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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쿠팡은 왜 로켓배송을 중단하겠다는 걸까[산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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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사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쿠팡 랭킹순’ 검색 순위를 조작하고, 후기 작성에 임직원을 동원한 쿠팡과 씨피엘비에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힌 13일 서울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차량이 주차돼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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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How did I ever live without Coupang?)” 고객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세상을 만들게 하는 것이 쿠팡의 목표라고 합니다. 정말 쿠팡이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쿠팡은 상품을 직매입해 자체 물류창고를 통해 ‘로켓배송’을 해주는 ‘배송 혁신’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비 없이 받을 수 있고, 늦은 밤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이면 배송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매달 기꺼이 월회비를 내는 유료가입자 1400만명을 유치했죠. 그런데 쿠팡이 최근 갑자기 “로켓배송이 중단될 수 있다”고 하자 소비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공정위 “쿠팡이 알고리즘 조작” vs 쿠팡 “상품 진열 막으면 로켓배송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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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에서 ‘생수’를 검색한 결과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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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쿠팡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검색창에 ‘생수’를 검색해볼까요. 현재 시각 제 검색 결과 최상단에는 ‘탐사수 무라벨’ 500㎖ 24개 묶음상품이 나타납니다. 2·4·7·8위 제품도 모두 ‘탐사’ 브랜드네요.

탐사는 쿠팡의 자체브랜드(PB) 상품입니다. 휴지나 물티슈 등 다른 상품을 검색해도 쿠팡 PB상품이 상단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쿠팡에 입점한 오픈마켓 제품보다 로켓배송 상품, 즉 쿠팡이 매입해두었다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상품이 검색 순위 상단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요.

이는 실제로 쿠팡 PB 생수를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서가 아니라, 쿠팡이 ‘알고리즘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검색 상단에 노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입니다. 쿠팡이 PB상품과 직매입 상품을 검색순위 상단에 올리기 위해 실제 검색 순위를 무시하고 알고리즘 마지막 단계에서 인위적으로 순위를 조정했다는 것이죠. 임직원들을 동원해 자사 PB상품에 유리한 구매 후기를 달게 한 점도 문제삼았습니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쿠팡과 쿠팡의 PB 전문 자회사 씨피엘비(CPLB)에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는 공정위가 유통업체에 부과한 과징금 액수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합니다. 그러자 쿠팡이 “공정위 제재대로라면 로켓배송이 중단될 수도 있다”며 강력 반발한 것입니다.

쿠팡이 공정위 제재 당일 배포한 입장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소 길지만 쿠팡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모두 옮겨보겠습니다.



“쿠팡은 다른 오픈마켓과 달리 매년 수십조원을 들여 로켓배송 상품을 직접 구매하여 빠르게 배송하고 무료 반품까지 보장해왔습니다. 고객들은 이러한 차별화된 로켓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쿠팡을 찾고, 쿠팡이 고객들에게 로켓배송 상품을 추천하는 것 역시 당연시해왔습니다.

로켓배송 상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판매할 수 없다면 모든 재고를 부담하는 쿠팡으로서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소비자들의 막대한 불편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공정위가 이러한 상품 추천 행위를 모두 금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로켓배송을 포함한 모든 직매입 서비스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쿠팡이 약속한 전 국민 100% 무료 배송을 위한 3조원 물류투자와 로켓배송 상품 구매를 위한 22조원 투자 역시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뜯어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쿠팡이 수십조원어치의 상품을 구입해 창고에 쌓아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고객들에게 배송하는 것이 바로 로켓배송 서비스죠. 쿠팡이 직매입한 상품이 잘 팔려나가지 않으면 쿠팡이 재고 등의 비용 부담을 모두 떠안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쿠팡으로서는 로켓배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검색 상단에 직매입 상품을 올려야 한다는 거죠.

쿠팡의 논리는 검색순위 상단에 직매입 상품을 올려놓는 것은 유통업체의 고유 권한인 ‘상품 진열’이라는 겁니다. 로켓배송 상품을 잘 팔리는 곳에 진열해야 로켓배송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고, 이걸 못하게 하면 결국 비용 부담이 커져서 로켓배송을 못하게 된다는 얘기죠.

소비자 측면에서도 쿠팡이 이런 식으로 상품을 진열하는 쪽이 이익이 된다는 게 쿠팡 주장입니다. 소비자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오픈마켓 상품이 아니라 로켓배송 상품을 사러 쿠팡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거죠. PB상품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합니다. PB상품은 모든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차별화 전략이고, 커클랜드 없는 코스트코나 노브랜드 없는 이마트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쿠팡도 자체 브랜드가 있고 그걸 잘 보이는 곳에 진열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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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배송 상품만 걸러서 볼 수 있는 쿠팡의 필터 기능.


