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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후쿠시마 괴담에 억울했다” 염전서 삽질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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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전남 신안 염전 체험

조선일보

염전 체험하는 조유미 기자.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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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에 소금꽃이 피었다. 꽃처럼 곱게 엉긴 소금 결정은 짝 찾듯 물 위를 동동 떠다녔다. 살얼음처럼 바닥을 뒤덮은 하얀 소금 알갱이를 긁어낼 때마다 뒤따라오는 간수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2시간 넘게 이 작업을 하고 있는 내 눈동자도 심란하게. 지친다. 노동요라도 부르고 싶다. ‘나는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나는 절여진 김장배추처럼 땀에 전 지 오래다. ‘잠깐, 부족해진 염분을 이 소금으로 보충하면?’ 조금 덜어 먹어봤다. 아직은 간수가 덜 빠져 쓴맛이 있었지만 뒷맛은 짭조름 감칠맛 나는 천일염. 전남 신안군의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치솟은 며칠 전 초여름이었다.

장마철이 되면 전국 각지의 염전은 하늘과 ‘눈치 싸움’을 하느라 분주하다. 연일 호우가 퍼부을 것이냐, 마른장마일 것이냐. 염전 입장에선 차라리 매일 비가 오는 게 낫다. 비가 내리면 맘 놓고 작업을 쉴 수 있지만, 하늘이 비를 뿌릴 듯 말 듯 애를 태우면 ‘이거 작업을 해, 말아?’ 고민에 빠지기 때문이다. 중부지방에 본격적인 장마가 찾아오기 전, 염전에 다녀왔다. 각오하고 갔지만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같이 ‘짠맛’을 느껴보시길.

◇태양과의 한판 전쟁

오후 1시, 신안 증도면의 태평염전에서는 채염(採鹽)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6~8%를 담당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염전이다. 전체 면적 140만평(약 462만8000㎡)으로 여의도 약 2배 크기. 날이 좋으면, 하루 평균 20㎏짜리 소금 8000포~1만포를 생산한다. 지난해 기준 생산량은 1만8000t. 그야말로 ‘하늘이 허락한 시간’에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소금 채취가 가능한 날은 1년에 100일 안팎이다.

16년째 천일염 생산에 몸담고 있는 ‘소금 장인’ 박연수(61)씨는 “내일 2~3㎜의 비 예보가 있어 빨리 작업을 끝내야 한다”며 “오늘 볕이 뜨겁고 바람이 선선해 소금이 영글기 딱 좋다”고 했다. 천일염은 비가 내리면 생산이 어렵다. 이맘때 통상 25도 이상의 수온, 24도의 염도에서 3~4일이면 소금 결정이 맺혀 올라오는데 비가 내리면 염전의 농도가 낮아진다. 그럼 다시 농도부터 맞추는 작업(최장 25일)을 시작해야 한다.

우선 염전에 송골송골 맺힌 소금 결정을 밀대처럼 생긴 긁개로 긁어내기로 했다. 긁개 너비 180㎝짜리를 ‘대파’, 50㎝짜리를 ‘소파’라고 부른다. 야심 차게 대파를 집어들고 설명을 듣는데, 가만히 있어도 뜨겁다. 모자와 팔 토시, 마스크까지 그야말로 완전 무장을 했는데도. 숨이 막혀 잠시 마스크를 내렸다. 이번엔 얼굴이 뜨겁다. 소금물에 태양빛이 반사됐기 때문. 나는 지금부터, 위아래로 공격을 퍼붓는 자외선과 전쟁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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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체험하는 조유미기자.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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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소금 장수?

전쟁 시작이다, 덤벼라 태양아! 내게는 1만평(약 3만3000㎡)의 정사각형 염전 한 판이 맡겨졌다. 여기서 소금 약 1.5t이 생산된다. 긁개를 앞으로 밀며 바닥에 맺힌 소금을 긁어낼 때마다 무게감이 전해졌다. 소금이 간수를 흠뻑 머금어 2~3배 무겁다. 얼마 밀지도 않았는데 ‘소금 장벽’에 막힌 기분.

왜, 그 ‘당나귀와 소금 장수 우화’ 들어보셨는지. 소금 짐을 지기 싫었던 당나귀가 연달아 여울에 넘어지며 소금을 녹이자, 화가 난 주인이 소금 대신 솜을 지게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꾀를 부린 당나귀는 또다시 물에 빠졌고,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솜을 지고 가야만 했다. 나는 물에 젖은 솜을 밀고 있는 것 같다. 당나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조롱해서 미안해, 당나귀야.

