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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정치가 감정을 만날 때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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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 몰려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0년 대선 결과에 항의하며 의사당 난입을 시도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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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치에 대한 분석 개념으로 감정이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권력이나, 경쟁하는 이익의 관점이 아닌 감정이 정치분석에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다. 촛불집회에 연인원 1,700만 명의 군중이 모인 것이나, 미국 의사당 난입사건 등을 설명할 때 많이 등장했다. 오늘날 정치양극화에도 감정요인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정치 엘리트 집단에서 시작해 일반 대중으로 전이되며 상대집단에 대한 적대 감정이 심리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정치적 언어로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감정을 동반한 정서적 양극화는 맹목성과 극단성을 내포하는데, 배제와 혐오를 통한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해 반지성주의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랜 동안 '감정의 정치'가 작동하는 환경과 구조를 구축해 왔다. 첫째, 선거에서 승자독식의 결과를 조장하는 다수제 선거제도로 불균형적 대표성을 받은 정당이 제로섬적 인식을 키우며 양극화를 심화한다. 둘째, 식민지와 분단의 경험으로 형성된 사회적 균열, 즉 친일-반일, 반공-친북 등의 이분법적 언어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시도가 오래 지속돼 왔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퇴행적 정치심리를 동원하려는 시도가 지속돼 왔다. 셋째, 분열적이고 양극화된 동원능력을 갖춘 양대 정당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으며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체계로 수렴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에 감정이 결부되면 내집단에 대해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반면 외집단은 적대시하는 경향이 강화된다. 정치행위자들은 분노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분열적 담론을 활용하고, 이슈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사회균열을 '우리 대 저들'의 대립구도로 양극화시킨다. 결과적으로 반대 정파 구성원에 대한 부정적 감정, 즉 서로를 경멸하고 두려움과 혐오의 감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특정 사안에 대한 개인의 분노가 집합적 분노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온라인 공론장에서의 감정은 더욱 광기를 부리게 된다. 나아가 반대집단을 타도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민주적 제도와 법치를 훼손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취하게 된다.

정당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책정당 부재, 경선방식 설계의 문제 등으로 특정 인물에 대한 추종과 그를 통한 정치적 열망의 구현이라는 팬덤 정치적 요소가 강화된다. 팬덤 지도자의 당선이나 집권에 방해가 되는 세력이나 인물을 적으로 돌리는 감정의 정치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당이나 정치엘리트 등 정치 공급자들은 수요자를 적대의 장으로 호출해 감정의 정치를 조장하게 된다.

우리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고 회복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책임 메커니즘의 확립이 중요하다. 정치권력이 감정의 정치로 흐르지 않도록 대통령과 의회권력의 균형과, 이를 위한 사법부의 견제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제도적 책임 메커니즘이 작동돼야 한다. 나아가 정치경쟁의 틀에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가급적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다수제 모델에서 합의제 모델로의 전환을 위한 선거, 정당제도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끝으로 우리 시민사회와 정당이 사회적 연대를 위한 집단적 자기성찰 노력을 보여야 한다.
한국일보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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