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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의·정, ‘의대 증원’ 이어 ‘간호법 제정’에 갈등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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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사 “업무 침해” vs 간호사 “환영”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4개월이 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의사·약사와 간호사들이 이견을 보여온 간호법 제정을 두고 갈등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간호법에는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공백을 메우고 있는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의 업무를 현실적으로 합법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의·정 갈등이 더 확산할 여지도 있는 셈이다.

세계일보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안 제정 촉구 집회에서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간호법을 즉각 통과시켜 달라”고 외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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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에 갈라진 의·약사와 간호사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여야는 간호사의 진료지원(PA) 업무를 제도화하는 간호법안을 잇따라 내놓았다. 국민의힘은 20일 ‘간호사 등에 관한법률 제정안’(간호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의사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전문 간호사뿐 아니라 일반 간호사도 일정 요건 아래 PA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더불어민주당도 19일 간호법안을 발의하고 20일 의원총회를 통해 간호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에 간호사단체는 환영의 뜻을 밝혔고, 의·약사단체가 “타 직능의 고유업무를 침범한다”며 반발하면서 보건·의료직능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숙원이었던 간호법안 발의를 두고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불안한 국민에게 의료 정상화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의사와 약사 단체는 간호사 업무 범위를 문제 삼아 즉각 간호법안 철회·수정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여야의 간호법안은 특정 직역의 권리와 이익만을 대변하는 간호사 특혜법”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특히 “간호법안은 전문간호사의 무면허·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헌법상 포괄 위임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전문간호사와 간호사에게 현행 의료법 체계를 벗어난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하게 하는, 국민 건강을 외면한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간호직역을 포함한 모든 보건의료 인력의 처우 개선이 필요한 것은 인지하고 있다”며 “소모적인 분쟁만 야기하는 간호법 논의를 중단하고, 보건의료 인력 모두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나서라”고 했다.

대한약사회는 “보건의료인 각자의 면허 체계 안에는 독자적인 업무 범위가 있다”며 “국민의힘 법안은 간호사가 진료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데 타 직능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어 또다시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약사회는 이어 “간호법은 간호 업무와 간호사 인력 지원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인데 타 직능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조문이 들어가는 것은 입법 과정을 저해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간호사법의 제정 의도가 다시 한번 보건의료계의 직능 갈등으로 퇴색되지 않고 국민 건강을 위한 법률이 되기 위해 국회에서 세심하게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세계일보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간호교육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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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공백, PA간호사로 막자”는데…

국회가 새 회기가 시작되자마자 간호사법을 잇따라 재발의한 것은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공백을 PA간호사로 메우고 있는 현 상황과 연관이 있다. 의료법상 간호사 업무로 규정되지 않은 일들을 시범사업 형태로 허용하면서 1만2700여명에 달하는 전공의들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이를 아예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임상전담 간호사’로 불리는 PA 간호사들은 병원 요구에 따라 수술장 보조, 검사시술 보조, 응급상황 시 보조 등 위법과 탈법의 경계선상에서 전공의 역할을 일부 대신해왔다. 법안이 통과되면 법적으로 인정받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더욱 명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의료업계에선 PA 간호사가 직능 간 갈등을 유발해 보건의료업계의 혼란을 키울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민단체 건강돌봄시민행동 등은 “현행 의료법·약사법·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과 상충해 대다수 직능과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료기사 업무인 검사, 의사 업무인 진단, 약사 업무인 투약 등 면허 업무 침해를 허용했는데 어떤 직능이 보고만 있겠느냐”며 “이러한 입법은 직능 간 갈등을 부추겨 오히려 간호법 제정을 위한 정상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민주당 간호법안의 간호사 업무 범위에서 ‘의료기사 업무’만 제외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민주당이 발의한 간호법안에는 간호사 업무로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가 명시됐으며 구체적인 업무의 범위·한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지만 ‘의료기사 등의 업무는 제외한다’고 돼 있다. 이 단체는 “간호사 업무 범위에서 의료기사 업무를 제외한다고만 규정하면, 약사나 다른 보건의료 인력의 업무는 제외되지 않는다는 말인가”라며 공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2월 주도한 간호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간호법 제정 추진 과정에서 간협 등 간호계는 의사·간호조무사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이뤄진 보건복지의료연대와 갈등을 빚은 결과다. 제정안에 담긴 ‘지역사회 간호’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는데,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가능하게 하고 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게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에 여야가 다시 발의한 간호법안에서는 ‘지역사회 간호’ 문구가 삭제됐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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