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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만물상] 희한한 북·러 국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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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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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하류인 지린성 훈춘시 팡촨(防川)은 북·중·러 3국 국경이 꼭짓점처럼 만나는 지역이다. ‘용호각’이란 전망대에 올라가면 북·중·러의 국경 초소가 다 보인다. 새벽 닭이 울면 3국 국민이 모두 깬다는 말도 있다. 두만강 520Km 가운데 북·러 국경은 하류 끝의 15km뿐이다. 그런데 이 15km가 동해로 나가야 하는 중국의 출구를 막고 있다. 1886년 중·러 국경 획정 때 중국이 실수했기 때문이다. 용호각 옆에는 중·러 국경을 알리는 ‘토자비(土字牌)’가 있다. 원래는 동해 앞에 세우려 했다. 그런데 두만강 하류는 구불구불하고 강·바다, 동서남북 구분이 어렵다. 중국 관리가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간과하고 동해에서 15km 안쪽에 국경비를 세우는 바람에 사달이 났다. 중국은 이 관리를 중형에 처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동해로 빠지는 두만강 하구에 녹둔도가 있다. 세종이 여진족을 밀어내고 4군 6진을 개척할 때 우리 땅이 됐다. 이순신 장군이 녹둔도를 공격해온 여진족을 응징하고 적장을 사로잡는 전공을 세운 적도 있다. 이후 녹둔도는 하구 퇴적으로 러시아측 육지와 붙으면서 섬의 모습을 잃었다. 대한제국 때까지 녹둔도에 우리 국민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진 전망대에서 쳐다볼 수만 있다.

▶북·러는 1959년 두만강에 철도 교량을 놨다. 양측을 잇는 유일한 육상 통로다. 김씨 일가들이 이 다리를 건너 러시아를 방문한다. 2021년 코로나 창궐 때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과 가족 8명이 두만강 철교에서 ‘레일 바이크’식 수레를 타고 러시아로 탈출해야 했다. 북·러 열차 운행이 끊긴 탓이다. 혹한에 19세기 유물인 철길용 수레를 수동으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북한을 벗어나자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고 “두만강에 자동차 도로를 건설하는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북·러가 ‘자동 군사 개입’ 협정 등 동맹 관계로 격상했다고 하지만 지금껏 국경에 자동차 연결 도로 하나 없었다. 이런 동맹도 있나 싶다.

▶도로가 생기면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유입이 좀 더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접한 러시아 극동은 인구가 적고 낙후한 곳이다. 도로가 생겨도 대부분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북·중 곳곳은 열차·자동차 다리로 연결돼 있다. 지금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역대 최고인 96%를 넘는다. 북 생명줄을 잡고 있는 중국은 북·러 밀착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길게 보면 김정은의 패착일 수도 있다.

[안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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