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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급발진" 주장 사고들 뜯어보니…브레이크 대신 페달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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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사고 원인 대부분 '운전자의 운전 미숙 및 착오에 의한 오조작'
유엔유럽경제위원회 "고령화 사회에 급발진 사고 잦아져…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해야"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 선점한 일본… 내년 국제표준 채택될 듯

머니투데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 대형 교통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사고를 일으킨 역주행 제네시스 차량 인근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9시 27분쯤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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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곳곳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계속해 발생하는 가운데, 급발진 사고의 80%가 운전자에 의한 페달 오작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율이 높아지는 일본에서는 이르면 2025년 6월부터 모든 신차에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조항을 도입할 방침이다.

지난 1일 오후 9시 30분께 서울 한복판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도로를 역주행하다 인도를 덮쳐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감속 페달을 밟았음에도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며 사고의 원인이 "차량 급발진"이라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차량 급발진은 '△차량이 정지하거나 낮은 초기속도에서 움직일 때 △명백하게 제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고출력의 사고'로 정의된다. 차량의 기계적·전기전자적 결함도 원인일 수 있지만 운전자의 운전 미숙 및 착오에 의한 오조작도 급발진의 원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급발진 사고 40건 중 약 80%가 운전자의 오조작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개 운전자가 감속 페달(브레이크)을 밟아야 할 상황에서 가속 페달(액셀러레이터)을 밟는 경우다. 문제는 운전자의 증언만으로 급발진의 원인이 운전자의 판단 오류로 인한 페달 오조작인지, 차체의 기계적 결함인지 여부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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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9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연서시장 앞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 14명 사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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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모빌리티 로봇 연구본부장은 "운전자의 무결을 입증할 수 있도록 페달 주변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시 운전자의 발 위치를 확인하는 용도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주장하는 운전자의 발이 실제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증명할 수 있다. 운전자는 일반적으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 사이를 '브이(V)'자 형태로 오가기 위해 발 끝부분을 브레이크 페달 쪽에 가까이 두는데, 의도적으로 고속 주행하는 운전자의 발 끝부분은 가속 페달 쪽으로 빈번하게 이동한다는 것이다. '비디오 관찰법'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최 본부장은 다만 "페달 카메라 설치는 의무가 아닌 차량 구매자의 선택"이라며 "급발진 의심 사고가 빈번해지는 만큼 국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2011년엔 국내 연구진이 급발진 의심 사고를 일으킨 차량의 사고 당시 엔진 회전수, 클러치 접합 속도, 총 감속비(차량 감속 장치에 발생한 회전 속도의 비) 등 중요 인자를 분석해 차체에 가해진 변화가 사고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내는 방법을 고안한 바 있다. 이어 2018년엔 강원대 기계공학과 연구팀이 가상주행장치를 이용해 페달 오조작에 의한 급발진을 감지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높아지는 고령화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의무화하는 일본…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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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CE는 "2050년까지 65세 이상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하는데, 페달 오작동과 고령 인구의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사고 위험이 나날이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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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조만간 차량 전체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를 의무화할 전망이다. 지난달 27일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교통부는 이르면 2025년 6월부터 모든 신차에 페달 오조작 급발진 억제 장치(PMPD·Pedal Misapplication Prevention Device)를 설치하도록 할 예정이다. 일본 고령화율이 나날이 심화하며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가 빈번해진다는 위기감에 따른 조치라는 분석이다.

PMPD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잘못 밟았을 때 엔진 출력을 자동으로 줄여 급발진을 방지하는 장치다. 차량의 앞면과 뒷면에 차량 주변 장애물을 감지하는 센서와 카메라를 설치해, 장애물이 있는 환경에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을 때 연료를 자동으로 차단한다. 이를 통해 차량의 갑작스러운 가속을 막는 원리다.

같은 날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도 차량에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를 설치하도록 하는 안을 골자로 한 국제 규제 조항을 채택기로 했다. UNECE는 "2050년까지 65세 이상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하는데, 페달 오작동과 고령 인구의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사고 위험이 나날이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내년 6월 UN 규제 조항이 발효되면, 일본이 제안한 PMPD가 차량 안전장치의 국제표준으로 승인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대책 마련에 나선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소 미래차연구처는 지난 1월 운전자 페달 오조작 방지 및 평가 기술에 대한 수요조사에 나섰다. 이를 통해 국내 관련 연구기관 및 기업과 함께 페달 오조작 감지 기술·차량 제어 기술을 개발하고 페달 오조작에 대한 평가제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안전연구소는 "급발진 사고가 증가하면서 운전자 실수와 차량 결함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사고가 페달 오조작으로 판명돼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 개발 및 보급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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