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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광화문·뷰] ‘성공 오류’에 빠진 바이든의 자기 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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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론 후 거세진 후보 교체론

바이든 여전히 “내가 최적임자”

“트럼프 이긴 사람은 나 하나”

과거의 과대평가, 미래 위기로

조선일보

지난 29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뉴욕 웨스트 햄튼 비치의 프란시스 S. 가브레스키 공항에 도착해 미소를 짓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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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기의 경영자’로 추앙받던 GE의 잭 웰치가 쓴 자서전 원제는 ‘잭: 직관으로부터의 결단(Jack: Straight from the Gut)’이었다. GE가 쇠락을 거듭하다 지난 4월 사실상 사라지자 과거 리더십 지침서라 여겨졌던 이 책이 이젠 실패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무리한 인수·합병, 조직을 망치는 인사 등 대부분 문제가 웰치 때 시작됐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그의 ‘직관 경영’은 조롱거리가 됐다. 행동경제학 대가인 대니얼 카너먼은 생전 인터뷰에서 웰치 같은 CEO들이 ‘촉’을 과신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성공한 사람들이니까요. ‘성공한 나’를 지나치게 믿는 겁니다.”

미국 대선의 첫 TV 토론회에서 조 바이든(82) 대통령이 처참하게 패한 후 지지층을 중심으로 사퇴 여론이 거세다. 입 벌리고 허공을 응시하거나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 뜬소문처럼 돌던 고령 리스크의 실체를 생중계로 드러냈다. 이대로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필패(必敗)할 듯 보이지만 바이든의 반응은 정반대다. 토론 후 유세에서 “이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은 여전히 나”라며 완주를 공언했다. 이 말을 듣고 웰치의 자만과 카너먼의 진단을 떠올렸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고문은 토론 후 뉴욕타임스(NYT)에 후보 사퇴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며 “바이든은 자부심이 너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자신의 삶을 ‘역경을 이겨낸 나날들’이라고 평가한다. 가난했던 집안의 첫 대학 진학자인 그는 어린 시절 거울 앞에서 시 낭송을 연습하며 말더듬이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즐겨 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30세에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해 노련한 현직 의원을 이기며 전국구 정치에 데뷔한 입지전(立志傳)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6년 대선 출마를 고려했던 그는 2015년 아들이 뇌암으로 세상을 뜨는 비극을 겪고 물러섰다. 하지만 4년 후 극적으로 재기해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몰아냈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트럼프 이긴 사람은 나 하나”라고 한다.

조선일보

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 조 바이든(오른쪽) 대통령이 하려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말을 멈추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쳐다보는 모습. /CNN 캡처


바이든의 정치 자산이었던 자신감은 어느새 완고함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NYT가 백악관 직원들을 인터뷰해 보도한 기사의 일부다. “자신의 본능을 신뢰하는 바이든은 이견을 잘 용납하지 않는다. 모두가 바이든의 (버럭 하는) 성미를 겁낸다. 그는 직원들이 ‘카드보드 컷아웃’이 되길 원한다.” ‘카드보드 컷아웃’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종이 인형이란다. 고령 리스크에 대해 바이든에 직언하기 어려울 법도 하다.

카너먼은 “경영자들은 종종 운(運)에 힘입은 성공까지도 본인의 능력 덕분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과신이 중대한 판단을 자기 직관만 따라 잘못 내리도록 유도한다”고 경고했다. 바이든의 성공 사례 중에도 운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적지 않았다. 미국에서 하루 수천 명씩 사망자가 나온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트럼프의 어이 없게 비과학적이었던 대처가 없었다면 바이든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의 1972년 상원의원 당선 또한 베트남전에 지친 유권자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분출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과거에도 역경을 이겼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돌파한다’는 바이든의 낙관이 단순하고 위험한 이유다.

카너먼은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 “과신에 빠진 사람은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타이밍이 적절치 않았다’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 끼어들었다’ 같은 온갖 변명을 갖다 붙인다”고 했다. 바이든은 토론 이후 여러 차례 “대중과 언론이 지난 4년의 성과는 안 보고 90분 동안의 토론만 파고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유권자들이 대통령이 찍어주는 사안만 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성공의 오류’에 빠진 바이든의 자기 과신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리더들이 경계하며 지켜볼 일이다.

[김신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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