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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타이레놀 파는 '한약사 개업 약국', 불법일까 합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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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약국 사태, 약사-한약사 간 갈등으로
약사법 놓고 양측 자신들에게 유리한 해석
'한약사 개설 약국' 최근 5년 꾸준히 증가세
"법 개정으로 면허 범위 등 기준 마련 필요"
한국일보

25일 서울 금천구 A약국이 사람들도 가득 차 있다. 이 약국은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으로 최근 약사 단체가 이곳 앞에서 반발 시위를 하는 등 논란이 됐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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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건강기능식품은 이쪽에 있어요."

25일 낮 서울 금천구 A약국은 10여 명의 노인들로 붐볐다. 이 약국엔 익숙한 이름의 비타민 제품과 감기약, 건강기능식품 등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흰 가운 차림의 약사들은 노인들에게 제품 복용법 등을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약사가 아닌 한약사다. 한약사 B씨가 이달 A약국을 개업했고, 근무자들도 다 한약사다.

"이 약국은 한약사가 운영하는 곳으로 약국이 아니라 한약국이어야 합니다."

A약국 바로 앞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피켓을 든 약사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외쳤다. 서울시약사회 소속 약사들로 "한약사가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일반의약품을 취급하고 있다"며 매일 이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이에 B씨는 최근 서울시약사회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금천경찰서에 고소했다.

약사-한약사 법 해석 차이


한약사가 개업한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판매해도 되나. 한약사와 약사들이 충돌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일반의약품은 안전성이 뛰어나 의사 처방전 없이도 구매 가능한 약이다. 일반의약품 중에서도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안정상비 의약품은 편의점, 특수지역 내 지정된 장소, 보건진료소에서도 살 수 있다.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두고 약사와 한약사는 약사법 조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있다.

먼저 약사들은 약사법 2조에 '한약사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藥事) 업무를 담당하는 자'라고 명시돼 있으므로 약대에 입학해 약사면허증을 취득하지 않은 한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건 면허범위를 초과한 행위라고 말한다. 권영희 서울시약사회 회장은 "약사와 한약사는 대학 교육과정이 6년제와 4년제로 다르다. 한약이 아닌 약물과 관련한 지식 습득 정도도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일반의약품이라도 오남용 방지를 위해 구매 개수 등을 제한하는 등 극히 예외적으로만 편의점 판매가 허용됐는데, 한약사가 아무 제한 없이 판매하는 건 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약사들은 '약국은 약사와 한약사만 개설할 수 있다'는 약사법 20조와 '약국 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이 없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약사법 50조를 앞세운다. 법에 따라 한약사도 약국 개설이 가능한 만큼 일반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B씨는 "한약사도 학부 때 약물학, 약제학 등 의약품 관련 과목을 이수한다. 한약사 국가고시 과목에도 약사법과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등이 포함돼 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편의점에서도 판매가 허용되는 안전상비 의약품을 비롯해 그 외 일반의약품을 한약사들이 파는 건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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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한약사 약국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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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와 한약사 간 논쟁이 심화되는 사이 한약사가 차린 약국은 빠른 추세로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약사 개설 약국은 지난해 기준 전국 838곳으로 2019년(701명) 대비 약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약국 수가 2만2,493명에서 2만4,707명으로 약 10% 증가한 것과 비교해 증가세가 가파르다. 한약사 개설 약국들은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휴게소나 지하철 역사 안 등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 반응도 엇갈린다. 이날 A약국 앞에서 만난 70대 박모씨는 "시민 입장에선 약국이 많아지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했지만 황모(57)씨는 "일반의약품이더라도 한약사가 양약까지 범위를 침범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당국 "관계 부처 지속 협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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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A약국 앞에서 서울시약사회 소속 약사들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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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도 다른 판단을 내렸다. 공정위는 2016년 한약사에게 일반의약품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제약회사를 압박한 약사 단체에게 과징금을 부여했다. 그러나 2020년 모 제약회사가 한약사 개설 약국 일부에 일반의약품 공급을 거절한 것에 대해 한약사 두 명이 고발했지만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관련법을 개정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약사랑 한약사가 각각의 면허 범위 내에서 의약품을 조제하고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현장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만큼 관계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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