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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피해자 측 진술에 의존한 진단서만으로 상해 인정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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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가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상 혐의

벌금 400만원 선고한 1심 파기하고

무죄 선고한 2심 확정돼

교통사고를 당한 초등학생 피해자 측의 진술에 따라 작성된 상해진단서만을 근거로 치상 혐의 유죄를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상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의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아시아경제

서울 서초구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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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특정범죄가중법위반(어린이보호구역치상)죄에서 상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22년 12월 2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에서 자신의 승용차로 신호를 위반해 주행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 A군(당시 9세)을 차량 앞 범퍼 부분으로 충격해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정범죄가중법 제5조의13(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은 자동차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할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재판에서 김씨는 자신의 차량으로 A군을 충격하지 않았고, 설사 약간의 접촉이 있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 A군이 상해를 입은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살짝 부딪쳤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상해를 입을 상황은 아니었다는 취지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 같은 김씨의 주장을 배척하고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상해진단서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상해죄의 피해자가 제출하는 상해진단서는 일반적으로 의사가 당해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상해의 원인을 파악한 후 의학적 전문지식을 동원해 관찰·판단한 상해의 부위와 정도 등을 기재한 것으로서 거기에 기재된 상해가 곧 피고인의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가 되기에 부족한 것이지만, 그 상해에 대한 진단일자 및 상해진단서 작성일자가 상해 발생시점과 시간상으로 근접하고 상해진단서 발급 경위에 특별히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으며 거기에 기재된 상해 부위와 정도가 피해자가 주장하는 상해의 원인 내지 경위와 일치하는 경우에는, 그 무렵 피해자가 제3자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으로 달리 상해를 입을 만한 정황이 발견되거나 의사가 허위로 진단서를 작성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상해진단서는 피해자의 진술과 더불어 피고인의 상해 사실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되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그 증명력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위와 같은 법리는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진단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전제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토대로 ▲피해자가 피고인의 차량에 부딪히고, 피해자가 넘어지지는 않았으나 이로 인해 피해자의 몸이 흔들리는 장면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점 ▲피고인도 피해자와의 충돌을 인지하고 즉시 정차한 후 피해자에게 "괜찮냐"고 물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는 사고 직후 좌측 허리, 목, 어깨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며 정형외과에 방문해 진찰을 받았던 점 ▲피해자는 만 9세의 어린아이로 성인과 달리 비교적 작은 힘에도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점 등을 지적하며 "비록 피해자가 쓰러질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운행하던 차량과 피해자가 충돌한 사실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받은 충격도 무시할 정도의 경미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A군이 사고 당일 이외에 추가적인 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적 의미의 상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출발하던 차량에 뛰어가던 피해자가 부딪힌 사고일뿐만 아니라, 피해자는 체구가 작은 만 9세의 어린 아이로 비교적 적은 충격에도 쉽게 다칠 수 있다고 보이는 점, 실제로 피해자는 사고 당일 병원을 방문해 좌측 허리, 목, 어깨 부위의 통증을 호소했고, 이를 살펴본 의사는 치료기간을 2주 정도로 판단한 점, 피해자가 진단받은 염좌 및 긴장은 인대 건(힘줄) 근육 등의 조직이 압력·장력 등의 충격을 받아 미세한 파열이 일어나거나 경련 기능 손실 등의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설사 피해자가 병원에 서 추가적인 치료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를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1심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상해진단서의 증명력 판단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형사사건에서 상해진단서는 피해자의 진술과 함께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상해 사실의 존재 및 인과관계 역시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상해진단서의 객관성과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증명력을 판단하는 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상해진단서가 주로 통증이 있다는 피해자의 주관적인 호소 등에 의존해 의학적인 가능성만으로 발급된 때에는 진단 일자 및 진단서 작성일자가 상해 발생 시점과 시간상으로 근접하고 상해진단서 발급 경위에 특별히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은 없는지, 상해진단서에 기재된 상해 부위 및 정도가 피해자가 주장하는 상해의 원인 내지 경위와 일치하는지, 피해자가 호소하는 불편이 기왕에 존재하던 신체 이상과 무관한 새로운 원인으로 생겼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사가 상해진단서를 발급한 근거 등을 두루 살피는 외에도 피해자가 상해 사건 이후 진료를 받은 시점, 진료를 받게 된 동기와 경위, 그 이후의 진료 경과 등을 면밀히 살펴 논리와 경험법칙에 따라 증명력을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재판부는 "상해죄의 상해는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피고인이 운전하는 차량과 의 충돌로 인해 신체의 완전성이 훼손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가 초래됐다고 보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해자가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해 상해를 입은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재판부는 ▲상해진단서상 주상병(가장 중요한 진단명)인 '요추 및 골반의 기타 및 상세불명 부분의 염좌 및 긴장'이나 부상병인 '어깨관절의 염좌 및 긴장'이라는 질병은 최종판단이 아닌 임상적 추정으로, A군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그 원인이라는 취지의 A군 보호자의 진술에 의거해 작성된 점 ▲사고 CCTV 영상을 보면 A군은 차량 앞 범퍼와 허리 아래 부분을 살짝 접촉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해진단서를 작성한 의사의 사실조회 회신에 따르면 '당시 A군은 좌측 허리, 목, 어깨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고 기재, 그 상해 부위가 허리 위 상체까지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는데 적어도 어깨관절 부분은 이 사건 교통사고와 직접 연관이 없어 보이는 점을 지적했다.

이 밖에 재판부는 ▲A군의 아버지가 작성한 진술서에 따르면 '당시 A군은 사고 사실을 알리면서 딱히 아프다고 하지 않았지만, 부모 입장에서 교통사고의 특성상 엑스레이는 당연히 찍어서 확인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기재한 것에 비춰 볼 때 사고 직후 피해자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향후 있을지 모르는 후유증 등을 고려해 다소 폭넓은 관점에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는 점 사고 당일 A군의 아버지가 A군을 관찰했을 때에도 외관상 멍이 들거나 붓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 ▲A군이 이 사건 교통사고 발생 당일 의사로부터 상해 진단을 받은 이후 주사나 약물·물리치료 등을 받은 적이 없고, 진단을 내린 병원이나 그 밖의 의료기관을 방문해 재진을 받은 적도 없는 점 ▲CCTV 영상에 의하면 A군은 차량과 접촉한 직후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 인도로 다시 걸어가는 장면이 확인되고, 사고 후 A군의 걸음걸이 등 행동을 보더라도 절뚝이거나 상해 부위를 어루만지는 등의 행위를 한 바 없는 점 등도 상해를 인정할 수 없는 근거로 들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상해진단서에 의하면 피해자가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해 입은 상해와 관련해 2주간 지속추시를 요한다고 기재돼 있음에도 피해자가 딱히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았고, 실제로 피해자는 이 사건 교통사고 이후 결석하지 않고 등교해 수업을 듣는 등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이 평소와 같이 생활했던 것으로 보여, 피해자가 설령 이 사건 교통사고로 인해 어떠한 상처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정도에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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