받침 한다.
물론 당시 정 회장의 승진 인사 자체는 직함만 달라졌을 뿐 큰 틀에서의 변화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정 회장은 2006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부터 이미 10년이 넘도록 어머니 이명희 총괄회장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서왔다. 정 회장의 승진 후에도 이 총괄회장이 여전히 그룹 총수를 역할을 하고 있고, 지분 증여 등 추가적인 승계 계획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려운 시기에 회장직을 맡게 된 만큼 정 회장은 막중한 위기감과 책임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개인적인 변화가 눈길을 끈다. 정 회장은 평소 '소통하는 오너'로서 즐기던 SNS 활동을 중단하고 그간 올렸던 게시물도 정리했다. 불필요한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 그는 애착을 갖고 자주 찾던 SSG랜더스 야구장에도 방문하지 않고 있다. 취미인 골프 역시 중단했다. 대신 업무시간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1월 비상경영을 선언하면서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변화를 요구만 한다면 뒤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급한불' 껐다
정 회장 취임 후 신세계그룹에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경영진을 포함한 '신상필벌' 인사 제도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경영전략실을 개편하면서 실적과 성과 중심의 인사 평가 제도를 구축하도록 주문했다.
실제로 그가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시기와 상관 없이 수시 인사를 단행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 초 신세계건설 대표이사를 교체한 일이다. 이는 정 회장 취임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단행된 첫 임원임사였다. 당시 신세계그룹은 신세계건설 대표와 영업 담당 임원 2명을 '경질'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정 회장이 신세계건설 유동성 문제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인사 후 그룹 내에 상당한 긴장감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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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정 회장은 그룹의 재무적 리스크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바로 신세계건설의 유동성 위기와 SSG닷컴의 풋옵션 리스크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월 신세계건설의 레저사업부문을 조선호텔앤리조트에 1820억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정 회장은 지난달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이 인수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하는 유상증자에 이마트가 1000억원을 현금 출자하도록 결정했다. 또 신세계건설이 지난달 말 6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때 이마트가 자금보충약정을 체결했다. 신세계건설이 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다면 이마트가 대신 상환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잇단 자금조달에 힘입어 신세계건설의 부채비율은 약 200%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어 정 회장은 SSG닷컴의 급한불도 껐다. SSG닷컴이 2018년 재무적 투자자(FI)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로부터 1조원의 투자를 받을 당시 2023년까지 총거래액이 5조1600억원이 넘지 못하면 신세계그룹이 지분을 다시 매입하는 풋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이 풋옵션 행사 기간이 올 5월 시작됐고 신세계그룹은 투자금 회수를 요구하는 FI와 갈등을 빚었다. 다행히 양측은 풋옵션 행사 대신 FI가 보유한 SSG닷컴 지분 30%를 연말까지 제3자에게 매도하기로 협약했다. 올해 말까지 잠시 시간을 번 셈이다.
효율화 작업
전사적인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들도 시행됐다. 정 회장의 취임 직후 이마트는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또 최근에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자회사 이마트에브리데이가 근속 15년 이상 사원 대상의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공지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진행된다.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는 다음달 1일 합병한다. 대형마트와 SSM은 비교적 비슷한 사업군이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 회사를 합병하면 매입 규모를 확대해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한편 통합 물류를 통해 운영을 효율화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편의점 자회사 이마트24와의 합병도 추진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의 MOU 체결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김홍기(왼쪽) CJ주식회사 대표와 임영록(오른쪽)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 /사진제공=CJ, 신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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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 회장은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의 협력도 이끌어냈다. 두 그룹은 지난 5일 온·오프라인 유통 및 물류, 콘텐츠 등에서 전방위 협력을 해나가기로 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실무급에서 1년여간 논의된 후 양 그룹의 오너가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MOU에 SSG닷컴 물류센터를 CJ대한통운에 이관시키는 건이 담겼다. SSG닷컴의 직접 물류를 포기하고 CJ대한통운에 관련 사업의 외주를 맡긴다는 의미다.
당초 SSG닷컴이 물류센터 10곳을 짓는데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을 정도로 이커머스 사업에서 물류가 가지는 중요성은 크다. 하지만 이 부분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 역시 정 회장의 의중이 담겼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에서도 자금 확충이 있었다. 신세계그룹의 데이터쇼핑(T커머스) 계열사 신세계라이브쇼핑은 지난 14일 유상감자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유상감자로 최대주주인 신세계(76.08%)는 228억원의 투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이는 신세계가 지난 2022년 7월 이마트와 신세계I&C로부터 신세계라이브쇼핑의 지분을 2255억원에 인수한 이래 첫 투자금 회수다.
남은 과제는
하지만 여전히 정 회장 앞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SSG닷컴의 새 투자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FI가 투자한 금액이 1조원 가량인데, 신세계그룹은 이를 상회하는 투자금을 낼 투자자를 찾아야 한다. FI가 투자한 2018년 당시 SSG닷컴의 기업가치는 3조원이 넘었지만 현재는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를 찾는 데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신세계그룹이 FI의 지분 30%를 사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룹이 전반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1조원이 넘는 자금 조달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2월 신입사원 수료식에서 신입사원과 셀카를 찍고 있다. / 사진=신세계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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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마트의 실적 개선과 주가 관리도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이마트는 희망퇴직의 여파로 2분기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이마트는 최근 일부 점포의 영업시간을 늘리는 등 본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주가는 여전히 바닥이다. 17일 현재 현재 이마트의 주가는 5만8200원으로 2011년 상장 이래 최저 수준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그룹의 신사업도 찾아야 한다.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회장이 부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다양한 영역의 신사업에 도전하며 영토를 넓혀왔다. 물론 여러 분야에서 실패를 겪기도 했으나 호텔 등은 현재까지 성공적인 신사업으로 평가된다. 당장은 그룹의 재무적 위기로 여러 신사업에 투자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유통업계 부진이 길어지는 만큼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가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유통업계 전반이 부진을 겪고 있는데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정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며 "이미 부회장일 때부터 여러 위기를 넘어왔으나 회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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