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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김병기 ‘필향만리’] 出辭氣 斯遠鄙倍矣 (출사기 사원비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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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임종이 가까운 증자를 노나라의 권신 맹경자(孟敬子=孟孫)가 문병하자, 증자가 말했다. “새도 죽을 때가 되면 울음이 슬퍼지고, 사람도 죽음에 이르면 말이 선해지는 법이라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어느 때보다도 선할 것이오. 잘 들어 두시오. 군자가 귀히 여겨야 할 도(道)는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소. 용모는 사납거나 거만하지 않아야 하며, 안색은 믿음이 절로 드러나도록 갖추고, 말은 내용이 사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어투나 어기도 비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외에 제기(祭器)를 다루는 등 소소한 일은 담당자에게 맡기면 됩니다.”

중앙일보

辭:말씀 사, 氣:기운 기, 遠:멀 원, 鄙:천할 비, 倍:배반할 배. 내놓는 말의 분위기는 비루함과 어긋남으로부터 멀어야. 32x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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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가 발터 벤야민(1892~ 1940)은 복제품이 아닌 원작 예술작품의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아우라(Aura)’라는 말로 표현했다. 군자는 군자다운 ‘아우라’를 갖춰야 한다는 게 증자의 뜻이리라.

벤야민은 복제로 인한 원작의 아우라가 붕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또 경계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는 ‘원작 군자’의 아우라를 갖춘 인물이 없는 것 같다. 용모와 행동은 복제된 착함만 흉내 내고, 말은 내용도 없이 비루하기 그지없는 가운데 소소한 업무에 매달려 말다툼만 일삼고 있다. 그대여! 비루한 말다툼을 청산하고 아우라를 보여주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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