힘 줘 밀다 보니 장화가 미끄러진다. 박씨는 “욕심내서 많이 미는 게 능사가 아니다. 위에서부터 살살 긁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살살 긁었다. 소금 더미가 홍해 갈라지듯 긁개 옆으로 스르르 빠져나갔다. 새어 나간 소금을 다시 밀어야 했다. 미는 보람이 없었다. 이걸 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실력이라고. 경력 4년 차인 조모(63)씨가 “채염 작업이 가장 힘들다”며 “얼마나 해야 요령이 생기는지 대중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낮에 작업하면 워낙 고생이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주로 이른 새벽이나 해가 진 이후 3~4시간에 걸쳐 채염을 한다. 뙤약볕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후쿠시마 괴담은 흘러흘러

“스무디 먹고 합시다.” 새참 시간,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살얼음처럼 생긴 소금 말고 진짜 살얼음 낀 음료수가 배달 왔다. 일용직 노동자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오딜호노브(22)씨에게 “힘들지 않으냐” 묻자 “아직은 할 만해요. 스무디 맛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온 지 2년째로 목포에서 살고 있다. 간혹 일손이 달릴 때 그와 같은 일용직을 쓴다. 일당은 8시간에 15만원. 양파 수확철인 이맘때는 노동력이 양파밭으로 빠져 일손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소금 값은 정점을 찍었다. 후쿠시마 괴담발(發) 사재기에 더해 작년 초여름부터 많은 비가 퍼부어 생산도 줄었기 때문이다. 근 3년 5㎏당 소매가 1만5000원(굵은 소금 기준) 가까이 올랐던 천일염 값은 올해 1만원 초반대가 됐다. 염전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원자인 삼중수소는 물과 결합해 ‘삼중수소수’로 존재하는데, 삼중수소수는 햇빛을 받으면 증발하기 때문에 소금에 남을 일이 없다는 것이 과학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잠시 숨을 고르던 장인 박씨가 “결정 굵기를 보니 오늘 염도는 28도 정도”라고 했다. 이걸 딱 보면 안다고? 기상청 공무원 출신인 그는 명예퇴직 후 이 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난 날씨 전문가이니 심심풀이로 해 봐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하면 할수록 도통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이 채염이었다. 박씨는 “바닷물이 증발되고 남은 게 소금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며 “근데 태양광, 구름, 바람, 염도와 수온 등 고려할 것이 너무 많더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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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겁다. 채취한 소금을 수레에 싣고 창고로 이동하는 모습.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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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은 삽질이 되어

공든 소금탑이 무너졌다. 긁어낸 소금을 수레로 옮기기 위해 한쪽 구석에 삽으로 쌓던 참이었다. 지금까지의 삽질이 그냥 삽질이 됐구나. 삽 한 술도 무거워 반 술씩 올린 건데. 한 직원이 스치듯 “삽을 이상하게 잡으니까 힘들지”라고 했다. 군미필자는 송구했다.

이렇게 채염한 소금은 소금 창고로 향한다. 수레를 옮겨보기로 했다. 염전 부지에는 전날 저녁 채염한 소금 수레 십여 대가 운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금 쌓인 수레의 무게는 대략 600㎏. 낑낑거리며 밀었다. 다행히 땅에는 창고까지 이어지는 레일이 깔려 있었다.

과거에는 채염한 소금을 모두 삽으로 수레에 퍼 담았지만, 최근에는 소금을 퍼담는 자동화 기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만 소금을 1m 너비로 고르게 일렬로 퍼 놔야 기계가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고된 건 비슷하다고. 소금을 소금 창고에 옮기면 작업은 끝난다. 소금들은 앞으로 평균 1~3년 간수 빼는 작업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제가 작업한 양이 얼마나 될까요” 묻자, “600㎏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1t도 못 했구나, 수레 하나 정도 한 셈이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새삼 ‘짠맛’에 감사했다. 이날 밥 반찬으로 나온 젓갈을 먹을 때도, 김치를 먹을 때도 소금이 생각났다. 내가 채염한 소금도 몇 년 뒤 식탁에 오르겠지. 당분간 밥을 먹을 때 이날의 소복한 소금산과 내 삽질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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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조유미 기자.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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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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