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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시청역 역주행 돌진’에 자동차 업계 “차량 스스로 멈춰, 급발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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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일 오전 서울 시청역 주변 사고 현장을 조사하는 경찰.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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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밤 서울 시청역 근처 인도에서 발생한 차량 돌진 사고 운전자 차모(68)씨가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사건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급발진이란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차량의 결함으로 급가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 사고에서 운전자 차씨는 “제네시스 차량이 급발진한 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차량 제조사인 현대자동차는 2일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경찰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급발진의 근거는 현재까지 피의자 측 진술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경찰은 해당 차량 내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을 통해 원인을 파악할 예정이다. 이 분석은 최대 2개월까지 걸린다. 이밖에 운전자와 동석자, 목격자 조사 및 CCTV 분석 등까지 거치면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

현대차 등 자동차 제조사들이 주목하는 현장 상황은 차량이 사고를 낸 뒤 세종대로 교차로를 지나 차도 지점에 멈춰섰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급발진 의심 상황에선 차량이 벽이나 가로등 같은 고정된 장애물에 부딪칠 때까지 돌진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선 차의 속도가 줄면서 멈춰 서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 등에 담겨 있다. 이를 두고 한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의도치 않은 가속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급발진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급발진 인정한 대법 판례는 없어



2010년부터 올해 5월까지 국토교통부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신고는 모두 793건이다. 매년 평균 57건이 접수된 셈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부 조사나 법원 확정 판결에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없다. 급발진이 아니라 운전자의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로 판명나는 경우도 있지만, 현행 법상 운전자가 기계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입증해야 하기에 법원에서 피해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는 점을 운전자가 증명해야 한다. 소비자단체 등은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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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선 소비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제조사가 결함 없음을 증명하도록 하는 내용의 이른바 '도현이 법'(제조물책임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국회때 발의되기도 했다. '도현이 법'은 2022년 12월 강릉에서 이도현(당시 12세)군이 할머니(68)가 운전하는 티볼리 차량을 타고 가다가 급발진 의심 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발의된 법안이었다. 이 군의 유족은 제조사 KG모빌리티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유족 측은 지난 5월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재연 시험도 공개하고 그 결과를 법원에 냈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측에서 거론하는 해외 판례는 미 오클라호마주 1심 법원에서 나온 이른바 ‘북아웃 사건’이다. 토요타 캠리 급발진 의심 사고에 대해 2013년 이 법원 배심원단은 “제조사 책임에 의한 급발진”이라는 취지의 평결을 낸 적이 있다. 이후 토요타는 330여건의 유사 사건에 대해 합의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모두 취하시켰다. 미 당국 조사에 대해서도 벌금을 내는 조건으로 기소를 면했다. 다만 토요타는 “소비자 권익과 회사 사정을 고려한 합의일 뿐 급발진을 인정한 건 아니다”는 입장을 냈었다.

국내 급발진 의심 사건 중에서도 운전자 측이 이긴 하급심 사례가 있다. 2018년 5월 호남고속도로에서 BMW가 시속 200㎞로 달리다 운전자가 숨진 사건에서 2심 재판부는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 판단했다. 재판부는 “차량 엔진 상의 결함이 있을 경우 브레이크 페달이 딱딱해질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사고 차량이 과속에 이르게 된 이유에 대해선 판단을 남기지 않았다. 차량 수입사인 BMW코리아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최선욱·고석현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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