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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단통법 폐기'도 폐기됐다…총선 뒤 실종된 '국민 통신비' 절감책 [팩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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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꺼낸 3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이 ‘용두사미’로 전락할 위기다. 통신사를 옮기면 추가 지원금을 제공하는 ‘전환지원금’은 총선 전 수준에서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제4이동통신사 후보 사업자는 자격 미달로 판명 났다. 이른바 ‘단통법’(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폐지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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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시내의 한 휴대폰 매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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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정부는 올들어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3가지 정책 카드를 꺼냈다. 지난 1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민생 토론회를 열고 2014년 제정된 단통법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신사 지원금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의 단말기 구매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통신사를 변경할 경우 기존 지원금에 더해 전환지원금을 별도로 최대 50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시행령을 개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4이통사 도입을 위한 5세대(G) 이동통신 28기가헤르츠(㎓) 주파수 경매를 진행했고, 스테이지엑스가 지난 1월 낙찰받았다. 하지만 지난 6개월 사이 정부의 3가지 정책 카드는 모두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동현 한성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근본적인 대안이 아닌 총선을 겨냥한 보여주기식 정책이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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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용두사미 된 3대 통신 정책







① 요란했던 전환지원금, 총선 끝나니 무관심: 1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통신 3사의 전환지원금은 지난 3월 도입 직후 반짝 상승했으나 이후 큰 변화가 없다. 전환지원금은 지난 3월 16일 단말기에 따라 3만~13만원으로 책정됐다가 방통위 요청에 따라 1주일여 뒤 3만~33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SK텔레콤과 KT는 3월 23일 전환지원금을 상향한 게 마지막 조정이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4일까지 지원금을 조정했지만, 구형이나 저가 모델에서만 변화가 있었다. 갤럭시S24 시리즈, 아이폰15 등 최신 단말기는 대상에서 빠져 있거나 혜택이 적다. “최신 단말기 구매 부담이 대폭 낮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던 정부 장담과 달리 통신 3사의 경쟁은 총선 전 수준에서 멈춘 셈이다. 정책 효과가 미미했다는 건 숫자로도 드러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이훈기(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환지원금 제도가 시행된 3월 16일부터 5월 말까지 전체 번호 이동 건수는 131만5518건이다. 시행 전인 올 1월부터 3월 15일까지 이동한 132만9774건보다 오히려 1만4256건 줄었다. 전환지원금 도입에도 기존 통신사 결합 할인 등을 이유로 번호 이동 수요에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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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테이블 왼쪽)이 지난 3월 21일 서울의 한 휴대전화 매장을 찾아 번호이동에 따른 전환지원금 최대 50만원 지원 효과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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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폐기된 단통법, 다시 발의됐지만: 단통법 폐지안은 지난달 말 21대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자동 폐기됐다. 국회 입법 사항이어서 야당 동의가 필수적이었지만, 여야 갈등에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22대 국회 개원 후 지난 3일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 등이 재발의했다. 정치권 갈등이 심화하면서 법안이 언제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법안을 논의해야 할 국회 과방위는 이날 파행 운영됐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정부 관계 기관장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 3법과 방통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다.

③결국 무산된 제4이통사: 제4이통사는 주파수 할당 후보 사업자를 선정하고도 무산됐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14일 “스테이지엑스가 법령이 정한 필요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오는 25일 선정 취소 여부를 최종 결정할 청문 절차를 개시한다. 8번째 시도 끝에 후보 사업자를 찾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스테이지엑스는 사업 의지를 보였지만 약속한 설립 자본금(2050억원)을 제 날짜에 채우지 못해 취소 수순을 밟게 됐다. 경매 전부터 참여자들의 재정 능력을 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제 4이통사 도입을 밀어붙인 정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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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원 스테이지엑스 대표가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스테이지엑스 제4이동통신사 선정 언론간담회에서 사업전략을 소개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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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용두사미 됐나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애초에 국내 통신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통신비 인하 드라이브로 공시지원금이 올라가고, 3만 원대 5G 요금제가 나오는 효과는 있었다”면서도 “시장이 포화상태라 통신 3사가 과거처럼 개인 가입자를 대상으로 마케팅 출혈 경쟁을 벌일 유인은 애초부터 크지 않아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제 4이통사 도입도 총선을 앞두고 섣불리 추진하다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재정 검증을 하지 않은 채로 주파수 경매에 참여하도록 한 뒤 결국 재정 능력을 문제 삼아 사업자를 탈락시켰다”며 “사전 검증을 강화하는 제도 보완을 우선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살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도 제 4이통사 관련 법과 제도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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