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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냉랭한 민심 속 이란 대선 보혁 맞대결 성사... 10명 중 6명은 투표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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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냐 보수냐" 내달 5일 결선
의사 출신 개혁파 1위, 강경파 2위
투표율 40% 역대 최저 "여론 좌절"
하메네이 타격... 결과 가늠 어려워
한국일보

다음 달 5일 이란 대통령선거 결선 투표에 나서는 '강경 보수' 사이드 잘릴리(왼쪽) 후보와 '유일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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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테헤란의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투표소 밖 줄이 늘어서기는커녕, 선거 감시원들은 (투표소인) 모스크 책상에서 잠을 잤다."

지난 28일(현지 시간) 치러진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 분위기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묘사했다. 역대 최저 투표율인 40%. 민심 이반의 현주소였다. 중도·개혁 성향과 강경 보수파 후보의 결선 맞대결이 성사된 이란 대선에선 정치 무관심층으로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누가 돌릴지가 승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란 대선 개혁파 '1위'


다음 달 5일 예정된 이란 대선 최종 대진표가 마수드 페제시키안(70)과 사이드 잘릴리(59) 후보의 맞대결로 확정됐다. 28일 치러진 투표에서 과반 득표한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라는 돌발 사태로 치러진 이번 보궐선거에는 두 후보를 포함, 총 4명이 출마했다.

득표율 1위는 심장외과 의사 출신 페제시키안 마즐리스(의회) 의원. 1,041만 표(42.5%)를 얻었다. 온건·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에서 보건부 차관을 지낸 그는 '개혁주의자'로 분류된다.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과거 반정부 히잡 시위를 옹호한 적도 있다.

'강경 보수파' 잘릴리 후보가 947만 표(38.6%)로 뒤를 이었다. 그는 2007년·2013년 이란 핵협상 대표와 외무차관을 지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충성파'로 불리며 경제난 타개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을 반대해 왔다. 대신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조한다.

역시 강경파로 분류되는 모하마드 바게리 갈리바프(63) 후보는 338만 표(13.8%)를 얻어 3위를 기록했다. 그는 곧바로 잘릴리 지지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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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성 유권자들이 28일 테헤란의 한 투표소에서 대통령 보궐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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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투표율은 사상 최저치


이란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렸다. 투표율은 39.9%에 그쳤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진 이래 최저 수준이다. 2021년 라이시 전 대통령이 기록했던 대선 최저 투표율(48.8%)보다 약 9%포인트 낮다. 지난 3월 총선 투표율(40.6%)에도 못 미친다. 무효표만 100만 표 이상 나왔다고 한다.

민심의 좌절감이 극에 달한 결과라는 게 외부의 평가다. 국제사회의 오랜 제재로 인한 경제난,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정권의 유혈 진압과 탄압 등이 얽히고설키며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환멸만 키웠다는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사남 바킬 중동·북아프리카 국장은 투표율을 두고 "그 자체로 (국민의) 항의"라고 짚으며 "후보와 체제 모두를 거부하는 광범위한 선택이고, 여론과 무관심, 좌절감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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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28일 테헤란의 한 투표소에서 대통령 보궐선거 투표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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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관심층 투표 여부 주목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이란 지도층은 높은 투표율을 근거로 정당성을 강화해 왔다. 이란의 사실상 1인자 하메네이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투표를 독려해 왔다. 이코노미스트는 "하메네이는 국민의 힘을 두려워한다"며 "국민은 부패한 정권의 정통성에 깊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짚었다.

결선 투표 결과는 예측 불가다. 2위 잘릴리가 3위 갈리바프 표를 흡수하면 50%를 훌쩍 넘긴다. 하지만 갈리바프 지지자 다수가 잘릴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과거 여론조사 결과 등을 미뤄볼 때 장담할 수 없다. 페제시키안의 경우 남은 선거 기간 정치 무관심층을 투표소로 불러내지 못한다면 이번 1위 돌풍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미 뉴욕타임스는 "새 대통령의 능력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이미 드러났다"며 "정치적 스펙트럼 양 끝에 있는 두 후보 간 대결이 더 많은 유권자들의 투표를 이끌어낼지는 불분명하다"고 내다봤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위용성 기자 u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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