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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흰색 실선’ 넘다 사고나도, 보험있으면 처벌 면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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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흰색 실선’ 판례 변경

조선일보

조희대 대법원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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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2021년 7월 대구 달서구 한 도로의 1차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2차로로 변경했다. 그런데 이 지점에는 흰색 실선이 설치돼 있어 진로 변경이 제한되는 구간이었다. A씨가 갑작스럽게 진로 변경을 하면서, 2차로 뒤편에서 달리던 개인택시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정거했다. 이 사고로 택시 승객 B씨가 목을 다쳐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검찰은 A씨가 흰색 실선을 위반해 차로를 넘어간 것을 교통사고특례법 위반이라고 봤다. 교통사고특례법 3조 2항은 ‘12대 중과실’ 중 하나로 ‘통행금지 안전표지 지시 위반’을 규정하고 있다. 흰색 실선은 ‘통행금지 표지’에 해당하고 A씨가 이를 어기고 진로 변경을 한 것은 12대 중과실에 포함돼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쳐도 가해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했거나 상대방과 합의하면 형사처벌을 면제하지만, 12대 중과실로 인한 사고는 보험 가입 등과 관계없이 처벌하도록 한다. A씨는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된 상태였지만 검찰에 기소됐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공소기각을 선고한 원심을 전원 일치 의견으로 확정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흰색 실선이 ‘통행금지’가 아닌 ‘진로 변경 금지’를 의미해 12대 중과실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통행금지와 진로 변경 금지의 사전적 개념이 다르고, 도로교통법이 두 사안을 달리 규율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법원은 또 운전자들이 흰색 실선 위반을 중앙선 침범과 과속, 음주 운전 같은 12대 중과실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1심은 “일반 국민들이 백색 실선 위반을 12대 중과실 중 하나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고, 처벌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 여론의 합의 또는 지지가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좁은 도로를 운전할 때 흰색 실선을 넘지 않고 진로 변경을 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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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의 대법관들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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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이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도로교통법상 흰색 실선은 일반적인 통행금지 안전 표지와 달리 취급되고 있다”며 “이를 통행금지 위반으로 보는 것은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해석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진로 변경 제한선(흰색 실선)이 없었으므로, 이를 통행금지 표지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있는 A씨를 흰색 실선 위반으로 검사가 기소한 것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흰색 실선을 침범한 교통사고에 대해 종합보험 가입 특례 규정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 종전 판례를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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