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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책은 죽었다고?…서울국제도서전 ‘n차 관람’ 15만 인파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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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폐막한 6월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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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인파가 몰려 입장과 관람에 불편을 겪은 독자들께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정부의 지원은 받지 않고 ‘홀로서기’를 했지만, 사실은 출판사와 독자들과 ‘함께 서기’를 한 도서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젊음과 열정을 감히 ‘책’의 미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주최한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이 폐막한 지난 30일, 주최측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이러한 글이 올라왔다. 전날 관람객이 행사장에 입장하는 데만 1~2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인파가 많이 몰리는 바람에, 전체 행사를 마치는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도 사과의 인사를 덧붙였어야 했던 것이다. 출협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일간(6월26~30일) 도서전을 찾은 방문객 수는 최소 15만명으로, 13만명이 방문했던 지난해보다 ‘흥행’에 성공했다.





정부 보조금 없이 흥행한 도서전





그동안 국고보조금 지원을 받아 개최됐던 서울국제도서전은 올해는 기부금과 회비, 참가비 등 출협 자체 비용으로 치러졌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출협이 도서전 수익금 처리를 두고 의견이 달라 지난해부터 충돌해왔고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박보균 당시 문체부 장관은 윤철호 출협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를 보조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고, 출협은 출판인 명예를 훼손했다며 문체부 공무원을 맞고소했다. 이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이 도서전에 대한 감사 후 3억5900만원을 출협에 반납하라고 했고, 출협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행정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문체부는 출협에 대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올해 배정된 도서전 예산(6억7000만원)을 출협에 주지 않았다. 대신 개별 출판사들의 저자 강연, 사인회 등에 지원했다. 보조금이 끊긴 상황에서 출협은 행사를 치르기 위해 도서전 부스비나 티켓 비용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도서전 초대 국가 수도 줄였다. 도서전 규모가 지난해보다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출판사나 서점들의 도서전 참여도 활발했을 뿐만 아니라 방문객 수도 지난해보다 더 많았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이전 방문객들의 행사 만족도가 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재방문하면서 해마다 방문객들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정부가 지원 없으니 우리라도 지원하자는 글이 에스엔에스(SNS)에 많이 올라왔고 행사 내용에 만족한 사람들이 엔(n)차 관람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해가 거듭될수록 참사들의 행사 내용이 더 내실 있고 풍성해진 점도 흥행 성공 요인으로 봤다. 윤 회장은 “문체부가 출협 지원을 하지 않기 위해 출판사들의 부스비 지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데, 많은 출판사가 참여하려면 부스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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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로 가득찬 서울국제도서전 현장 모습. 출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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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젊은이들 방문 많아, 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30대 젊은이들이 도서전을 많이 찾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에스에프(SF), 판타지 소설을 파는 매대는 폐막일 당일 오전에 이미 책들이 다 소진돼 ‘완판’ 간판을 달기도 했다. 도서전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는 한 젊은 연인은 “우리가 처음 찾은 도서전”이라며 기념사진을 찍고 매년 도서전을 찾자고 약속하는 모습도 보였다.



젊은이들의 독서율이 뚝뚝 떨어지는 것과 달리 도서전을 찾는 젊은이가 이처럼 많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출판사 돌고래의 김지운 편집자는 이에 대해 “행사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팝업스토어’ 가는 것처럼 도서전도 호기심을 따라 찾는다. 도서전은 젊은이들에게 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가볍게 다가갈 수 있다고 알려주고 책과 더 친해지는 계기를 만드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다른 이들과 연결되기보다 혼자서 자유롭게 텍스트를 볼 수 있는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담뱃값 모양의 상자에 시를 넣어 파는 ‘주머니시’의 송유수 대표는 “엠지(MZ) 세대는 에스엔에스(SNS)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너무 많이 했다”며 “진정한 개인의 가치를 인식한 젊은이들에겐 책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고, 도서전도 그런 맥락에서 찾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을 통해 외국의 문화를 쉽게 접하고 국외 여행이나 국외 생활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이 다양한 나라의 책은 물론 타국의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 도서전을 찾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부스에서 만난 김제균(27)씨는 “이태원에서 아르바이르를 하며 영어를 배웠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군생활을 했다. 친구들이 다른 나라 문화에 관심 많은 내게 도서전을 추천해 오게 됐는데 너무 재밌어서 내년에도 친구나 연인과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그래픽노블 작가 레아 뮈라비에크의 ‘그랑비드’를 좋아한다는 박세은(25)씨는 프랑스관에서 진행된 작가 사인회를 찾았다. 박씨는 “그림책 작가가 꿈인데 좋아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어 졸업 작품을 들고 도서전을 찾았다”며 “책을 좋아하고, 그림이나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도서전을 많이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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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사우디아라비이관.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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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도 놀란 한국인들의 타국 문화에 대한 관심





