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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할아버지, 아이스크림 그냥 가져가시면 안돼요”…무인점포 절도 골머리 [일상톡톡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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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체감하는 무인점포 성장세 ‘폭발적’

인건비 들이지 않아도 돼 우후죽순 생겨나

절도 등 관련 범죄 증가세…제지 쉽지 않아

사건 늘며 ‘치안 수요’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소액절도 대응 위해 품 들이는 게 되레 손해

바로 해결되기도 어려워…손해 감수 경우도

입지 좋지 않은 곳 창업시 권리금은 물론

보증금까지도 날릴 수도 있다는 지적도

#. 수도권에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점주는 최근 절도 피해를 입었다. 그는 “아무리 소액 절도라고 해도 매일 같이 훔쳐 가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고령으로 추정되는 손님은 그의 가게에 들어와 아이스크림 1~2개씩을 안주머니에 넣어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점주는 “‘할아버지가 간식거리가 없으셔서 아이스크림을 가져가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멀다고 아이스크림을 훔쳐 가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 남성이 아이스크림을 훔칠 때마다 “할아버지, 아이스크림 그냥 가져가시면 안 돼요”라는 식으로 대응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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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무인점포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절도 등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점주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아이스크림·문구점 등으로 시작한 무인점포가 카페·디저트·반찬 등을 거쳐 스터디카페·체육시설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장하면서 관련 범죄도 덩달아 늘고 있는 것이다.

21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전국 무인점포 개수는 전국에 10만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자등록만 하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 없이 곧바로 개업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점포 수는 알기 어렵다.

다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무인점포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아파트 단지 등 배후상권이 있는 상가라면 무인점포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한 상가에 복수의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업종도 다양하다. 초기엔 아이스크림, 과자, 라면 등 먹거리 위주의 점포가 대부분이었으나 이후 사진관이나 키즈카페, 파티룸 등 무인 공간대여 사업으로도 확장했다.

최근엔 헬스장과 테니스장, 스크린골프 등 실내 스포츠 사업에도 무인 시스템이 진출해 있다.

이처럼 무인점포는 인건비를 거의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덕분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관리자가 현장에 없다 보니 절도나 재물 손괴, 쓰레기 무단 투기 등 범죄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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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27일 새벽 1시20분쯤 한 무인점포에서 망치로 계산대를 부순 뒤 현금을 꺼내려고 하는 중학생들의 모습. MBN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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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경기 남부지역 무인점포 절도 사건 발생 건수는 2021년(3~12월) 698건에서 2022년(1~12월) 1363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무인점포 수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범죄 발생 건수도 훨씬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관리 시스템의 발달로 절도나 키오스크 파손 등의 행위가 CCTV에 포착되면 업주에게 곧바로 알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업주는 이를 확인한 뒤 경비업체 등에 알리거나 매장에 설치된 스피커로 경고 안내방송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속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범법행위를 강행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제지할 방법이 없다.

과거엔 CCTV에 찍힌 절도 장면 등을 가게에 붙이거나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는 등의 방법이 자주 쓰였지만, 손님의 얼굴 사진을 공개적으로 붙이는 게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 이후론 이런 방법도 어려워졌다.

경찰 역시 관련 사건이 급격하게 늘면서 치안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용의자를 찾기 위해선 매장 주변 CCTV를 이용한 현장 탐문 수사가 필요한데 무인점포 관련 사건이 비교적 소액 사건인 데다, 긴급을 요구한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수사 착수가 지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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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특정내용과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이 때문에 점주들은 용의자가 초범이거나 미성년자로 보일 경우 아예 신고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매장 입장에서는 소액 절도에 대응하기 위해 품을 들이는 것 자체가 더 손해일 수 있고, 곧바로 해결되기도 어렵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그냥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비교적 소액으로 창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최소 수천만원을 투입해야 하고, 입지가 좋지 않은 곳에 창업시 권리금은 물론 보증금까지도 날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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