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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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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유족·노동단체 “철저한 원인 규명을”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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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청년 노동자 A씨가 전북 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 내 전주페이퍼 공장 3층 설비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은 휴일인 이달 16일 오전 9시15분쯤. 공장 작업반장은 A씨에 걸었던 전화가 연결이 안 되자 직접 작업 현장에 찾아가 이런 그의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작업반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이런 상황을 주변 동료들에게 알렸다. 또 동료 직원들과 함께 119가 도착하기 전까지 구급대원의 지시대로 심장박동 제세동기 패치를 A씨의 가슴에 부착해 응급조치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A씨는 119 구급대의 응급조치를 받으며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작업장에 투입된 지 1시간여, 동료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지 30분여 만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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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전북 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 내 전주페이퍼 공장 정문 앞에서 19세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합동분향소를 설치한 뒤 추모하고 있다. 전주=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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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실습한 제지회사, 정규직 취업 6개월 만에 ‘주검으로’

A씨는 전남 순천시 한 특성화고교 3학년이던 지난해 이곳 제지 공장에서 3개월간 현장실습을 했다. 그는 올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돼 제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폐수 설비 등을 점검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어엿한 회사원이 된 그는 수첩에 올해 목표와 자기 계발 계획 등을 일기장처럼 적어 가며 당찬 각오를 다졌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성실한 삶을 살고자 한 의지를 엿보게 했다.

수첩에는 그가 올해 목표한 다양한 다짐이 적혀 있었다.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운동하기’ 등이 그것이다. 또 인생 계획으로 ‘다른 언어 공부하기’, ‘살 빼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편집 기술 배우기’, ‘카메라 찍는 구도 배우기’, ‘악기·경제에 대해 공부하기’ 등도 담겨 있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국내 굴지의 제지 회사에 취업한 아들의 모습에 누구보다 기뻐했을 그의 가족과 나눴던 이야기들도 눈에 띄었다.

자신이 근무 중인 제지회사 업무와 관련한 내용도 메모 형식으로 적혀 있었다. 펄프 종류와 약품 등에 관한 내용은 물론 3~6개월 안에 모든 설비를 공부하고, 자신이 일하는 파트에서 에이스가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와 포부도 기록돼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 20여 시간이 지난 17일 오후 5시쯤 전북경찰이 안전보건공단 전북본부와 함께 현장을 찾아 초동 조사에 착수했다.

먼저 작업장 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4조 3교대로 근무하던 A씨는 사고 당일 오전 8시에 출근했다. 이어 제지 제조와 관련한 설비를 가동하기 전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순찰 현장으로 이동한 모습이 포착됐다. 사고가 발생하기 30여분 전까지만 해도 함께 근무 중인 동료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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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6일 전북 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 내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설비를 점검하다 갑자기 숨진 19세 노동자의 수첩. 전주=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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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노동시민사회단체 “사측이 사고 현장 말끔히 청소”, 초동 조사도 ‘미심쩍’

유족과 민주노총 전북본부 전북지역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진보 정당 등은 이달 20일부터 고용노동부 전주지청과 전북도청 앞, 제지회사 정문 앞 등에서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A씨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또 사측의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위반 사항 확인 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등을 함께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작업 현장에서 황화수소 누출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을 주장하며 사고 발생 이후 회사 측의 행동에 의혹을 제기했다. 사고 발생 6일이 지난 22일 오후 1시쯤 노동부가 사고 현장을 대상으로 작업 환경을 측정할 예정이었지만, 사측은 측정 하루 전날 저녁 사고 발생 현장의 탱크와 배관 등을 말끔히 청소했다는 것이다. 젊은 노동자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현장 보존이 필수이지만, 사고 원인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작업 당시 ‘2인 1조’ 근무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5일 오전 사고 현장 회사 정문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A씨의 어머니는 “여전히 믿기지 않은 아들의 죽음 앞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일찍 가려고 엄아에게 그토록 많은 사랑을 주었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는 “한번도 엄마 걱정을 시키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제 할 일을 했던 아들이었다”며 “그토록 하고 싶은 계획과 바람을 해보지도 못하고 억욱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아들같은 자식들이 공장 안에 많은 만큼 하루 빨리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 편히 보내주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기자 회견 뒤 유족은 노동시민산회단체와 함께 현장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하고, A씨의 사망 원인이 명확히 규명될 때까지 무기한 농성에 돌입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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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전북 전주시 팔복동 산업단지 내 전주페이퍼 공장 정문 앞에서 19세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주=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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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사고 다음날 측정한 복합가스 0%, 사고 원인 아냐”

하지만, 회사 측은 사고 발생 다음날 경찰과 안전보건공단의 합동 초동 조사 당시 회사가 자체 보유 중인 복합가스 측정기로 사고 장소 주변과 원료 저장시설 내부 2.5m 지점 등을 측정한 결과 산소농도는 20.9%, 유해가스는 0%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환경보건공단이 사고 발생 이틀 뒤인 18일 오후 4시50분쯤 재차 사고 현장을 찾아 회사가 측정한 동일한 장소에서 복합가스를 측정했으나, 결과는 전날 사측이 측정한 결과와 동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지 회사 측이 질식사고 원인이 유해가스가 아니라 당사자의 ‘건강상의 문제’라는 주장을 펴는 이유다.

하지만, A군은 입사 당시 회사에 제출한 건강진단서에는 지병 등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페이퍼 측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었고, 당시 설비 이상이 아니라 가동전 이상 유뮤를 확인하기 위한 단순한 순찰 중이었기에 보호장구 착용과 2인 1조 작업이 필요치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사고 이후 대표이사 등이 고인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유족 측을 만나 위로했다”며 “고인에 대한 사후 조사와 경찰, 노동부의 정밀조사 등에 성심성의껏 협조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성실히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고인에 대한 부검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과는 이번 주중 나올 예정이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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