도서전에 참가한 다른 나라 출판 관계자들은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평가했다. ‘스포트라이트 컨트리’로 초대된 오만관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칼 판 알아브리 오만 문화체육청소년부 도서전위원회 국장은 “다른 나라 도서전에 비해 규모가 크고 방문객들이 많아 놀랐다”며 “많은 한국인이 다른 나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 인상적이고 항상 미소를 짓고 다가와서 말을 걸어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관에서 한국어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한 교환학생 알우피 알아누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연 있는 관람객들이 많이 방문해 놀랐다고 전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과거 일하면서 찍은 사진을 갖고 온 관람객, 1973년도의 사우디아라비아 지폐를 소장한 분들, 아랍어를 공부하는 학생과 학자들이 와서 대화를 했다”며 “이렇게 양국 간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도서전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관에서 사우디라아비아 이야기를 한국어로 번역해 무료로 제공한 책은 한 점도 남김없이 관람객들이 가져갔다.



내년 도서전의 주빈국인 대만관에도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올리비아 시에 대만 도서전기금 코디네이터는 “대만 소설 ‘귀신의 땅’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번역가들이 부스를 찾아 여러 책들을 번역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관심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이 어떤 책에 관심 많은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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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네서점 자랑대회’라는 행사를 벌인 한국서점인협의회 소속 서점 대표들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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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던 출판·서점인들 “희망·가능성 보여”





‘출판 시장은 망했다’ ‘책은 죽었다’는 말만 듣던 출판인 및 서점 관계자들도 이번 도서전 내내 환하게 웃었다. 많은 출판인이 “이번 도서전에서 만난 사람들로 인해 절망 대신 희망을 갖게 됐고, 출판의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입을 한데 모았다. 이정은 쩜오책방 책방지기는 “단순히 구경하듯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진지하게 집중해서 책을 보고 질문도 많았다”며 “그런 분들을 보며 여전히 읽는 사람들은 읽고, 책을 놓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와 소수자, 장애, 퀴어 등과 관련된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 오월의봄도 지난해보다 책 판매량이 50% 늘었다. 신연경 오월의봄 마케터는 “지난해에는 오월의봄 애독자들이 많이 찾았다면 올해는 처음 오는 분들이 많았다. 남성분들도 많았다. ‘야망계급론’이나 ‘인싸를 죽여라’ 같은 교양서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많았고, 특색 있는 출판사라고 칭찬해주는 독자들이 있어 힘이 됐다”고 말했다.



탐조 전문 책방을 운영하며 다른 출판사와 협업으로 새 관련 책들을 펴내는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도 책을 매개로 새로운 탐조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 대표는 “방문객들에게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게 해서 책-책방-탐조 프로그램 등을 모두 연결시킬 수 있었다. 도서전에서 만난 사람들이 탐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돼 독자층도 늘고 탐조 인구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서점인협의회는 ‘나의 동네서점 자랑대회’를 열고 포스트잇에 자신이 좋아하는 서점에 관한 글을 써서 벽에 붙이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두 벽 가득히 포스트잇이 붙였다. 정덕진 햇빛문고 대표는 “책도 제법 판매됐을 뿐만 아니라 지역 서점에 관해 사람들과 주고 받은 말들 때문에 힘을 얻게 됐다”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살아있다고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도서전 기간 동안 매일 왔다는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이번 도서전의 화두는 ‘연결성’이라고 짚었다. 한 소장은 “참가한 출판사들은 온라인에서 만난 독자들을 현장에서 만나는 전략을 세웠고, 이것이 전시장에 독자를 넘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독자들은 현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과 직접 만나는 축제를 즐겼고, 참가사들은 현장의 매출보다는 독자와의 연결을 꾀하는 이벤트를 벌이며 미래를 기대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로 인해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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