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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얼굴 타서 신원 파악 안돼" 붕대 감은 채 장례식장 떠도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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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리튬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 희생자 23명의 시신 가운데 1명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로써 사망자 중 한국인 남성 3명의 신원이 파악된 가운데 나머지 유족들은 시신이 이송된 5개 장례식장과 사건 현장을 돌아다니며 숨진 가족을 찾고 있다.



사망자 23명…한국인 남성 3명 신원 확인



중앙일보

지난 24일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25일 경찰과 소방,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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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소방은 25일 현장에서 추가로 수습한 실종자 시신 1구가 한국 국적의 김모(47)씨라고 밝혔다. 24일 처음 신원이 확인된 김모(52)씨와 이날 앞서 파악한 중국 동포 출신으로 귀화한 이모(46)씨에 이어 지금까지 3명의 신원이 확인된 셈이다. 사망자는 전날 실종자 시신을 찾으면서 모두 23명으로 늘었다. 국적은 한국인이 5명, 중국 국적이 17명, 라오스 국적이 1명이다.

이씨의 경우 전날 소사체로 수습된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파악했다. 이씨의 경우 비교적 지문이 온전히 남아있어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고 한다. 나머지 시신은 성별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속옷이나 머리카락 등 일부 단서로 성별을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사망자의 유전자(DNA)를 유족과 대조해 신원을 특정할 계획이다.



“우리 딸 목걸이만 보여달라”…장례식장·경찰서서 발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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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씨가 25일 오후 사건 현장을 찾아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이날 오전 ″목걸이만 확인해달라″며 경기도 화성시 함백산장례식장을 찾았으나 발걸음을 돌렸다. 손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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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은 5개 장례식장과 경찰서, 참사 현장인 아리셀 공장으로 흩어져 가족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50분쯤에는 60대 남성 채모씨가 “우리 딸 목걸이를 확인해야겠다”며 함백산추모공원으로 찾아왔다. 채씨는 “차량이 회사에 주차돼 있으니 차 키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끝내 발걸음을 돌렸다. 추모공원 관계자는 “소지품을 포함해 모든 게 소실된 상황”이라며 “우선 DNA를 채취하셔야 한다고 화성서부경찰서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이날 오후 2시쯤 사건 현장에 주차된 딸의 승용차를 찾아 유품이 된 지갑과 여권 등을 확인한 뒤 차를 견인해갔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지 15년차인 채씨의 딸은 올해 39세로, 오는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아버지인 채씨는 한국으로 귀화했고, 딸은 취업 비자를 받아 아리셀에서 1년 반동안 일했다고 한다.

채씨는 “이틀 전에도 화재가 발생해 직원이 화상을 입었다고 해서 조심하라고 했다”며 “직원이 소화기로 불을 껐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배터리가 계단 근처에 놓여있었다는 건 뉴스를 보고 알았다. 직원들이 대피할 곳을 마련해줘야지 앉아서 죽게 하는 게 맞나”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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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씨가 25일 오후 화재 현장을 찾아 주차돼 있는 딸의 차량을 견인하고 있다. 강제 개방한 차량에서는 여권, 지갑과 함께 뜯지 않은 담배 두 갑과 천하장사 소시지가 나왔다. 손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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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대조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일이 걸린다는 소식을 들은 유가족들은 경찰서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화성서부경찰서 본관을 찾은 한 유가족은 “시신 수습한 분들 DNA 검사는 다 끝난 건가. 이름은 나왔나”라고 울부짖었다. 경찰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절차를 설명하자 “오늘 해주시는 건가. 그걸 빨리 해줘야지 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30대 여성 이씨의 사촌오빠도 화성서부서를 찾았다. 그는 “(이씨) 신랑이 오늘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먹어서 밥 먹으라고 보냈다”며 “이제 결혼한 지 몇 년 됐다고 밥이 넘어가겠나. 결혼한지 이제 5년”이라며 눈물을 삼켰다. 그는 “(이씨가) 성인이 되고 F-4(재외동포)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며 “일도 하고 한국 산다고 왔는데 죽으려고 온 게 됐다”고 말했다.



갈 곳 잃은 유족…5개 장례식장과 현장으로 다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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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일차전지 제조 업체 화재 사고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이중 6명이 안치된 화성 소재 송산장례문화원에서 빈소가 차려지지 못한 채 비어 있다. 최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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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적의 40대 남성 A씨 역시 24일 오후 8시 30분쯤 송산장례문화원으로 달려와 “어디 가야 누나를 볼 수 있나”라며 두리번거렸다. A씨의 사촌누나 2명은 몇 개월 전부터 아리셀에서 함께 일해왔다고 한다. 그는 “누나 둘 다 전화가 꺼진 상태다. 살아 있으면 연락이 왔을 것 아닌가”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함께 온 A씨의 지인은 “119에 직접 연락해서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물어봤다”며 “가족을 다 동원해서 찾으러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A씨 역시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라오스 국적의 사망자 쑥 싸완 말라팁(32)의 남편 이모(51)씨는 같은 날 오후 11시 20분쯤 머리에 흰 붕대를 감은 채 화성중앙종합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지난 19일 뇌혈관 수술을 받고 이날 퇴원하자마자 충북 괴산에서 급히 차를 몰고 온 그는 “생존한 라오스 동료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서 왔는데 얼굴이 타서 신원 파악이 전혀 안 된다고 하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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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10시쯤 경기도 화성시 일차전지 공장 화재 현장을 찾은 유가족들이 경찰 통제선 앞에서 주저앉아 목놓아 울고 있다. 이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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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유족은 25일 오전 10시쯤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화재 참사 현장을 찾아 울음을 터뜨렸다. 검은 옷을 입은 50·60대 여성들은 경찰 통제선이 둘러쳐진 현장 앞에 주저앉아 “어떡해, 어떻게 해야 돼”라며 오열했다. 서로 끌어안고 사망자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외치기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망자 23명 중 전날 수습한 22명에 대한 부검을 이날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는 동시에 신원확인 작업에 필요한 DNA를 채취해 가족의 DNA와 비교할 예정이다.

이아미·박종서·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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