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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라인 앞에 놓인 예고된 험로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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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신주쿠에 위치한 라인 사무실 모습. 일본어판 라인-에이치알(HR) 블로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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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라인야후’ 관련 기사 건수가 5월13일 206건을 정점으로 급감해 6월23일엔 8건만 보인다. 라인야후 사태는 진정 기미일까? 아니다. 끝나기는커녕 더 꼬이고 꼬여 지리한 장기전이 될 공산이 커졌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6월21일치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제안보법의 산파역인 자민당의 실력자 아마리 아키라 경제안보추진본부장이 3~4월께 라인야후의 일본 쪽 파트너 소프트뱅크그룹의 손 마사요시 회장을 만나 네이버 쪽 지분 매입과 라인의 ‘모든 것의 일본화’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무성이 네이버 쪽에 이례적인 지분 매각 요구를 두차례 한 바로 그즈음, 아마리 본부장과 호흡을 맞춰 총무성도 소프트뱅크그룹의 미야카와 준이치 최고경영자(CEO)에게 같은 요구를 했다. 소프트뱅크그룹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올 줄 몰랐다며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기사의 행간에 묻어나는 이해관계자들의 전반적인 무능과 무도함 그리고 무책임에 놀랐고 이 기사를 소구하는 국내 사회와 언론의 둔감함에 더 놀랐다.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라인은 네이버-라인-야후-소프트뱅크로 연결된 일종의 글로벌가치사슬(GVC)이다. 아니 한·일 양국이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유사국이라 하니 일종의 신뢰가치사슬(TVC)인 셈이다. 그런데 라인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경제안보 차원에서 이조차 자기완결성을 지닌 국내가치사슬(DVC)로 바꾸려 개입했다. 이에 이 사안을 둘러싸고 복잡한 이해관계축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같이 보여준 무능, 무도함 그리고 무책임으로 인해 라인 앞에 험로가 예고된다.



먼저, 정부 대 기업 관계(일본 정부 대 소프트뱅크그룹, 한국 정부 대 네이버)상에 드러난 패착이다. 그동안 총무성은 라인야후의 자본관계 시정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한국 쪽의 반발에 직면해 발을 뺐다. 그러나 위 기사가 명징하게 드러낸 것은 총무성의 거짓이다. 더 충격인 것은 당 간부가 배후에서 불투명한 관행인 ‘행정지도’를 무기 삼아 신뢰가치사슬을 국내가치사슬로 바꾸라고 글로벌기업 경영자를 불러내 겁박한 점이다. ‘경제안보’를 위해? 무도하다 못해 직권남용 소지마저 있는 ‘경제적 강압’이다. 게다가 주무부처인 일본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달리 총무성은 네이버 쪽의 지분 매각 요구에 나섰다. 성청 간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없다. 총무성의 무리수에 한국에서 네이버의 보안 사고 자체가 묻혀버렸으니 네이버는 총무성에 고마워해야 하나. 사태가 이 지경이 됐으면 한국 정부는 부당한 경제적 강압을 행사한 일본 정부여당에 강력 항의해야 마땅하건만 네이버 뒤에 숨었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위 기사는 소프트뱅크그룹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 상충 여지도 들춰냈다. 의도한 듯 자국 정부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소프트뱅크의 속내는 뭘까. 사실 소프트뱅크는 회사법상 라인의 모회사로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쥐고 있어 네이버 지분의 추가 매입 유인이 크지 않다. 그동안 시스템 개발과 운용을 네이버 쪽에 과도히 의존해온 터라 단시일 내 기술 자립도 버거운 터다. 그래서일까. 소프트뱅크그룹은 추가 지분 매입 관련 질문에 말을 아낀다. 소프트뱅크그룹도 속내가 복잡하겠다. 모든 데이터센터를 자국 내 두는 것이 경제안보 측면에서 정답인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소프트뱅크그룹은 2011년 대지진 당시 데이터 백업을 위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세웠다. 당시 라인이 작동했던 이유는 데이터가 분산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은 흘려들을 게 아니다.



위 기사에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비정부·비기업 이해관계자인 양국 국민의 목소리가 한 방향으로만 치우친 점도 우려스럽다. 한국도 언제 터질지 모를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고려한다면 네이버 쪽 과실도 엄중히 물어야 했다. 그리고 차제에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지, 데이터와 플랫폼의 주권을 어떻게 보호할지로 사유를 확장해야 한다. ‘내가 하면 경제안보, 네가 하면 경제적 강압’이 아닌 조건 탐구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이런 담론은 데이터 보호주의, 네이버 구하기에 덮이고 말았다.



작금의 상황에 비춰 보건대 라인야후가 확고한 재발방지책만 세우면 될 문제는 아닐 개연성이 커졌다. 일본의 다음 카드는 경제안보정보보호법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지금 나서지 않는 한, 라인의 표류는 예고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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