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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두둑한 자사주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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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이혼’ 1.4조 폭탄에…SK의 운명은? [스페셜리포트]


매경이코노미

2심 판결이 확정되면 SK그룹 지배구조는 격랑에 휘말린다. SK그룹 지배구조상 최 회장 지분이 흔들리면 전체 지배력 역시 흔들린다. SK그룹 지배구조는 최 회장이 SK㈜ 지분 약 18%를 보유하고 SK㈜가 SK텔레콤(30.6%), SK이노베이션(36.2%), SK스퀘어(30.5%), SKC(40.6%) 등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친족 등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 회장 측 SK㈜ 지분율은 약 25%다. 최악의 경우 현금 마련을 위한 SK㈜ 지분 매각 과정에서 경영권을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우려가 현실화하더라도 경영권 방어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 회장이 1조3808억원 현금 모두를 부담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를 SK㈜ 주식으로 환산하면 대략 860만여주다. 이는 SK㈜ 전체 지분의 12% 정도다. 최 회장의 SK㈜ 지분율은 17.7%다. 지분을 팔아 전액 현금으로 마련하면 최 회장 지분율은 5%대로 떨어진다. 특수관계인 등 우호 지분을 모두 더하면 최 회장 측 지분율은 약 12%다.

SK㈜는 잔뜩 쌓아둔 자사주가 방어막이다. 자사주는 그 자체로는 의결권이 없지만 거래 상대방과 맞교환한 자사주는 의결권을 갖는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SK㈜가 보유한 자사주는 1867만9439주다. 발행 주식의 25.5%에 달한다. 두둑한 자사주가 유사시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SK그룹 입장에서는 최 회장과 소액주주 간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묘수를 찾는 게 난제다. 자본준비금(주식발행초과금) 감액배당은 비과세 배당이므로 최 회장과 소액주주 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SK㈜ 주가 부양도 마찬가지다. 주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지분 가치가 높을수록 대출 여력이 커진다. 최 회장이 주식담보대출을 받으면 주가 관리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주가 급락 때 담보 부족으로 반대매매(마진콜)에 노출돼 최 회장의 그룹 전체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배당 절대금액 자체를 늘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설비 투자 노출과 차입 의존도가 큰 그룹 포트폴리오 특성 탓에 지주사로 유입되는 현금흐름이 제한적이다.

문제는 자사주다. SK㈜ 지분 가치 부양을 위해서는 자사주 소각 규모를 대폭 늘리는 게 손쉬운 선택지다. 자사주 매입은 그 자체로 유통 주식 수와 자본 감소 효과로 이어지지만 주주 입장에서 더 좋은 건 자사주 소각이다. 자사주 매입은 이미 사둔 자사주를 시장에 다시 매각할 우려를 뜻하는 ‘오버행’ 리스크가 있다. 자사주를 소각해버리면 위험을 덜고 주당 가치는 더 높아진다.

하지만, 작금의 난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자사주를 섣불리 소각하기 쉽지 않다. 자사주를 소각했다 자칫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어서다. SK㈜는 2000년대 ‘소버린 사태’ 때도 국민은행 등 채권은행과 지분을 맞교환해 가까스로 경영권을 방어했다.

행동주의펀드 진영을 중심으로 불편한 시선이 확산하는 점도 SK그룹 입장에선 부담스럽다. 익명을 원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 개인 송사에 회사 자원이 동원되고 주요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며 “주주 가치를 위해 배당보다 자사주 소각에 집중하길 바랐는데, 총수 일가 이혼 소송으로 주주 가치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에 대해 이사회에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아도 SK㈜는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이라는 시장의 날 선 비판에 직면했다. SK그룹은 2022년 3월 주총을 통해 2025년까지 매년 시총의 1%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입, 소각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 눈높이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6월 4일 “SK㈜ 주식이 지속적으로 대규모 할인 거래되는 근본적 이유는 총 발행 주식 수의 25%에 달하는 자기주식 때문”이라며 SK㈜가 보유 중인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라며 날을 세웠다. 포럼에 따르면, 과거 3년간 SK㈜ 주가는 약 45% 급락했고, 연평균 18% 하락했다. 약 2% 배당수익률을 감안해도 SK㈜ 주주는 2021년 5월 이후 매년 16% 투자 손실을 입었다.

포럼은 “그동안 이사회에서 자본배치 결정을 내리면서 총주주수익률(TSR·Total Shareholder Return)을 염두에 뒀는지 묻고 싶다”며 “TSR은 자본비용, 자본효율성 등과 함께 정부 밸류업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한 핵심 경영 지표고 글로벌 스탠더드다. 장기간 SK㈜ 총주주수익률은 심각한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자사주 공시 규제가 강화되는 것도 SK그룹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증권 발행·공시 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자사주 보유 물량이 전체 발행 주식 수의 5% 이상인 상장사는 구체적인 자사주 보유 현황·목적·처리 계획 등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이사회 승인을 받고, 이를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시해야 한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6월 3일 항소심 판결과 관련, “개인적인 일로 SK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SK와 국가 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임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 최고협의기구로, 최창원 의장을 비롯 주요 계열사 CEO가 매월 1회 모여 그룹 차원 공동 현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다만, 항소심 선고 뒤 SK그룹이 사법부 판단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듯한 메시지를 낸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일부 CEO는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으로 SK가 성장한 것처럼 곡해했다” “정부 압력 때문에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일주일 만에 반납한 게 역사적 사실”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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