쿠팡의 주장에 대해 공정위는 ‘쿠팡이 여론을 오도한다’는 입장입니다. 공정위는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임직원이 구매 후기를 써서 제재했는데 왜 로켓배송이나 일반적 상품 추천을 금지하는 것처럼 본질을 호도하느냐고 반박했습니다. 검색 순위를 조작하지 않더라도 검색 광고나 배너 광고, 검색 결과에 대한 필터 적용 등을 통해 로켓배송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줄 길이 충분히 있다는 거죠.

실제로 쿠팡에는 상품명을 검색하면 로켓배송 상품만 따로 보여주는 필터링 기능이 있습니다. 필터를 체크하면 검색 결과에서는 로켓배송 상품만 볼 수 있습니다. 동종업계에서도 갸우뚱합니다. PB상품을 노출하고 싶으면 브랜드관 등의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알고리즘을 조작해 검색 상단에 올리는 것은 도를 넘은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접했습니다.

그래서 로켓배송은 정말 중단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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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사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쿠팡 랭킹순’ 검색 순위를 조작하고, 후기 작성에 임직원을 동원한 쿠팡과 씨피엘비에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힌 13일 서울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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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연일 공정위 제재에 반박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공정위 결정 당일에는 입장자료를 2차례에 걸쳐 낸 데다 공정위 보도자료에 대한 상세 반박자료를 배포했고, 이후에도 ‘쿠팡 직원 리뷰 조작 없었다는 5대 핵심 증거’, ‘PB상품 노출 제재와 관련해 당사 입장’ 등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쿠팡의 모기업 쿠팡Inc는 지난 14일 “공정위가 쿠팡의 검색 순위가 기만적이며(deceptive) 한국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공시하기도 했습니다. 쿠팡Inc는 “‘검색 순위’는 한국과 전 세계 업계 관행이고 쿠팡은 자사 관행이 기만적이거나 한국법을 위반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공정위 결정에 대해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가장 큰 부분은 ‘로켓배송이 정말 중단될까’이겠죠. 취재하며 접촉한 e커머스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로켓배송 중단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쿠팡은 매출 90% 이상을 직매입 상품에서 올립니다. 유료회원 1400만명을 모은 기반도 로켓배송 서비스입니다. 로켓배송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국내 사업을 접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쿠팡이 예정된 3조원 물류투자와 22조원 상품구매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쿠팡은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직후 지난 20일로 예정됐던 부산 물류센터 기공식을 취소한다고 통보했습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참석해 축사를 할 예정이던 행사가 취소된 것을 가벼이 볼 일은 아니죠. 쿠팡이 투자 재검토에 대한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쿠팡이 부지 매입까지 끝낸 물류센터 건설을 엎어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동시에 나옵니다.

쿠팡이 실제로 물류나 직매입 투자를 줄인다면 최근 멤버십과 배송 강화에 나선 타 e커머스와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투자 축소가 회원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도 생길 수 있겠죠. 쿠팡은 최근 월회비를 4990원에서 7980원으로 인상했으며 기존 회원도 8월부터는 오른 회비를 내야 합니다. 회원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할 시기인데, 직매입 상품 규모를 줄이는 것이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려 대상일 것으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회비 인상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시기, 로켓배송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쿠팡의 ‘엄포’에 소비자 반응이 싸늘한 것도 회원 유지에는 악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왜 고객을 가지고 협박하느냐” 류의 글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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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 기자실에서 쿠팡과 씨피엘비에 대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결정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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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진행될 법적 절차를 지켜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쿠팡은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낼 계획입니다. 최근 공정위가 기업에 내린 처분이 행정소송에서 무효로 뒤집힌 경우가 여러 차례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쿠팡도 2021년 납품업체 갑질 혐의로 부과받은 과징금에 대해 최근 2심에서 무효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행정소송에서 쿠팡이 공정위의 논리를 얼마나 뒤집을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립니다. 공정위는 곧 검색 순위 조작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놓을 예정인데, 시정명령의 수위에 따라 쿠팡이 효력정지 가처분 등을 제기하며 법정 다툼을 벌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쿠팡의 앞길에는 ‘제재 리스크’가 줄줄이 놓여 있습니다. 공정위는 쿠팡이 고객들에게 와우멤버십 가격 인상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눈속임(다크패턴)이 있었는지, 하도급업체에 판촉비용을 전가한 일이 있는지 등을 조사 중입니다. 최근 참여연대 등은 쿠팡이 와우멤버십 회원들에게 쿠팡플레이 무료시청, 쿠팡이츠 무료배달 등의 서비스를 묶어 제공하는 것이 ‘끼워팔기’에 해당한다며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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