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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자동 육아휴직 긍정적… 결혼 꺼리는 MZ세대 설득엔 한계"[저출생 대책 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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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결혼·출산 결심했거나
자녀 있는 가구 위한 대책 많아
'비혼' 청년엔 되레 반감 살수도
육휴 못쓰는 직종과 차별도 우려
'모성 페널티' 완전히 근절하고
아이 낳아도 삶의 질 유지돼야
구조적 문제 해결할 큰그림 필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산·육아휴직 통합신청제가 시작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명시적인 사업주의 승인이 있어야 했는데, 14일 이내 사업주가 서면으로 허용하지 않으면 근로자의 사용 신청이 승인된 것으로 간주한다. 사실상 자동 육아휴직으로, 근로자가 눈치 보지 않고 권리행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24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난 저출산 분야 전문가들은 육아휴직 급여·유연성 확대, 단기 육아휴직 도입, 출산·육아휴직 통합신청 등 일·가정 양립 제도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본지는 정책 당사자이기도 한 젊은 세대 전문가 4인과 만났다. 전체적으로 이번에 나온 대책들이 현실화될 수 있다면 출산율 반등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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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부모의 일·가정 양립을 강조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아빠 육아휴직 지원 확대와 중소기업 대상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제도 활용 지원 그리고 유보통합과 늘봄학교로 이어지는 사회적 교육·돌봄체계의 정착을 통한 일·가정 양립의 가능성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메시지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사회 분위기를 바꿔나갈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정 교수는 "결혼이나 임신·출산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선택을 할 수 있는 대책으로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당장의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대책으로서 의미는 있으나, 대한민국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감으로써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한국 사회 개혁 로드맵을 제시하는 후속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혼·출산을 망설이는 미혼 청년, MZ세대를 설득하기에는 아쉽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번 대책이 결혼과 출산을 이미 결정했거나, 자녀가 있는 가구에 도움이 되는 제도들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고 있는 세대에게는 아쉬운 대책으로 여겨질 것"이라며 "'뭐든 해줄 테니 제발 국가를 위해 출산해 달라'는 의도가 보이는 정책들은 오히려 MZ세대의 반감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나 특고 등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과 역차별 우려도 제기됐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연화, 분할사용, 급여상향 조정들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제도 사용을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근로자들에게는 공염불"이라며 "제도 사용으로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분명히 예상되는 근로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겠다는 내용이 빠져있고, 제도 적용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에게는 향후 고려해보겠다는 모호한 입장만을 남겼다"고 짚었다.

손윤희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조교수(전 보건복지부 청년보좌역)는 "육아휴직이라는 제도를 쓸 수 없거나 없는 직종의 경우는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차별이 생기고 그로 인한 사회적 격차가 유발될까 우려된다"며 "어떤 일을 하건, 얼마나 돈을 벌든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를 충분히 제공하는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정책이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이번 대책에서 아쉬운 점, 보완해야 할 부분은.

▲정재훈=주거 지원이 여전히 대출 지원 중심이다. 빚(대출금)을 내서 집을 사는 것 자체가 양육비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을 청년들은 잘 알고 있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임대주택 유형 다양화를 통한 '장기 임대 이후 소유 전환' 형태의 주거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허민숙=근로시간을 줄여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부분이 부족하다. 돌봄정책만 나열했을 뿐이다. 육아기 부모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출산율을 유지하는 국가들의 공통된 정책임을 상기해야 한다.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돌봄 제공자의 처우개선도 필요하다.

▲강민정=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다양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은 부족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출산과 경력 사이에서 고민한다. 남성들은 결혼과 자녀출산 후 생계 부담을 걱정한다. 이는 지역격차, 사교육 문제, 주거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 성평등 인식 등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의지는 분명히 강조돼야 한다.

―출산율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정재훈=결혼과 출산이 선택지가 되지 않는 이유의 큰 흐름은 비용 부담 그 자체보다는 낮은 삶의 만족도이다. 비용 부담 해소도 저출산 해결을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중요하다. 그러나 가족관계의 민주화 등 사회규범과 가치의 변화에 따른 여성의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남성의 부양부담 등이 줄어들지 않으면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허민숙='언젠가는 하겠다'는 발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정부 대책에 따라 혼인, 주거 마련, 출산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손윤희= MZ세대들이 받아온 양육환경과 교육수준 그리고 부모로부터의 기대나 살아온 삶이 현재 정책결정자가 경험한 것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기존의 정책평가 기준만이 아닌 획기적이고 새로운 정책을 통해 정부가 진심으로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할 필요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회·문화적 부분은.

▲허민숙='모성 페널티'가 완전히 근절된 근로환경이어야 여성들이 출산을 고려할 것이다. 여성에게만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문화적 시선과 압력이 지속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가족 구성의 다양성도 인정돼야 한다.

▲손윤희=출산과 양육, 또는 교육 과정에 노인들도 함께 참여하도록 해 기성세대의 소중한 과거 경험을 나누면서, 인구 문제에 대해 서로를 탓할 게 아니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강민정=이번에 발표된 대책뿐 아니라 아이부터 노인까지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들이 내 인생이 살 만하다고 생각되고, 지금은 어렵지만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내 가족을 꾸리고 자녀를 출산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꼭 담아야 할 대책은.

▲강민정=여성 고용 확대와 경력단절 예방, 유연한 근로문화 확산이다. 이는 합계출산율 1.3~1.7명을 유지하는 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노동정책이다. 여성들이 출산 후에도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야 출산을 선택할 것이며, 육아와 경제활동을 병행하려면 반드시 근로시간이 유연화돼야 한다. 특히 유자녀 남성 근로자에게도 확대돼야 한다.

▲손윤희=첫아이가 주는 행복을 경험한 청년들은 종종 둘째를 고민하지만 여러 걱정이 따른다고 말한다. 이러한 청년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허민숙=가정과 직장에서의 성차별 해소와 성평등 지향이 저출산 정부대책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여성들이 안전을 위협받는 환경에서 출산을 결심할 것이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의 안전은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모두 포괄한다.

imne@fnnews.com 홍예지 이보미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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