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종합환경기업 에코비트 매각이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 매각 주관사가 이달 초 진행한 예비입찰에 국내·외 6곳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참여했고, 적격예비인수(숏리스트)에만 4곳이 선정됐다.
에코비트 매각전은 초반만 해도 흥행 실패 조짐을 보였다. 국내 최다 매립장, 최대 용량을 보유한 폐기물 매립 1위 사업자지만, 매립지 잔존용량 부족 가능성에 외면받았다. 대주주인 TY홀딩스와 PEF 운용사 KKR은 에코비트 몸값으로 3조원을 제시했는데, 원매자들은 2조원도 비싸다는 입장이었다.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 준 곳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배포된 투자설명서(IM)에서 ‘스테이플 파이낸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스테이플 파이낸싱은 매각 측이 잠재 인수자를 대상으로 주선하는 인수금융이다. 인수금융 규모는 1조5000억원, 금리로는 5% 중반을 꺼냈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테니, 에코비트를 매수하라는 사인이었다.
인수자금 부담이 대폭 줄어든 원매자들은 일제히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현재 시중은행 기준 인수금융 금리는 6%를 훌쩍 넘어선다. 산업은행 주선 인수금융만으로 연간 150억원의 이자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에코비트 3조원 몸값 매각을 누구보다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로 위기에 빠진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으로, 에코비트가 비싼 값에 팔릴수록 채권 회수가 용이해져서다. 에코비트 매각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자구안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간과한 게 있다. 바로 KKR의 존재다. KKR은 에코비트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3조원에 에코비트를 매각할 시 단순 계산으로 1조5000억원이 KKR의 몫이 된다. 산업은행이 스테이플 파이낸싱으로 보장한 3조원 몸값의 수혜를 KKR이 고스란히 챙기는 셈이다.
본입찰 등 절차가 남았지만, 이대로라면 산업은행은 국민 혈세로 해외 자본의 투자금 회수를 도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숏리스트에 오른 4곳도 대부분 해외 운용사로 해외 투자자가 에코비트를 인수할 경우 혈세로 해외 투자자를 지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산업은행도 혈세 지원 비판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1조5000억원을 나눠 집행할 금융기관을 부랴부랴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중은행이나 증권사 등의 인수금융 자금을 최대한 많이 끌어와야 혈세로 1조5000억원을 지원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다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산업은행이 공동 주선은 허용하지 않아 금융기관의 참여 유인 자체가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은 시중은행이나 증권사들이 에코비트 인수금융에 참여할 경우 주선 수수료의 일부를 떼어주는 안만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중은행, 증권사들은 주선사 자격이 있어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주선사가 자금 모집 때 받는 수수료 때문이다. 특히 인수자에게 인수 자금을 빌려주는 스테이플 파이낸싱의 경우 주선 수수료도 비교적 높다. 5% 중반 낮은 금리를 제시한 산업은행이 공동 주선만큼은 넘기지 않으려 하는 이유인데, 반대로 말하면 시중은행이나 증권사는 참여할 만한 이유가 없다.
증권가에선 산업은행이 과욕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동 주선 없이 참여 기관에 수수료를 떼어주는 방식의 모집은 사실상 신디케이션(집단 대출)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수금융 주요 기관이 일제히 검토를 중단한 배경이다.
혈세 지원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산업은행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인수금융 공동 주선 길을 열어 시장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에코비트가 영위하는 매립 외 폐기물 소각, 수처리 사업은 인프라 자산으로 분류돼 인수금융 시장의 관심이 여전하다는 것이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점이다.
산업은행에 에코비트 매각은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매각 실패로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흔들릴 경우 채권 회수 불발은 물론, 정부의 부동산 PF 위기 연착륙마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의 참여를 배제한 채 움직이는 자금은 모두 국민의 혈세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배동주 기자(dont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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